인사가 만사의 출발이다 [이윤학의 일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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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여성이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을 호소할 때는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힘든 상황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받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화에 서투른 '화성에서 온 남자'들은 그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려 한다고 합니다. 실은 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든 대화의 본질은 분석이나 솔루션이 아니라 공감과 위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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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침 일행 중에 한 분이 오다가 넘어져서 무릎과 손바닥이 까져버렸습니다. 살짝 피도 맺힌 듯 보였습니다. 이를 보고 어느 멤버는 도로포장이 문제라는 둥, 행정관청에서 빨리 눈을 치우지 않아서 넘어졌다는 둥, 심지어 다친 분에게 왜 좀 더 조심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한 멤버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약국에서 사 온 소독약과 밴드 등 치료할 만한 것들이 들려 있었지요. 그때 제가 사장이 되고 싶어 질문한 그 친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렇게 하는 사람이 사장이 되는 거라네. 그것도 좋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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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잘하고, 예의를 잘 지키라는 말은 하면 분명히 저는 꼰대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거든요. 예의가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지요. 예의범절의 기본은 인사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인사를 가장 잘하는 연령대는 취학 전 아동이나 초등학생 등 어린아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사 곡선(Hello & Thank Curve)은 대체로 U자를 그립니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인사의 빈도나 진정성은 가파르게 떨어집니다. 20대가 되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지요. 그러다 30대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사 곡선은 완만하게 상승하여 50~60대 이후엔 가파르게 상승하지요. 심지어 60대 이후엔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인사를 잘합니다. 삶의 이치를 깨닫는 때여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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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쌍방향입니다. 인사를 꼭 젊은 사람이 먼저 하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요. 인사를 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하세요. 그것도 밝게 웃으면서. 흔히들 조직 내에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인사(Hello & Thank)가 만사의 출발인 것 같습니다.
자산운용사에서 일하던 때, 매년 연말이면 '색다른 인기 투표'를 했습니다. 일종의 설문 조사 형식인데,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입니다. 질문을 보고 직관적으로 딱 떠오른 사람의 이름을 적는 방식이었습니다. 질문은 대략 이런 겁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은?',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옷을 제일 잘 입는 사람은?', ‘'독일 병정 같은 사람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가장 로맨틱한 사람은?', '올 한 해 수고했다고 꼭 안아 주고 싶은 사람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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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략 20개 정도의 문항별 수상자(?)를 살펴보면 재미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각 문항의 1위와 2위 득표자 사이 득표 차이가 큽니다. 대다수 항목에서 특정인에게 몰표가 나오지요. 그것은 예컨대 '올 한 해 너무 수고해서 꼭 안아 주고 싶은 사람' 이 사내 직원들 머릿속엔 공통으로 딱 한 사람 떠오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몰표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다 압니다. 누가 고생하는지, 누가 열심히 일하는지를. 그러니 모든 문항에서 1, 2위 득표자의 경합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전에 상의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은 결코 아니지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컨센서스(consensus)가 있는 겁니다.

다소 명예스럽지 못한(?) 부문으로 수상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직원들은 나를 아주 차가운 사람으로 느끼고 있구나'. 그럼 다음 해엔 노력하는 거지요. '좀 더 따뜻한 사람, 자상한 사람이 되자'라고. 그러니 2년 연속 수상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의전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아마 인사하는 것도, 다정하게 대하는 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을지도 모릅니다. 불공정이나 불합리에 민감한 요즘 젊은 세대일수록 '왜 내가 저 사람에게 그래야 하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러나 밝게 인사하고 다정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은 사실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것이지요.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그들과의 관계 또한 좋아질 겁니다. 어두운 밤길에 다른 사람을 위해 등불을 밝히면 내 앞이 더 밝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도 나의 성장과 성공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며,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프리즘자산운용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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