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정한 것이 살아남습니다. 밝고, 배려하는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지만, 사람들은 다 압니다. 누가 따뜻한 사람인지, 누가 까칠한 사람인지 거의 본능적으로 알지요. 대화를 몇 분만 해보면 누구든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이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을 호소할 때는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힘든 상황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받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화에 서투른 '화성에서 온 남자'들은 그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려 한다고 합니다. 실은 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든 대화의 본질은 분석이나 솔루션이 아니라 공감과 위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ADVERTISEMENT

몇 년 전 겨울, 공부 모임에서 만난 멤버들끼리 저녁 식사를 한 후 맥주를 한잔하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다른 멤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후배가 저에게 물어봅니다. “대표님 어떻게 하면 사장이 될 수 있나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이라 제가 멈칫하고 놀랍니다. “사장이 되는 길을 묻는 거야? 아니면 좋은 사장이 되는 길을 묻는 거야? 하고 되물었지요. “일단 사장이 되어야 좋은 사장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라고 해서, 저는 그건 좀 다른 이야기라고 대답했지요.

그런데 마침 일행 중에 한 분이 오다가 넘어져서 무릎과 손바닥이 까져버렸습니다. 살짝 피도 맺힌 듯 보였습니다. 이를 보고 어느 멤버는 도로포장이 문제라는 둥, 행정관청에서 빨리 눈을 치우지 않아서 넘어졌다는 둥, 심지어 다친 분에게 왜 좀 더 조심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한 멤버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약국에서 사 온 소독약과 밴드 등 치료할 만한 것들이 들려 있었지요. 그때 제가 사장이 되고 싶어 질문한 그 친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렇게 하는 사람이 사장이 되는 거라네. 그것도 좋은 사장.”

ADVERTISEMENT

뭐가 문제인지, 해결책이 뭔지를 열심히 떠든다고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차라리 어려움에 처한 사람과 같이 공감하거나 위로를 하는 게 낫지요. 그것도 어렵다면 조용히 일어나서 비타민 음료수라도 한 병 건네 보세요. 그게 진정한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인사 잘하고, 예의를 잘 지키라는 말은 하면 분명히 저는 꼰대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거든요. 예의가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지요. 예의범절의 기본은 인사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인사를 가장 잘하는 연령대는 취학 전 아동이나 초등학생 등 어린아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사 곡선(Hello & Thank Curve)은 대체로 U자를 그립니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인사의 빈도나 진정성은 가파르게 떨어집니다. 20대가 되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지요. 그러다 30대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사 곡선은 완만하게 상승하여 50~60대 이후엔 가파르게 상승하지요. 심지어 60대 이후엔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인사를 잘합니다. 삶의 이치를 깨닫는 때여서 그런가 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느 회사의 대표를 하셨던 선배님 한 분은 정말 인사성이 밝았습니다. 그분은 자기 회사 직원은 물론 거래하는 상대 기업의 젊은 직원들에게도 늘 깍듯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게다가 상대의 이름을 외워서 “OOO 씨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상대가 감동할 정도였지요.

ADVERTISEMENT

어느날 한 임원이 요즘 직원들이 인사를 안 한다며 예의가 없다고 불평합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그 임원에게 “인사를 잘 받는 가장 확실하고도 좋은 방법은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다”라고 오히려 따끔하게 충고했습니다.

인사는 쌍방향입니다. 인사를 꼭 젊은 사람이 먼저 하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요. 인사를 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하세요. 그것도 밝게 웃으면서. 흔히들 조직 내에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인사(Hello & Thank)가 만사의 출발인 것 같습니다.

자산운용사에서 일하던 때, 매년 연말이면 '색다른 인기 투표'를 했습니다. 일종의 설문 조사 형식인데,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입니다. 질문을 보고 직관적으로 딱 떠오른 사람의 이름을 적는 방식이었습니다. 질문은 대략 이런 겁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은?',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옷을 제일 잘 입는 사람은?', ‘'독일 병정 같은 사람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가장 로맨틱한 사람은?', '올 한 해 수고했다고 꼭 안아 주고 싶은 사람은?' 등등.

ADVERTISEMENT

문항을 만드는 작업은 5년 차 이내 젊은 직원들이 하는데, 매년 새롭고 재미난 문항들이 등장하지요. 답변은 전 직원이 작성합니다. 매년 연말에 하는 타운홀 미팅 때 문항별 등위와 수상자를 발표하고, 1등에겐 상품도 수여합니다. 발표하는 순간이면 환호와 웃음, 아쉬움 등이 교차합니다.

그런데 대략 20개 정도의 문항별 수상자(?)를 살펴보면 재미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각 문항의 1위와 2위 득표자 사이 득표 차이가 큽니다. 대다수 항목에서 특정인에게 몰표가 나오지요. 그것은 예컨대 '올 한 해 너무 수고해서 꼭 안아 주고 싶은 사람' 이 사내 직원들 머릿속엔 공통으로 딱 한 사람 떠오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몰표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다 압니다. 누가 고생하는지, 누가 열심히 일하는지를. 그러니 모든 문항에서 1, 2위 득표자의 경합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전에 상의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은 결코 아니지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컨센서스(consensus)가 있는 겁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또 다른 특징은, 한 문항에서 2년 연속 1위 수상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에 지목된 한 임원이 이듬해엔 1위를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기 투표 같은 이 설문 조사는 성과 측정용이 아닙니다. 재미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다소 명예스럽지 못한(?) 부문으로 수상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직원들은 나를 아주 차가운 사람으로 느끼고 있구나'. 그럼 다음 해엔 노력하는 거지요. '좀 더 따뜻한 사람, 자상한 사람이 되자'라고. 그러니 2년 연속 수상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의전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아마 인사하는 것도, 다정하게 대하는 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을지도 모릅니다. 불공정이나 불합리에 민감한 요즘 젊은 세대일수록 '왜 내가 저 사람에게 그래야 하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러나 밝게 인사하고 다정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은 사실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것이지요.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그들과의 관계 또한 좋아질 겁니다. 어두운 밤길에 다른 사람을 위해 등불을 밝히면 내 앞이 더 밝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도 나의 성장과 성공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며,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프리즘자산운용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