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마녀사냥 못 끊는 자들
1997년 8월 15일, 유대계 미국인 마이클 드로스닌의 저서 <바이블 코드(The Bible Code)>가 한국에서 출간됐다. 그해 5월 영어 원서가 미국서 출간됐는데,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면서 국내 한 출판사가 빠르게 판권을 확보하고 석 달 만에 한국어판을 낸 것이다. 출간 열흘 만에 3만 부가 넘게 팔렸고, 각종 매스컴에서 반향이 작지 않았다. 같은 해 8월 26일 내한한 드로스닌은 북콘서트를 열었으며, 9월 22일에는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신(神)의 예언인가? 바이블 코드’를 제작 방영해 드로스닌 주장의 진위를 가리려 했다.

<바이블 코드>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띄어쓰기와 문장부호를 모두 없앤 글자들을 컴퓨터로 바둑판 모양의 격자에 배열하면, 가로·세로·대각선을 따라 특정 단어들이 십자말풀이처럼 교차해 미래를 예언하는 문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드로스닌은 <바이블 코드>가 출간되기 전인 1994년, ‘이츠하크 라빈’이라는 이름과 ‘암살자가 암살할 것이다’라는 문장이 이루는 바이블 코드를 발견하고는 당시 현직이던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에게 경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라빈 총리는 1995년 강경파 유대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했고, 드로스닌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다. 이런 식으로 바이블 코드가 이름과 날짜 같은 단서들의 얽힘으로 제시하는 역사적 사건들로는 에디슨과 전구, 히로시마 원폭 투하, JFK 암살, 클린턴의 성스캔들, 9·11 테러, 걸프전과 사담 후세인 등이 있다고 드로스닌은 주장했다.

반면, ‘믿고 싶어서 무조건 믿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바이블 코드>의 ‘편집증’적 허구성은 의외로 쉽게 증명됐다. 대표적인 비판으로는 첫째, 바이블 코드를 읽는 방법은 ‘지독히 자의적(그럴듯 멋대로 갖다붙이기)’이다. 그렇게 읽은들 모호한 단어와 문장인 경우가 많다. 둘째, 바이블이 아니라 다른 큰 텍스트에 이런 읽기를 적용해도 결과는 유사했다.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 딕>에 바이블 코드 방식을 적용하니,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죽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이 나왔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똑같이 해도 역사와 미래의 사건은 뭐라도 당첨될 것이다. 무엇보다, 바이블 코드의 성립이 진실이려면 성경이 문헌학적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물건이라야 한다. 그래서인지, 드로스닌은 바이블 코드가 외계인, 외계문명과 연관돼 있다는 헛소리를 떠들어댔다.

얼마 전 한 방송국PD와 정치인과 준정치인이, 한 자수성가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사투리 말꼬리에 ‘극우 코드’를 갖다붙이는 일이 벌어졌다. 유럽 중세 마녀사냥에서 마녀의 진위를 결정하는 방식들 가운데 이런 게 있었다. 마녀로 지목된 아가씨를 결박한 뒤 강물 속으로 던진다. 한참 뒤 꺼냈을 때 질식해 죽어 있으면 마녀가 아니고, 살아 있으면 마녀니까 화형시킨다.

저 셋과 같은 자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마녀사냥을 제 식대로 누군가에게 들이댄다. 반응이 안 좋다? 그럼, 침묵하거나, 아, 그건 그게 아니었다고 뭉개든지 날름 사과해버리든지 하면 그뿐이다. 만약 반응이 좋았다면? 그 ‘생사람 잡는 짓’을 계속 밀고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저런 자들이 종교재판관인 중세를 살고 있으며, 자주 마녀사냥의 공범이 된다. 마약중독자의 특징 중 하나가 ‘편집증’적 의처증과 의부증이라고 한다. 대중은 저들이 뿌린 코드에 중독돼 반려자를 의심하고 폭행하는 마약중독자처럼 되고, 계속 ‘마약(정치적 편집증과 확증편향 등)’을 갈구하는 노예가 된다.

드로스닌은 바이블 코드가 불신받게 된 뒤에도 <바이블 코드>의 후속편을 썼다. ‘마약을 팔아서 얻는’ 이익에 중독된 것이다. 내가 한국 정치를 비유하면서 <바이블 코드>를 언급한 것은, 저런 자들의 정의로운(?) 도박성 마녀사냥에 비하면 바이블 코드는 성실함(?)과 수준(복잡함)이라도 있는 사기여서다. 마약중독자와 마약유포자, 어느 쪽이 더 나쁜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런 유치한 종교재판관들이 우글거리는 이 사회는 끔찍하다. 누가 결박당한 채 물 속으로 던져질지, 우리 중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