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장군이 1019년 10만여 명의 거란군을 무찌른 귀주대첩을 묘사한 그림. 당시 고려는 온난한 날씨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져 전쟁을 치를 국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기념관 제공
강감찬 장군이 1019년 10만여 명의 거란군을 무찌른 귀주대첩을 묘사한 그림. 당시 고려는 온난한 날씨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져 전쟁을 치를 국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기념관 제공
427년 장수왕은 고구려의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긴다. 역사학계에선 국내성이 너무 좁았고, 남진 정책을 본격화하기 위해 수도를 옮겼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당시 기후까지 함께 살펴보면 다른 배경도 드러난다. 420~430년께 이 지역은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건조해졌다. 장수왕이 더 따뜻한 남쪽으로 수도를 옮긴 데는 악화한 기후가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의 신작 <기후로 보는 한국사>는 이처럼 기후를 중심에 놓고 한국사를 다시 읽는다. 문헌 기록에 고기후학과 지구과학의 증거를 포개 왕조의 흥망과 전쟁, 인구 이동의 배후에 있었던 환경의 힘을 추적한다.

[책마을] '홍경래의 난' 촉발한 화산 폭발
많은 사람들은 대개 역사를 왕조와 전쟁을 중심으로 떠올리지만, 그 밑바탕에는 항상 기후 변화가 있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기후는 늘 배후에서 역사의 흐름을 조정해 왔다. 간혹 이 잠재된 힘이 표면으로 드러날 때면 인간 사회는 예외 없이 혼란에 휩싸였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게 된 것도 기후 변화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9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요동 지역에선 적도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변화로 계절풍의 강도가 변하면서 한랭·건조한 기후가 500년 주기로 나타난다.

기원전 3200년에도 이 지역 기후가 크게 악화했고, 일부는 남동쪽으로 이동해 요동의 농경민을 자극했다. 침범을 받은 이들은 한반도 깊숙이 내려왔고, 일부는 또 일본 규슈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를 형성했다. 저자는 “기온이 감소하거나 건조해질 때면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위기 상황이 엄습했다”며 “살아남으려면 움직여야 했다”고 했다.

대형 재난은 기후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등에서 대규모 화산이 분화한 536년과 537년, 가뭄으로 기근과 역병이 닥쳐 특히 고구려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45~546년 고구려 귀족 간에 분란이 발생해 2000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기후는 전쟁에서 버틸 수 있는지도 좌우한다. 12세기 고려는 중세 온난기의 혜택 속에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송나라와 활발히 교역했다. 거란과의 전쟁에도 버틸 수 있었던 기반이 됐다. 반면 13세기 몽골 침입은 북반구 기온이 낮아지던 시기에 벌어졌다. 국력을 크게 소진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의 민란과 기근도 기후를 빼놓고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19세기 초는 태양 활동이 약해진 돌턴 극소기였고, 1809년과 1815년 세계 곳곳의 대형 화산 폭발은 한반도에 가뭄과 흉년을 불러왔다. 가혹한 조세 수탈에 생존의 위기까지 겹치면서 농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1811년 홍경래의 난 등이 발생한 배경이다.

저자는 과거 역사와 기후 변화를 살피면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와 끊임없이 연결 짓는다.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원인이 된 ‘인류세’에는 과거와 다른 책임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그는 “과거의 기후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은 단순히 옛날이야기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문화를 탐색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