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글로벌 3위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을 2조3000억원에 인수한다. 반도체 기판 소재(동박적층판)와 후공정(테스트) 사업에 이어 웨이퍼 제조까지 더해지면서 두산은 반도체 전후방 공정 밸류체인을 확장하게 됐다. SK그룹은 실트론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 최태원 회장 지분은 별도 협상하기로
SK㈜와 ㈜두산은 31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SK실트론 지분 70.6%에 대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는 안건을 승인했다고 공시했다.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51.0%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지분 19.6%가 대상이다.
이번 거래에서 SK실트론의 지분 100% 가치는 5조원대 중반(부채 포함)으로 평가됐다. 계약 금액은 2조3000억원으로 향후 조정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인수 시기는 내년 1월 31일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 29.4%는 별도 협상을 통해 인수할 예정이다.
기업가치가 크게 변동이 없는 대신 향후 8년간 SK실트론의 초과 실적이 발생하면 SK에 대금을 더 지급하는 언아웃(earn-out·이익 연계 지급조건) 계약이 더해졌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내년 8900억원, 2028년 1조원, 2034년 1조7000억원 등을 넘을 경우 초과분의 28.24%를 SK에 지급한다. 지난해 SK실트론의 EBITDA는 6275억원(별도 기준)이다.
적자를 내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자회사들은 청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SK실트론 실적은 개선될 전망이다. 두산 측은 “인수 후 SK실트론을 상장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SK㈜는 지난해 12월 SK실트론 경영권 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두산을 선정했다. 그러나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SK실트론 가치가 높아지자 계약이 7개월여간 미뤄졌다. SK그룹 내부에서 실트론 매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도 했으나 금액 조정 대신 언아웃 조항을 추가하며 타협점을 찾았다.
◇ AI·반도체기업 변신 나선 두산
두산은 SK실트론 인수가 AI·반도체 그룹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공업 중심의 두산그룹은 최근 AI, 반도체, 소형모듈원전(SMR), 로봇 등의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두산의 전자BG는 AI 가속기의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한다. 계열사 두산테스나는 반도체 후공정 웨이퍼 테스트 국내 1위다. 여기에 SK실트론을 품으면 반도체 전공정 소재(웨이퍼와 CCL)와 후공정(테스트)을 아우르는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완성한다.
SK실트론은 첨단 반도체에 사용되는 300㎜(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글로벌 3위 업체다. SK하이닉스와 한 그룹 안에 있어 다른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제약이 있었지만, 두산그룹에 편입되면서 글로벌 고객사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두산은 “웨이퍼 수요는 2032년까지 연 7%대 증가할 전망”이라며 “2031년 실트론의 매출 목표를 약 3조원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실트론 매각으로 리밸런싱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SK그룹은 2024년부터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있다. 매각 자금으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와 AI 모델 등을 아우르는 ‘AI 풀스택’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 회장으로서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이 9440억원으로 결정되며 실트론 매각 필요성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