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기사 내용은 관계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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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 역대 최대 투자금이 몰렸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전 업종의 신규 투자금이 1년 새 50% 넘게 불어나는 동안 게임업계 투자만 4분의 1토막 났다. 돈이 없는 게임사는 신작을 개발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국내 게임업계를 지탱해온 히트 지식재산권(IP)이 사라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게임 투자만 4분의 1토막

24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게임 분야 신규 벤처투자액은 424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1788억원)와 비교하면 76.3% 급감했다. 국내 신규 벤처투자액이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과 딴판이다. 전체 신규 벤처투자액은 같은 기간 5조7476억원에서 54.3% 증가한 8조8676억원이었다. 전체 9개 업종 중 투자가 줄어든 곳은 게임 분야뿐이다.
"이러다 중국 게임만 하게 될 수도"…'K게임' 경고 울린 까닭
게임 특유의 ‘선투자·후검증’ 구조가 갈수록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임 신작을 내놓으려면 대규모 개발자를 고용해 수년간 개발비를 부어야 하는데, 이용자 유지율과 고객생애가치(LTV), 고객획득비용(CAC) 등 금융업계가 투자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수치는 출시한 뒤에야 나온다. 회사에 돈이 가장 절실한 시점에는 정작 투자자가 볼 ‘성적표’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구조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모험자본이 많았고 인공지능(AI) 등과 같은 다른 투자처가 없었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는 “AI 모델, 피지컬 AI, 드론, 바이오 등의 산업이 유망해지면서 예전처럼 게임에 자금을 먼저 넣어놓고 수년을 기다리려는 투자자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과거보다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손실이 커진 것도 게임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게임의 고사양화와 글로벌 동시 출시가 보편화하면서 개발 인력과 제작 기간이 늘었고, 대형 신작은 출시 전까지 수백억원을 투입하는 게 드물지 않은 문화가 됐다. 큰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수익화까지는 불확실하고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여기에 흥행에 실패하면 수년간 쌓인 인건비와 개발비가 그대로 매몰된다는 점도 바뀐 투자환경에선 치명적인 리스크로 작용한다. 이런 리스크는 대개 중소 규모의 게임사에 해당한다. 대형 게임사는 자금력이 있고, 아예 규모가 작은 게임사는 AI를 이용해 모바일 게임에 집중한다.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가 투자금을 회수할 출구는 좁아지고 있다. 기업공개(IPO) 문턱이 높아진 데다 게임사 간 인수합병(M&A)도 예전처럼 활발하지 않아서다. 한국게임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게임 업체는 13곳뿐이다. 국내 게임사의 IPO는 2024년 7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시프트업이 마지막이다.

◇“허리 끊어질 수도”

게임사는 매달 개발자 인건비와 서버비를 감당해야 한다. 외부에서 투자 결정이 몇 달만 늦어져도 프로젝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유망 개발팀과 IP를 해외 퍼블리셔가 선점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네오위즈에서 지난 6월 독립한 레드브릭하우스는 오랜 기간 유망 프로젝트를 발굴하고도 투자와 의사결정이 늦어져 미국 디볼버디지털과 후디드호스 등에 게임 퍼블리싱 계약을 사실상 빼앗겼다.

업계에선 국내 투자금이 줄어든 데다 의사결정 속도까지 늦어지면서 한국의 유망 IP가 해외로 넘어가는 ‘선점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게임사 임원은 “게임은 자금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면 팀이 흩어지거나 프로젝트를 접어야 한다”며 “투자금 규모보다 필요한 시점에 돈이 들어오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가 굳어지면 몇 년 뒤엔 국내 게임산업을 이끌 신작 자체가 사라지는 ‘IP 공백’이 현실화할 수 있다. 새로운 IP와 개발 인력을 공급해온 신생·중견 개발사가 줄어들면 게임산업의 허리가 통째로 끊긴다는 얘기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지금 사라지는 건 단순히 개발사 몇 곳이 아니라 몇 년 뒤 시장에 나올 신작과 개발팀”이라며 “대형사가 투자하거나 인수할 대상도 함께 없어져 결국 ‘K게임’ 전체의 신작 파이프라인이 끊겨 중국 게임만 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정훈/정지은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