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자산운용사 18곳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의무공개매수제도'에 제동을 걸었다. 인수자가 기존 지배주주 물량을 전량 사들인 뒤 남는 물량만 일반주주에게 공개매수하도록 한 구조가 주주 간 매각 기회 차별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들 운용사는 29일 긴급 공동 성명을 내고 내달 1일 예정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보류해달라고 촉구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상장회사의 경영권이 이전될 때 인수인이 일반주주를 대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공개매수해 소액주주에게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기회를 주는 방안이다.

금융위원회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지배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지분을 비싸게 팔고, 일반 소액주주는 경영권 변동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추진해왔다.

운용사들이 문제 삼은 건 인수자가 지배주주 지분을 장외에서 먼저 사들이도록 하는 '선행매수' 방식이다. 지난 28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정무위안은 인수자가 지배주주 지분을 인수한 뒤 50%+1주에 모자란 물량을 일반주주로부터 공개매수하도록 했다.

예컨대 지배주주가 지분 40%를 보유한 회사라면 인수자는 이 지분을 먼저 전량 매수한 뒤 일반주주에게서는 10%+1주만 공개매수하면 된다. 지배주주 지분이 이미 과반을 넘으면 일반주주에게 추가로 공개매수할 물량이 없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지분을 매도하기 어려워진다. 운용사들은 정무위안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기회를 지배주주에게 우선 배분하는 만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차별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50%+1주라는 의무매수 물량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고 했다. 잔여 주식 전량 매수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인수자금 부담과 인수합병(M&A) 위축 우려를 고려해 50%+1주로 정한 정무위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대신 지배주주 지분의 선행매수를 없애고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함께 공개매수에 응하게 하는 '비례적 공개매수' 방식을 제안했다. 모든 주주에게 같은 비율로 주식을 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지배주주 40%, 일반주주 60%인 회사에서 모든 주주가 전량을 공개매수에 응모한다고 가정하면, 인수자가 회사 전체 지분을 기준으로 지배주주에게서 약 20%, 일반주주에게서 약 30%를 사들이는 방식이다.

운용사들은 성명문에서 "경영권이 바뀔 때 주주 평등의 원칙에 따라 일반주주에게도 지배주주와 동등한 조건의 매각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며 "50%+1주 방식을 유지하더라도, 지배주주만 먼저 전량을 팔 수 있는 구조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의 경영권 거래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를 어떤 원칙으로 대우할지를 정하는 문제"라며 "본회의 처리에 앞서 주주와 기관투자가, 기업, M&A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공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번 성명에는 라이프·레인메이커·머스트·밸류파트너스·VIP·블래쉬·슬기·신영·얼라인파트너스·차파트너스·칸서스·쿼드·타이거·타임폴리오·페트라자산운용과 캄투자일임·마이알파 매니지먼트·오아시스매니지먼트가 참여했다. 이들 운용사의 합산 수탁고는 87조원이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