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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고객은 안중에도 없는 은행 노사
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
보완책 없이 영업시간만 줄여
오유림 금융부 기자
보완책 없이 영업시간만 줄여
오유림 금융부 기자
은행 문을 30분 늦게 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모바일뱅킹으로 웬만한 업무를 처리하는 시대에 모든 점포가 오전 9시부터 문을 열어야 하는지도 따져볼 수 있다. 직원들이 영업 준비를 위해 일찍 출근하면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면 이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금융 노사의 합의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고객이 언제 은행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아서다. 직원의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창구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도 함께 줄었지만,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방안은 이번 합의에서 찾기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며 위기를 넘자고 뜻을 모은 것과도 대비된다. 당시 노조는 임금 동결을 받아들였고, 오전 9시30분~오후 4시30분이던 영업시간도 오전 9시~오후 4시로 앞당겼다.
모든 점포의 개점 시간을 일률적으로 늦추는 것이 최선인지도 의문이다. 은행을 찾는 시간대와 이유는 고객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직장인이 몰린 업무지구에서는 퇴근 이후 창구 수요가 있을 수 있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에서는 오전 시간대 이용 수요가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개점 시간을 30분 늦추면서 마감 시간은 그대로 유지하면 이런 고객들에게 선택지는 하나 줄어든다.
냉정하게 보면 금융노조가 내건 영업시간 단축의 논리는 장기적으로 은행원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 모바일뱅킹 확산으로 창구를 찾는 고객이 줄고 있는 데다 인공지능 전환(AX)까지 본격화하면서 은행의 단순 업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창구를 찾지 않는다면 점포는 지금만큼 필요할지, 점포가 줄어든다면 창구 직원은 유지해야 할지 등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할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금도 국내 5대 은행의 점포는 매년 100곳가량 사라지고 있다”며 “오전 9시부터 창구를 열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은 결국 점포와 인력 효율화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은행 문을 30분 늦게 여는 것이 시대를 거스르는 일은 아니다. 다만 은행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면서 고객이 은행을 이용하는 방식까지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 변화는 반쪽짜리에 그친다. 18년 만에 은행 개점 시간을 30분 늦추기로 한 금융 노사에 남은 더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