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전설의 '금빛 레이스'…하지민, 亞게임 정상 탈환
국내에서 요트는 여전히 낯선 스포츠지만, 아시아 요트계에서 한국은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산으로 통한다. 그 중심에는 20년 넘게 거친 바다를 호령하며 한국 요트의 새 역사를 개척해 온 ‘살아있는 전설’ 하지민(37·사진)이 있다.

하지민은 2일 일본 아이치현 가마고리 가이요 요트 항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요트 남자 딩기 결선 레이스에서 최종 벌점 9점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요트계에 숱한 금자탑을 쌓아온 그는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3연패에 이어 이번 대회 정상 탈환으로 통산 4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이번 우승으로 가는 여정은 그 어느 때보다 험난했다. 요트 딩기는 총 9차례 예선 레이스 중 가장 성적이 나쁜 1개 경기의 벌점을 지울 수 있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하지민은 1차 레이스부터 상대 선수 진로 방해 판정으로 실격(벌점 19점) 처리돼 벼랑 끝으로 몰렸다. 유일한 ‘벌점 제외’ 카드를 시작과 동시에 소진해 버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베테랑의 진가가 여과 없이 발휘됐다. 요트는 단순한 근력이나 스피드보다 바람과 조류 등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을 읽어내는 오랜 경험과 연륜이 성적을 좌우하는 종목이다. 하지민은 특유의 노련함을 앞세워 이어진 레이스에서 흔들림 없이 물살을 갈랐고, 순위를 차곡차곡 끌어올려 기어코 최종 종합 1위를 거머쥐었다.

이번 우승으로 하지민은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을 확보했다. 치열한 출전권 획득 경쟁을 건너뛰고 일찌감치 올림픽 체제에 맞춰 장기적인 훈련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2008년 베이징부터 2024년 파리 대회까지 5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은 하지민은 이제 6회 연속 출전을 바라본다. 그는 2020 도쿄 올림픽 당시 한국 요트 사상 최초로 종합 7위에 오르며 톱10 진입을 달성했다.

경기 후 하지민은 “이번 우승은 그동안 따낸 어떤 메달보다 감정적으로 벅차다”며 “이제 출전 선수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해 스스로의 기량에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아직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민의 금빛 낭보에 이어 혼성 딩기 종목에서도 값진 성과가 나왔다. 김창주(41)-이경진(33) 조는 10차례 레이스 끝에 총점 20점으로 2위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2 항저우 대회(김지아-조성민 조 동메달)에 이은 이 종목 2회 연속 메달 획득이다. 금메달은 1위만 다섯 차례 기록한 전통의 강호 일본(15점)에 돌아갔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