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반도체 산단이 들어설 전남광주 서구 군공항 부지에서 현장 방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반도체 산단이 들어설 전남광주 서구 군공항 부지에서 현장 방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이 에너지를 공동 구매하고 저장시설을 함께 이용하면 관련 비용을 최대 10%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양국이 수입하는 화석연료 규모가 연간 3000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협력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에너지뿐 아니라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한일 경제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전날 밤 방송된 EBS '위대한 수업'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 협력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 회장은 지난 12일부터 오는 16일까지 'AI와 새로운 자본주의 그리고 청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전날 방송된 3강에선 '일본과의 연대, 왜 지금 얘기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최 회장은 "최근 한일 경제 연대라는 말을 하고 다닌다"면서 양국이 단순한 협력을 넘어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먼저 협력 대상으로 지목한 분야는 에너지다.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이 매년 수입하는 화석연료 규모가 약 3000억달러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두 나라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에너지를 각각 확보하는 대신 공동으로 대응하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공동 구매와 저장시설 공동 활용 등을 통해 비용을 5~10%가량 절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협력은 화석연료를 함께 구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수소 등으로 협력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특히 수소를 공동 개발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해외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와 AI 산업에서도 양국의 협력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한국이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반면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산업은 막대한 투자 비용이 협력의 이유로 꼽혔다. 최 회장은 "AI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개별적으로 투자하기보다 자원을 모아 효율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경제공동체 구상을 꺼낸 배경에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도 자리 잡고 있다. 과거 WTO 체제에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경제적 선택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는 누구와 연대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이 혼자 살아갈 수 있었다"며 "지금은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 혼자 과연 스스로를 잘 지킬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제공동체가 형성될 경우 시장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약 6조달러에 달한다. 양국이 협력하면 기업들이 더 큰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 확대도 기대되는 효과다. 최 회장은 한일 경제 연대를 통해 기존 국제 질서와 규칙을 따르는 '룰 테이커'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룰 세터'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일본을 우선적인 협력 대상으로 제시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양국은 저출생, 고령화, 저성장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사성이 있어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도 한일 경제 연대에 관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양국 사이에 역사적 문제를 비롯한 해결 과제가 남아 있지만 이를 이유로 새로운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최 회장은 "어깨를 맞대고 보조를 맞춰 계속해서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