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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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만 받으면 한국에 올거라고 그때 저와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최근 네이버의 한 사기 피해자 모임 카페에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피해를 봤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는 "언어 교환 앱에서 영국에 거주한다는 교포와 3개월을 매일 통화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며 "며칠 전 그 사람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수백억원의 유산을 남겼는데, 상속세를 낼 현금이 부족하다고 울면서 부탁해 왔다"고 전했다.

A씨는 대출까지 받아 30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냈지만, 입금 직후 상대의 연락처는 없는 번호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사랑과 돈을 모두 잃고 빚만 남았다"며 "해외로 보낸 코인을 추적해서 잡을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게시글에는 "아주 고전적인 수법", "너무 자책하지 말라" 등의 반응이 달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로맨스 스캠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가짜 신분으로 접근해 정서적 유대감을 쌓은 뒤 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다만 국제 범죄조직이 개입하고 가상자산이나 해외 계좌를 통한 자금 세탁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수사와 검거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범행을 조기에 차단하고 피해금 회수를 지원하는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군의관·아이돌 사칭에 AI 가상 인물까지

경찰청이 박상웅 의원실에 제출한 연도별 로맨스스캠 피해건수 및 피해액수 /그래프=ChatGPT
경찰청이 박상웅 의원실에 제출한 연도별 로맨스스캠 피해건수 및 피해액수 /그래프=ChatGPT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로맨스 스캠 피해 발생 건수는 1777건이다. 8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수치(2192건)의 81.1%에 이르렀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간 발생 건수는 지난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피해액은 656억원에 달했다.

범행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한 사기범은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여군 군의관을 사칭해 인스타그램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친분을 쌓은 뒤 보유재산 40억원의 30%를 나눠주겠다며 한국으로 보내는 데 필요한 배송비를 요구했다. 이후 피해자를 외교관을 사칭한 공범과 연결해 배송비 명목으로 약 672만원을 가로챘다.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를 사칭한 사례도 있었다. 사기범은 틱톡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선물로 보석을 보냈는데 운송료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함께 살 집을 마련할 비용이 필요하다'고 속였다. 이에 넘어간 피해자는 결혼자금 등의 명목으로 1억2700만원을 송금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악용한 사기 수법도 확산하고 있다.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은 지난 8월 발간한 '생성형 AI를 악용한 신종 사기 동향 분석' 보고서에서 AI가 피싱·로맨스 스캠·투자 사기의 수단으로 빠르게 진화하며 피해가 늘고 있다고 했다.

실제 SNS에서는 AI로 만든 가상 인물 사진을 내걸고 누리꾼들의 접촉을 유도하는 계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계정 속 사진은 피부가 지나치게 매끄럽거나 자세가 부자연스러운데도 댓글란에는 자신의 나이와 직업을 밝히고 개인 메시지를 요청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 경찰청 "범죄 징후 조기에 포착하기 어려워"

로맨스 스캠 피해자를 겨냥한 한 법률사무소 광고. /사진=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로맨스 스캠 피해자를 겨냥한 한 법률사무소 광고. /사진=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경찰청은 "로맨스 스캠을 단순 금전적 피해를 넘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매우 악질적 사기 범죄로 인식하고 있다"며 "국가수사본부 산하 범정부 합동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을 중심으로 엄정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SNS·메신저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지고, 범죄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과 피해자들의 불안을 활용해 사건 수임에 나서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는 "피해금을 돌려받는 일은 피해자의 몫"이라며 "(경찰이 나서도) 범인을 검거할 확률 자체가 낮다"고 주장했다. 다른 법률사무소는 "한 번이라도 (경찰서에) 가봤다면 상황이 어떤지 이해할 것"이라며 "늦으면 늦을수록 문제 해결 및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확률은 낮아진다"고 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정치권에서는 경찰청의 현행 대응체계로는 로맨스 스캠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웅 의원은 "수사기관과 온라인 플랫폼의 정보 공유를 강화해 범행을 조기에 차단하고, 피해 신고가 신속한 자금 추적과 피해 복구 지원으로 이어지도록 대응체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사안'은 사법(司)·안보(安) 이슈를 짚습니다. 검찰청 폐지·국군사관학교 통합 같은 굵직한 변화부터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이야기까지, 이정우 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기록하겠습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