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23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교육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23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교육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의 친누나가 이사장으로 있는 인천의 한 미인가 국제학교가 등록금 미환불과 임금체불 논란 속에 시설 퇴거 시한을 맞고도 수업을 계속하겠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부실 운영으로 폐원 위기에 놓인 학교의 학생들이 다른 미인가 국제학교로 옮기는 사례까지 반복되면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퇴거 요구에 소송 맞불…미인가 국제학교 논란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인천 송도 인천글로벌캠퍼스(IGC)에 입주한 미인가 국제학교 L기관은 이날로 고지된 시설 퇴거 시한을 맞았지만 수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L기관 관계자는 “IGC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학교 운영을 방해했다”며 계약 해지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IGC 관계자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4억원에 이르는 미납 임대료도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인천의 한 미인가 국제학교 L기관에 붙어 있는 시설 계약 해지 안내문.  /최영총 기자
인천의 한 미인가 국제학교 L기관에 붙어 있는 시설 계약 해지 안내문. /최영총 기자
미국 사립학교의 아시아 분원을 표방한 L기관은 국내에서 정식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은 채 연간 2200만~3000만원의 학비를 받아왔다. 최근 등록금 미환불과 퇴직 교사 임금체불, 임대료 체납 등 부실 운영 논란에 휩싸였다. 차 위원장의 친누나와 가족들이 출자금 1000만원 규모의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 주체를 변경해 기관을 운영한 사실도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L기관 측은 최근 학생들에게 “학교를 잘못 운영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우리와 같은 학교를 제재하면서 시작된 문제”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캠퍼스로 이전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를 주장하는 학부모와 교직원들은 이날 인천 연수경찰서에 L기관 운영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미환불 등록금과 체불임금은 총 2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기관은 당초 이달 31일까지 지급하겠다던 등록금 환불 시점을 다음 달 12일로 연기했다. IGC에 따르면 약속한 임대료 납부 기한도 지키지 않고 있다.

해외 유명 사립학교의 명칭과 교육과정을 내세워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는 운영 방식도 사태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명 사립학교의 이름을 사용하고 해외 교육기관의 인증을 받았다고 홍보하면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의 적법성까지 신뢰하기 쉽다”며 “실제 인가 여부나 학력 인정 여부를 별도로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L기관의 미국 본교는 본지에 “지난 5월 현지 협력사와 인허가 절차를 논의하면서 문제를 인지했다”며 “학생과 학부모들이 겪는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고발해도 수업은 계속…폐쇄명령 실효성 논란

교육당국은 미인가 국제학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제 시설 운영을 중단시킬 수단은 제한적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21일 관내 미인가 국제학교 등에 대한 3차 현장 점검을 마쳤다. 위반 사항을 시정하지 않은 시설은 다음 달 초·중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도 지난 23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등록 교육시설에 대해 11월 중 고발 또는 수사 의뢰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천 미인가 국제학교 L기관.  /최영총 기자
인천 미인가 국제학교 L기관. /최영총 기자
교육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 미인가·미등록 교육시설 213곳을 점검한 결과 미인가 국제학교는 97곳이었다. 경기 39곳, 서울 33곳, 인천 11곳 등 수도권에만 83곳(85.6%)이 집중됐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인가 없이 사실상 학교를 운영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고발이나 폐쇄명령이 내려져도 수업이 즉각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하더라도 해당 기관이 계속 수업을 진행하면 이를 강제로 막을 권한이 없고, 위반에 따른 실형도 선고된 적은 없다”며 “극단적으로 폐쇄명령을 받고도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운영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탓에 교육부가 전국 미인가·미등록 교육시설을 점검에 현재까지 폐쇄명령이 내려진 시설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실형이 선고된 사례도 없다.

다음 달 20일부터는 폐쇄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시설에 최대 6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시행된다. 하지만 학생 한 명당 연간 3000만~5000만원의 학비를 받는 일부 미인가 국제학교에 이 같은 제재가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식 인가를 받은 국제학교로 자녀를 옮기려는 학부모들의 문의도 늘고 있다. 인천의 한 인가 국제학교 관계자는 “최근 입학설명회와 등록 관련 문의가 부쩍 증가했다”며 “학교 운영의 안정성과 학력 인정 여부를 확인하려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부실 운영으로 피해가 발생해도 학생들이 다른 미인가 국제학교로 이동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L기관에서도 일부 학생이 인천 인근이나 서울 강남의 다른 미인가 국제학교로 옮겼다. 앞서 폐원한 경기 시흥의 미인가 국제학교에서 L기관으로 전학 온 학생도 10여명에 달했다. 글로벌교육연합이 학부모 235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미인가 국제학교가 폐쇄되더라도 자녀를 국내 일반학교로 보내겠다는 응답은 7.7%에 그쳤다.
인천 미인가 국제학교가 입주해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IGC) 전경.  /최영총 기자
인천 미인가 국제학교가 입주해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IGC) 전경. /최영총 기자
미인가 국제학교는 교육의 질을 검증하기 어려운 데다 정식 인가를 받지 않아 부실 운영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서울의 일부 미인가 국제학교에서는 정식 교원 자격이나 교육 경력 대신 해외 공과대학 졸업 이력만 소개된 인력이 과학 과목을 가르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시설은 해외 교육기관의 인증을 받았다고 홍보하지만 해당 인증기관의 공개 명단에서 학교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미인가 국제학교를 제도권에 편입시키기 위한 컨설팅 수요도 늘고 있다. 일부 시설은 학교법인 설립이나 대안교육기관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대안교육기관법은 외국 대학 진학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외국어를 주된 교육 언어로 사용하는 시설 등의 등록을 제한하고 있어 교육 당국은 부정적이다.

학교 인가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학부모들에게 수천만원의 예치금 약정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 9월 ‘미인가·미등록 교육시설 제재 실효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며 “과징금 신설과 형사처벌 강화, 이행강제금 제도 개선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