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인재포럼 2026’ 둘째 날인 5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세션에서 (왼쪽부터) 나태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좌장), 김봄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청장년직업능력연구센터장, 이정재 현대경제연구원 교육본부 본부장이 ‘일자리가 사라진다: 청년 고용의 새로운 도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문경덕 기자
‘글로벌인재포럼 2026’ 둘째 날인 5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세션에서 (왼쪽부터) 나태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좌장), 김봄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청장년직업능력연구센터장, 이정재 현대경제연구원 교육본부 본부장이 ‘일자리가 사라진다: 청년 고용의 새로운 도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문경덕 기자
자료 검색과 데이터 정리, 회의록 작성, 보고서 초안 만들기. 과거 신입사원이 입사 후 몇 달간 도맡아 하던 업무들이다.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불과 몇 분 만에 이 일들을 해치운다. AI가 기초 실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일하며 배울 수 있는 ‘첫 계단’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기업은 당장 실무에 투입할 경력직만 찾고, 경력을 쌓을 곳 없는 청년들은 인턴십에 매달리거나 대학 졸업을 한없이 미루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5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글로벌인재포럼 2026’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청년 고용의 새로운 도전’ 세션에서는 AI 시대 가장 짙은 그늘이 드리운 청년 일자리 해법이 집중 논의됐다. 좌장을 맡은 나태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모든 변화에는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는 ‘철의 법칙’처럼 AI 시대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청년 고용”이라며 “요즘 4년제 대학생들이 학교 떠나는 것을 두려워해 8년, 10년씩 적을 두고 졸업을 미루는 씁쓸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신입의 ‘학습 사다리’ 걷어찬 AI…인턴 경쟁률 10 대 1 넘어

이날 전문가들은 일자리 전체가 아니라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초급 일자리’가 급감하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김봄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청장년직업능력연구센터장은 “미국에서도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초급 고용은 16% 줄어든 반면 같은 직종의 경력직 고용은 오히려 늘었다”며 “한국 역시 이미 좁아진 청년들의 첫 경력 진입 경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가장 먼저 닫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기초 업무를 AI가 대신하면서 기업들이 신입사원에게도 경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정재 현대경제연구원 교육본부장이 제시한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55%(300인 미만 기업은 74%)가 정기공채 없이 수시채용만 진행할 계획이며, 신규 채용 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67% 이상이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꼽았다.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28%가 이미 경력을 가진 이른바 ‘중고 신입’이다. 이 본부장은 “기업은 준비된 사람을 원하는데 청년은 취업해야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어렵게 취업해도 AI가 기초 과업을 대신해 배울 기회가 줄어드는 ‘첫 경력의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년들은 경력 한 줄을 만들기 위해 정부 인턴 사업으로 몰리고 있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의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 인턴형 경쟁률은 평균 6 대 1, 정보기술(IT) 직무는 10 대 1을 웃돈다. 특히 참여자의 약 60%가 졸업생이 아닌 대학 재학생이다. AI 대체 위험이 높은 경영·사무, 광고·마케팅 직무일수록 쏠림이 심하다. 김 센터장은 “신입사원이 되기 위해 대학 때부터 경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라며 “청년 고용의 병목은 청년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경험을 축적할 제도적 공간의 부족에 있다”고 지적했다.
신입에게도 "경력 가져와라"…AI 역습에 설 자리 잃은 청년들 [글로벌인재포럼 2026]

“선배에게 깨지며 배우던 시절 끝…AI 검증·판단력 키워야”

기업 현장에서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역량의 기준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 본부장은 “과거 신입사원들은 시장조사를 하며 산업을 이해하고, 엑셀로 데이터를 정리하며 숫자의 흐름을 읽고, 선배에게 깨지면서 논리를 배웠다”며 “AI가 가져간 것은 단순한 과업이 아니라 신입사원을 교육하던 경로 그 자체”라고 진단했다.

현장 리더들 사이에서는 “요즘 신입에게 일을 시키면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가져오는데 어떻게 피드백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토로가 잇따른다. 이 본부장은 “단순 업무를 반복하며 일을 배우는 신입은 과거의 신입사원”이라며 “이제는 AI가 만든 초안을 비교·검증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AI와 함께 일하며 배우기’로 기업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입이 직접 손발로 뛰는 업무량은 줄어든 대신 문제의 본질을 정의하고 시사점을 도출하는 업무의 깊이와 책임은 오히려 무거워졌다는 설명이다.
신입에게도 "경력 가져와라"…AI 역습에 설 자리 잃은 청년들 [글로벌인재포럼 2026]

알바마저 키오스크·고령층과 경쟁…“기초 학업 역량이 무기”

화이트칼라 직무뿐 아니라 청년들이 첫 사회 경험을 쌓던 서비스 일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화상으로 참여한 숀 도허티 보스턴칼리지 교육 및 정책학 교수는 “데이터 입력, 기초 코딩, 문서 초안 작성, 초급 회계 등 화면 기반의 저숙련 업무는 AI로 가장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며 “과거 청년들이 첫 직장 경험을 쌓던 소매·음식서비스 일자리마저 키오스크와 셀프 계산대로 대체되거나, AI로 기존 일자리를 잃은 고령 근로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도허티 교수는 해법으로 현장 실습이 결합된 고품질 직업교육훈련(CTE)과 탄탄한 ‘기초 학업 역량’을 제시했다. 물리적 현장에서 일하는 숙련 기능직이나 보건의료, 첨단 제조, 사이버보안 등의 직무는 AI가 인력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해 소득 상한선을 높여준다는 분석이다. 실제 도허티 교수가 미국 코네티컷주의 우수 기술계 고등학교를 연구한 결과, 입학생들은 비입학생보다 분기당 소득이 약 32% 높았다. 그는 “소득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기술 교육 안에 통합된 수학·언어 등 기초 역량 향상에서 비롯됐다”며 “기술 변화가 빠를수록 기초 역량이 높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만큼, 현장 실무 교육에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결합해야 더 높은 임금과 기대수익으로 이어진다”고 조언했다.

김 센터장 역시 AI 시대에 역설적으로 중요해진 역량으로 ‘대면 협업 능력’을 꼽았다. 그는 “요즘 대학생들이 대인관계를 힘들어해 ‘팀플(팀 프로젝트)’이 많은 수업을 기피하지만, 일경험 사업 참여자들이 취업에 가장 도움이 됐다고 꼽는 것은 결국 동료와 부딪히며 갈등을 해결한 경험”이라며 “AI가 만든 결과물을 두고 서로 논의하며 다듬어가는 협업 과정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했다.
신입에게도 "경력 가져와라"…AI 역습에 설 자리 잃은 청년들 [글로벌인재포럼 2026]

"부처 칸막이 깨고 경력 공인…숨은 ‘좋은 기업’ 알려야"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끊어진 ‘첫 계단’을 건널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정교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센터장은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부처 간 일경험 데이터 통합’을 꼽았다. 그는 “한 청년이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고용부 사업에 각각 참여해도 데이터가 흩어져 있어 입사 지원 때 청년 스스로 서류를 모아 공신력을 증명해야 한다”며 “적어도 정부 사업 이력은 통합 관리해 실제 경력으로 공인·표준화하고, 단순 수료율이 아니라 취업 후 경력 경로까지 추적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과 청년 간 일자리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해 ‘좋은 기업’을 발굴해 알리는 작업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청년들은 대기업과 공기업만 선호하지만, 지역이나 중소·중견기업 중에도 청년 인재를 간절히 원하고 처우가 훌륭한 알짜 기업이 많다”며 “청년들이 몰라서 가지 못하는 좋은 일자리와 기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발굴해 안내해주는 제도가 실질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