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車 깎아달라"…'역대급 임금안' 걷어찬 기아 노조 [김일규의 네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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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금만 2000만원 넘는데도…기아 노조만 임단협 부결
퇴직 후 75세까지만 차값 25% 할인에 반발…"후퇴 안돼"
베이비부머 퇴직 본격화 영향…젊은 직원들과는 노노갈등
퇴직 후 75세까지만 차값 25% 할인에 반발…"후퇴 안돼"
베이비부머 퇴직 본격화 영향…젊은 직원들과는 노노갈등
올해 국내 완성차 업계의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 예년과 다르게 별다른 잡음 없이 마무리되고 있다. 업계 '맏형'인 현대자동차에 이어 수년간 파업사태를 겪었던 르노코리아가 지난 7~8월 무분규 타결한 데 이어 이달 들어 한국GM도 생산차질 없이 교섭을 끝냈다.
문제는 기아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만큼 현대차 노사 합의안과 비슷한 수준에서 무리 없이 타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기아 노사 합의안이 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아 노사는 지난달 30일 '역대급'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은 기본급 월 9만8000원(호봉 승급분 포함) 인상, 경영성과금 200%+400만원, 생산·판매목표 달성 격려금 100%, 품질브랜드 향상 특별 격려금 150만원, 전통시장 상품권 25만원, 무상주 49주 등을 담았다.
기본급을 제외하고도 2000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타결되면 곧바로 1000만원가량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인상안인데다 앞서 타결된 현대차 노사 합의안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비슷한 합의안이 현대차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61.9% 찬성으로 가결된 만큼 기아 조합원 투표 역시 가결이 예상됐다. 타결됐다면 이번 추석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일 실시된 투표에서 예상과 다르게 부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첫 번째 문제는 기아 노조가 다른 완성차 업체와 달리 임금안과 단협안을 분리해 투표를 실시한다는 점이다. 이번 투표에서 임금안은 58.7% 찬성으로 가결됐으나, 단협안이 57.6% 반대로 부결됐다. 둘 중 하나라도 부결되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
기아 노조의 임단협 분리투표에 따라 2000년 이후 부결된 횟수는 총 3회다. 두 번은 단협안 부결, 한 번은 임금안과 단협안 모두 부결이었다. 명확하게 숫자로 표시되는 임금안과 달리 단협안은 뚜렷한 유인책이 없으면 반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임금안과 단협안을 합쳐 투표했다면 가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단협안만 반대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평생사원증'에 있다. 기아는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에게 평생사원증을 지급하고, 차량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퇴직한 뒤에도 기아 차량을 구매할 경우 2년마다 평생 30%를 깎아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번 단협안에서 차량 할인 조건이 기존보다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노사 합의안은 차량 구입 때 할인 횟수를 2년 주기에서 3년으로 늘리고, 평생 할인 대신 75세까지로 연령을 제한하는 한편 할인율은 30%에서 25%로 낮췄다.
사측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부터 교통사고 위험도가 뚜렷이 증가하고, 80세 이상부터는 위험도가 더 가파르게 높아진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노측은 대신 만 60세 임금을 59세 기본급의 90%에서 95%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담은 만큼 조합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조합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절반 이상이 단협안을 반대했다. 평균 수명을 80세로 보더라도 차량 할인 혜택 감소에 따른 손실이 1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퇴직 후 80세까지 계속해서 차를 바꾼다는 비현실적 가정에 따른 계산인 데도 기존 단협에서 후퇴했다는 점이 조합원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기아 노조를 구성하는 인구 피라미드에서 찾을 수 있다. 기아의 국내 임직원 구성을 보면 작년 기준 50세 이상이 1만8874명으로, 전체의 53.2%에 이른다. 2019년 40.0%에서 2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회사를 다닌 기간보다 다닐 기간이 더 짧게 남은 이들이 절반을 넘는 만큼 퇴직 이후 혜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 퇴직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기아의 50~60대 퇴직자는 2019년 570명에서 지난해 904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하면서다. 퇴직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평생사원증에 대한 민감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기아 직원들의 고령화에 따른 단협안 부결은 노노(勞勞)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지도 모르는데 퇴직 이후 차량 할인 문제 때문에 당장 성과금을 못 받게 됐다"며 불만이다.
재협상 결과가 고령 직원들에게 반드시 유리한 방향으로 나올 지도 미지수다. 재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강성 투쟁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 가뜩이나 출고 대기가 긴 가운데 소비자 피해마저 우려되는 대목이다. 추석 이후 재협상이 주목받는 이유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문제는 기아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만큼 현대차 노사 합의안과 비슷한 수준에서 무리 없이 타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기아 노사 합의안이 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아 노사는 지난달 30일 '역대급'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은 기본급 월 9만8000원(호봉 승급분 포함) 인상, 경영성과금 200%+400만원, 생산·판매목표 달성 격려금 100%, 품질브랜드 향상 특별 격려금 150만원, 전통시장 상품권 25만원, 무상주 49주 등을 담았다.
기본급을 제외하고도 2000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타결되면 곧바로 1000만원가량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인상안인데다 앞서 타결된 현대차 노사 합의안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비슷한 합의안이 현대차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61.9% 찬성으로 가결된 만큼 기아 조합원 투표 역시 가결이 예상됐다. 타결됐다면 이번 추석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일 실시된 투표에서 예상과 다르게 부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첫 번째 문제는 기아 노조가 다른 완성차 업체와 달리 임금안과 단협안을 분리해 투표를 실시한다는 점이다. 이번 투표에서 임금안은 58.7% 찬성으로 가결됐으나, 단협안이 57.6% 반대로 부결됐다. 둘 중 하나라도 부결되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
기아 노조의 임단협 분리투표에 따라 2000년 이후 부결된 횟수는 총 3회다. 두 번은 단협안 부결, 한 번은 임금안과 단협안 모두 부결이었다. 명확하게 숫자로 표시되는 임금안과 달리 단협안은 뚜렷한 유인책이 없으면 반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임금안과 단협안을 합쳐 투표했다면 가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단협안만 반대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평생사원증'에 있다. 기아는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에게 평생사원증을 지급하고, 차량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퇴직한 뒤에도 기아 차량을 구매할 경우 2년마다 평생 30%를 깎아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번 단협안에서 차량 할인 조건이 기존보다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노사 합의안은 차량 구입 때 할인 횟수를 2년 주기에서 3년으로 늘리고, 평생 할인 대신 75세까지로 연령을 제한하는 한편 할인율은 30%에서 25%로 낮췄다.
사측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부터 교통사고 위험도가 뚜렷이 증가하고, 80세 이상부터는 위험도가 더 가파르게 높아진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노측은 대신 만 60세 임금을 59세 기본급의 90%에서 95%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담은 만큼 조합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조합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절반 이상이 단협안을 반대했다. 평균 수명을 80세로 보더라도 차량 할인 혜택 감소에 따른 손실이 1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퇴직 후 80세까지 계속해서 차를 바꾼다는 비현실적 가정에 따른 계산인 데도 기존 단협에서 후퇴했다는 점이 조합원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기아 노조를 구성하는 인구 피라미드에서 찾을 수 있다. 기아의 국내 임직원 구성을 보면 작년 기준 50세 이상이 1만8874명으로, 전체의 53.2%에 이른다. 2019년 40.0%에서 2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회사를 다닌 기간보다 다닐 기간이 더 짧게 남은 이들이 절반을 넘는 만큼 퇴직 이후 혜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 퇴직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기아의 50~60대 퇴직자는 2019년 570명에서 지난해 904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하면서다. 퇴직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평생사원증에 대한 민감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기아 직원들의 고령화에 따른 단협안 부결은 노노(勞勞)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지도 모르는데 퇴직 이후 차량 할인 문제 때문에 당장 성과금을 못 받게 됐다"며 불만이다.
재협상 결과가 고령 직원들에게 반드시 유리한 방향으로 나올 지도 미지수다. 재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강성 투쟁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 가뜩이나 출고 대기가 긴 가운데 소비자 피해마저 우려되는 대목이다. 추석 이후 재협상이 주목받는 이유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