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가이던스(하위 규정) 발표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와 완성차·배터리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이던스 내용에 따라 이들 기업의 내년 북미 사업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관련 기업은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美 “한국 우려 진지하게 받아들여”

한국과 미국은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이도훈 외교부 2차관과 호제이 퍼낸데즈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이 주재한 가운데 IRA의 한국산 전기차 세액공제(보조금) 차별과 관련, 건설적 논의를 지속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 차관은 재무부 하위 규정에 우리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퍼낸데즈 차관은 “한국의 우려를 처음부터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든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8월 시행된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형식으로 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전기차 배터리 광물 및 부품도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조달해야 하는 조건이 추가된다. 북미 판매 차량 대부분을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 중국 광물·부품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업체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WSJ “한국 반발 가장 커”

이도훈 외교부 2차관(왼쪽)과 호제이 퍼낸데즈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
이도훈 외교부 2차관(왼쪽)과 호제이 퍼낸데즈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
한국 정부는 IRA 시행 직후부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주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윤관석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등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이 워싱턴DC를 방문해 IRA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9월부터는 한·미 정부 협상단 실무협의체를 가동하고 있다. 11월에야 미국과 첫 협의를 시작한 유럽연합(EU)보다 발빠른 행보다.

일부 성과도 있었다.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전기차 세액공제 3년 유예를 핵심으로 하는 IRA 개정안 발의를 이끌어냈다. 미국 매체도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IRA에 가장 반발하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보도했고, 블룸버그는 “한국이 유독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난달 ‘IRA 대응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제일 적극적으로 미국에 문제를 제기하고 동맹국과의 공조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상업용 전기차 범위 확대 관건

그럼에도 당장 IRA 개정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IRA는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하루나 한 주, 한 달 내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IRA는 미국 민주당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일사천리로 밀어붙여 탄생한 법이다.

정부는 법 개정을 설득하는 한편 재무부 가이던스를 통해 ‘상업용 친환경차’ 범위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북미 내 최종 조립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 상업용 친환경차에 우버, 리프트 등 차량공유 기업이 구입한 렌터카, 리스 차량을 포함하면 현대차도 상당한 세액공제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은 구체화가 필수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IRA 세부 사항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