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산 위스키는 왜 비쌀까…숙성기간 매년 3%씩 증발
18세기 초까지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지방의 지역술이었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1707)되고 주세가 부과되면서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세금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수입 포도주를 담았던 빈 참나무통(오크통)에 밀주를 담아 산속이나 지하 창고에 숨겼다.

시간이 지난 뒤 오크통을 열어 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무색이었던 술이 황금빛으로 변한 것. 알코올의 거친 맛이 부드러워지고, 오크통에서 나오는 각종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우연한 ‘숙성’이 만들어낸 위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증류주가 됐다.

위스키가 여타 증류주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숙성이다. 위스키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17년산’ ‘12년산’이라는 단어는 친숙하다. 17년산은 오크통 안에서 17년간 숙성됐다는 뜻이다.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연산 표시는 최종적으로 한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된 원액 중 가장 낮은 것을 기준으로 한다. 12년산으로 표시된 제품은 포함된 원액의 최소 숙성기간(연산)이 12년이다. 스코틀랜드 법령에 따라 최소 3년은 숙성해야 위스키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무연산(연산이 표기돼 있지 않은) 위스키도 3년은 숙성됐다고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 숙성기간이 길수록 비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해마다 자연적으로 조금씩 증발하기 때문이다. 연간 약 2~3%가 사라지기 때문에 희소성이 생긴다. 다른 하나는 숙성되면서 풍미가 더해지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높은 연산이 맛있는 위스키라고 할 수는 없다. 너무 오래 숙성되면 나무의 특성이 많이 반영되면서 풍미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위스키 원액의 특징, 증류소의 특징, 오크통의 특징이 가장 균형을 잘 이루는 숙성 기간을 10~12년으로 본다.

숙성기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풍미와 좋아하는 부드러움의 정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연산 표기가 없다고 저급한 위스키라고 말할 수 없다. 무연산 제품은 영어로 ‘NAS(no age statement)’라고 부르는데 세계적으로 다양한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조니워커 블루 등이 무연산 중 좋은 술로 알려져 있으며, 싱글몰트 위스키 맥켈란 레어 캐스크도 무연산이다. 조니워커 블루는 세계적 마스터블렌더인 짐 베버리지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위스키의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숙성연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블렌딩했다고 한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