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대신 자판기 모양 문… "아~ 인스타서 본 망원동 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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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없는 가게가 뜬다
간판보다 맛·서비스에 집중
남들 모르는 곳 찾아가는 성취감
SNS로 공유하는 재미도 쏠쏠
무간판 가게 서울에만 100여곳
간판 대신 인테리어로 차별화
"이런 가게 이름 알아야 힙스터"
간판보다 맛·서비스에 집중
남들 모르는 곳 찾아가는 성취감
SNS로 공유하는 재미도 쏠쏠
무간판 가게 서울에만 100여곳
간판 대신 인테리어로 차별화
"이런 가게 이름 알아야 힙스터"
간판 없는 가게는 옛날부터 있었다. ‘굴다리 밑 칼국수집’ ‘육교 앞 해장국집’ 등 동네 어귀에 하나씩 있던, 세월의 더께를 지닌 노포(老鋪)가 대부분이었다. 요즘 간판 없는 가게는 전국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상권에 밀집해 있다. 한남동, 가로수길, 성수동, 망원동, 홍대 앞, 연남동 등이다. 1년 버티기도 힘들다는 전쟁터에서 간판이 사라진 이유는 명확하다. 이들 상권을 주로 찾는 20~30대의 소비 트렌드가 ‘남들 다 아는 곳’에서 ‘나만 아는 곳’을 몰래 찾아가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간판 없이 장사를 한다는 것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소비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주된 사용자라는 점도 작용했다. 10명만 다녀가면 100명의 사람이 몰려올 정도로 SNS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간판 없는 곳이 하룻밤 사이 명소가 되기도 한다. 거리로 나온 ‘고스트 마케팅’…간판 전쟁 끝
간판 없는 가게에는 ‘본질에 충실하겠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있다. 종로구 익선동 골목 안에 있는 ‘간판 없는 가게’는 아예 이름이 ‘간판없는 가게’다. 실제 간판이 없고 메뉴만 써 있는데도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이 가게를 방문한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 후기를 올리면서다. 정종욱 ‘간판없는 가게’ 사장은 “옛날 가게처럼 골목에 숨어 있는 간판 없는 맛집 콘셉트를 차용했다”며 “입소문만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간판 없는 가게는 서울에만 100여 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간판 없는 가게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고스트 마케팅’이 진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스트 마케팅은 일부 브랜드가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메뉴판에는 없는 비밀 메뉴를 판매하거나 특정 시간대에만 판매하는 한정판을 내놓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로선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기업은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자연스러운 바이럴(구전) 마케팅을 유도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들이 모르는 곳을 찾아갔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숨은 맛집을 찾는 재미, 이를 공유할 때 느끼는 쾌감 등이 맞물려 주요 상권에서 간판이 없어지거나 작아지고 있다”며 “간판이 없는 곳에 가면 주인이 판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자신감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찾고 찍고 공유… ‘힙스터’ 문화에 SNS 결합
가게 주인이 과감하게 간판을 없앨 수 있는 힘은 SNS에서 나온다. 간판 없이 성공한 가게의 원조 격은 경리단길 뒷골목에 있는 장진우 거리다. 2014년부터 화제가 된 이 거리에 있는 식당의 상당수는 간판이 없다. 장진우 씨가 운영하는 장진우식당, 그랑블루, 마틸다 등과 일본 가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메시야는 어떻게 생긴 곳인지 미리 찾아보고 가지 않으면 한번에 찾기 어렵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김세후 씨(27)는 “간판이 없어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많이 봤기 때문에 가게의 문과 인테리어 자체가 간판 역할을 한다”며 “이런 가게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트렌드에 얼마나 민감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척도”라고 말했다.
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을 좇는 이른바 ‘힙스터’ 문화가 확산된 것도 이런 추세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천편일률적인 대형 프랜차이즈에 대한 선호보다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더 중요한 세대들이 소비층으로 등장했다”며 “이들은 남과 같은 것을 싫어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간판 뗀 가게들, 이제 ‘콘셉트 경쟁’
간판 없는 가게가 늘면서 이들 간 콘셉트 경쟁도 치열하다. 간판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망원동 주상복합건물의 구석진 한쪽에 자리한 ‘자판기카페’는 간판 대신 출입문을 분홍색 자판기로 대체했다. 밖에서 보면 어떤 공간인지 전혀 모르지만 안은 줄을 서서 대기할 만큼 붐비는 공간이 됐다. 동대문의 칵테일바 겸 카페인 ‘장프리고’는 밖에서 보면 과일 가게처럼 생겼다. 제철 과일들이 쌓인 나무 박스 뒤에 거대한 냉장고들이 서 있고, 화살표를 따라 하나의 냉장고 문을 열면 비밀 공간과 같은 2층짜리 넓은 바가 등장한다.
한남동의 디저트 카페 ‘옹느세자메’에도 간판이 없다. 대중목욕탕이라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사용한 이 카페는 ‘한남동 목욕탕 카페’라는 SNS태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가게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카운터 앞에 있는 작은 명함뿐. 사람들이 몰려들며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에 두 번째 매장을 냈다. 김민 옹느세자메 팀장은 “브랜드보다 가게의 서비스와 콘셉트 자체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다른 곳에 매장을 더 내더라도 간판은 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노유정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그래픽=이정희 기자 sweat@hankyung.com
주인이 간판 없이 장사를 한다는 것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소비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주된 사용자라는 점도 작용했다. 10명만 다녀가면 100명의 사람이 몰려올 정도로 SNS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간판 없는 곳이 하룻밤 사이 명소가 되기도 한다. 거리로 나온 ‘고스트 마케팅’…간판 전쟁 끝
간판 없는 가게에는 ‘본질에 충실하겠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있다. 종로구 익선동 골목 안에 있는 ‘간판 없는 가게’는 아예 이름이 ‘간판없는 가게’다. 실제 간판이 없고 메뉴만 써 있는데도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이 가게를 방문한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 후기를 올리면서다. 정종욱 ‘간판없는 가게’ 사장은 “옛날 가게처럼 골목에 숨어 있는 간판 없는 맛집 콘셉트를 차용했다”며 “입소문만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간판 없는 가게는 서울에만 100여 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간판 없는 가게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고스트 마케팅’이 진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스트 마케팅은 일부 브랜드가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메뉴판에는 없는 비밀 메뉴를 판매하거나 특정 시간대에만 판매하는 한정판을 내놓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로선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기업은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자연스러운 바이럴(구전) 마케팅을 유도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들이 모르는 곳을 찾아갔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숨은 맛집을 찾는 재미, 이를 공유할 때 느끼는 쾌감 등이 맞물려 주요 상권에서 간판이 없어지거나 작아지고 있다”며 “간판이 없는 곳에 가면 주인이 판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자신감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찾고 찍고 공유… ‘힙스터’ 문화에 SNS 결합
가게 주인이 과감하게 간판을 없앨 수 있는 힘은 SNS에서 나온다. 간판 없이 성공한 가게의 원조 격은 경리단길 뒷골목에 있는 장진우 거리다. 2014년부터 화제가 된 이 거리에 있는 식당의 상당수는 간판이 없다. 장진우 씨가 운영하는 장진우식당, 그랑블루, 마틸다 등과 일본 가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메시야는 어떻게 생긴 곳인지 미리 찾아보고 가지 않으면 한번에 찾기 어렵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김세후 씨(27)는 “간판이 없어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많이 봤기 때문에 가게의 문과 인테리어 자체가 간판 역할을 한다”며 “이런 가게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트렌드에 얼마나 민감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척도”라고 말했다.
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을 좇는 이른바 ‘힙스터’ 문화가 확산된 것도 이런 추세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천편일률적인 대형 프랜차이즈에 대한 선호보다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더 중요한 세대들이 소비층으로 등장했다”며 “이들은 남과 같은 것을 싫어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간판 뗀 가게들, 이제 ‘콘셉트 경쟁’
간판 없는 가게가 늘면서 이들 간 콘셉트 경쟁도 치열하다. 간판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망원동 주상복합건물의 구석진 한쪽에 자리한 ‘자판기카페’는 간판 대신 출입문을 분홍색 자판기로 대체했다. 밖에서 보면 어떤 공간인지 전혀 모르지만 안은 줄을 서서 대기할 만큼 붐비는 공간이 됐다. 동대문의 칵테일바 겸 카페인 ‘장프리고’는 밖에서 보면 과일 가게처럼 생겼다. 제철 과일들이 쌓인 나무 박스 뒤에 거대한 냉장고들이 서 있고, 화살표를 따라 하나의 냉장고 문을 열면 비밀 공간과 같은 2층짜리 넓은 바가 등장한다.
한남동의 디저트 카페 ‘옹느세자메’에도 간판이 없다. 대중목욕탕이라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사용한 이 카페는 ‘한남동 목욕탕 카페’라는 SNS태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가게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카운터 앞에 있는 작은 명함뿐. 사람들이 몰려들며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에 두 번째 매장을 냈다. 김민 옹느세자메 팀장은 “브랜드보다 가게의 서비스와 콘셉트 자체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간판을 달지 않았다”며 “다른 곳에 매장을 더 내더라도 간판은 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노유정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그래픽=이정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