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통화정책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올초까지만 해도 ‘기준금리 인상이냐, 동결이냐’를 두고 시장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갈렸는데 최근 들어 인하 가능성이 변수로 등장했다. 국내 경기 침체와 글로벌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수개월 새 부쩍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줄곧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을 유지하던 미국 중앙은행(Fed)이 갑자기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 기조로 방향을 튼 점도 금리 인하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상대적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은 한층 옅어지게 됐다. 오는 1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이 14일 국내 대표 경제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명이 “올해 금리 인상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는 내년께 금리 인하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경기침체 그림자…韓銀, 연내 금리인상 힘들 것"
올해 금리 인상 물 건너갈 듯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 올린 뒤 “여전히 중립금리(경기를 확장 또는 위축시키지 않는 적정 금리) 수준에 못 미친다”며 추가 인상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한은이 금리 인상 방침의 명분으로 제시한 가계대출 급증 등에 따른 금융불균형 확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국내 자금 유출 가능성 등이 최근 약해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가계대출 증가세는 크게 둔화됐고,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해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했던 Fed는 지난달 동결 방침으로 선회했다. 한은으로선 국내 실물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등 떠밀리듯 금리를 올려야 할 필요성이 낮아진 것이다. 당장 18일 금통위에서도 ‘만장일치’ 금리 동결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 인상이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은 “지난해 금리 인상 시점이 지나치게 늦어진 측면이 있는 만큼 한은이 올해 더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도 “올해에는 한은이 금리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반기 경기 침체가 둔화되거나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제하에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전문가도 있다. 박석길 JP모간 본부장은 “한은이 매파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서 금리 인상 전망을 거두기엔 다소 이르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경기 상황에 따라 하반기께 1회 정도 인상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인하 가능성도 솔솔

일부에선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제기한다. 경기지표 부진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들어 석 달 연속 0%대에 그치자 장기 불황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최근 경기 하강 가능성이 불거진 이후 재닛 옐런 전 미국 Fed 의장 등 일부 전문가가 금리 인하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관리 측면에서만 보면 올해 금리를 낮추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우려가 있어 한은이 지금은 금리 인하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럽겠지만 내년 들어 미국이 금리를 내리고 한국의 성장률 둔화가 더 심해지면 한은도 금리 인하 카드를 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파적 성향을 강하게 내비치던 Fed도 경기 둔화 조짐이 보이자 갑자기 돌아섰다”며 “한은도 올해 성장률이 전망치(2.6%)를 밑돌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연말께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김익환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