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노미네이션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솔솔 나오는 가운데 이를 단행했을 때 비용과 편익이 어느 정도가 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1000원을 1원으로 하는 등 화폐의 액면 가치를 낮추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 2004년 한국은행은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했을 때 비용과 편익을 계산한 적이 있다. 당시 한은은 내부에 태스크포스(TF)팀까지 꾸려 화폐개혁을 추진하다 물가상승 우려와 기획재정부의 반대 때문에 접었다. 당시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직접 비용은 2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새 화폐 발행 등 직접비용만 3兆 넘어
지금 쓰는 화폐를 폐기하고 새로운 화폐를 만드는 데만 3000억원이 든다고 봤다. 금융기관 간 결제시스템을 조정하고 기업과 은행의 내부 전산시스템을 수정하는 비용, 현금자동입출금기·자동판매기 등 교체 비용도 고려됐다. 여기에 주유기, 표 발매기, 승차권과 입장권, 금액이 적힌 각종 문서와 식당 차림판 등을 바꾸는 데도 돈이 든다. 이때 비용은 정부 예산과 민간 지출이 다 포함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업과 유통업, 운수업과 관광업 등이 특히 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지금은 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2004~2018년 소비자물가만 1.37배 올랐다. 2조6000억원에 물가 상승분만 단순 대입해도 3조5600억원이 된다. 한은은 2004년 추산 때 물가상승 가능성과 경제 심리 불안 등에 따른 간접 비용은 감안하지 않았는데 이런 것을 다 고려하면 1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화폐개혁의 편익은 얼마나 될까. 한은은 2004년 “리디노미네이션의 경제 효과가 10년간 5조원 정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종 금융 거래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계산과 지급, 기장의 편의성이 크게 향상돼 비용을 뛰어넘는 편익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계와 소프트웨어 교체 등으로 생기는 일자리와 소비 진작 효과, 한국의 대외 위상 제고 등까지 감안하면 편익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내수경기 부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경기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폐와 결제시스템, 기계 등 교체로 인한 비용은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데 비해 계산과 지급 등 편의성 향상으로 인한 편익은 불확실한 측면이 있어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편익은 불확실한데 비용과 위험은 확실하다”며 “안 그래도 국내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화폐 단위 변경까지 단행하면 혼란이 커질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서민준/성수영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