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당 심리시간 평균 8분 그쳐
허술한 심리에 납세자들만 피해
정부가 물린 세금에 불만이 있는 납세자들이 가장 먼저 하소연하는 권리구제 기관인 조세심판원의 현실을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한국은 과세 처분에 대해선 납세자가 행정소송을 걸기 전에 반드시 조세심판원 감사원 국세청 중 한 곳에서 먼저 판단을 받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이 중 90.4%는 조세심판원을 찾는다. 세금을 물린 국세청이나 조세 전문기관이 아닌 감사원의 문을 두드리는 납세자는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런 조세심판원이 국세청(국세), 관세청(관세), 지방자치단체(지방세)에 맞서 납세자 권익을 보호해줄 만한 ‘실력’을 갖췄느냐에 있다. 대다수 조세 전문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유는 인력 부족이다. 지난해 조세심판원은 총 7638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6명의 상임심판관이 사건마다 2명씩 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1명당 연간 2500여 건에 대한 결정을 내린 셈이 된다.
이러다 보니 의견 진술시간을 포함한 사건당 심리시간은 평균 8분에 머물렀다. 과세당국과 납세자가 첨예하게 다투는 사안에 대해 심판관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결정을 내리는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실 심판’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조세심판원이 납세자의 손을 들어주면 국세청은 불복할 수 없지만 반대로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면 납세자는 행정소송을 통해 다시 구제받을 길이 생긴다”며 “조세심판원 스스로 ‘부실 심판’을 의식해 어려운 사건은 기각 처분해 법원 판단으로 돌린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상임심판관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세금 관련 업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선임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교류를 통해 ‘조세경력 3년 이상’이란 자격요건을 ‘꼼수’로 채운다는 얘기다.
과도한 업무량과 전문성 부족은 납세자 피해로 돌아온다. 지난해 터진 ‘지방세 경정청구 소동’이 대표적인 예다. 조세심판원은 작년 5월 “2016년 12월 이전에 경매로 산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는 4.0%(승계 취득세율)가 아니라 2.8%(원시 취득세율)가 맞다”며 기존 판결을 뒤엎는 결정을 내렸다. 두 달 뒤 행정안전부가 “조세심판원 판결이 틀렸다”는 내용의 유권해석을 내놓자 조세심판원 스스로 자신의 심판을 뒤집는 결정을 11월에 냈다. 그 사이 ‘세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지방세 경정청구를 낸 2000여 명은 “납세자를 우롱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세심판원이 납세자와 유리돼 있는 것도 문제다. 심판 청구건수의 70%가량이 수도권에서 나오는데 조세심판원은 세종시에 있어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