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속세 폭탄' 무서워…부자들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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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해외이주 신고 2.7배↑
고령자 등 이민상담 급증
상속·증여세 없거나 낮은
캐나다·싱가포르行 많아
고령자 등 이민상담 급증
상속·증여세 없거나 낮은
캐나다·싱가포르行 많아
1000억원대 자산가 A씨는 최근 국적을 모나코로 옮겼다. ‘경쟁이 덜한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과 ‘자녀들에게 재산을 온전히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모나코는 상속·증여세가 없다. A씨의 이민 절차를 도운 김동우 변호사는 “상속·증여세가 없는 나라로 떠나려는 자산가들의 상담이 최근 1~2년 사이에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는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최고 65%에 달하는 한국의 상속·증여세를 피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다. 과도하게 높은 세금이 기업에 이어 부자들의 ‘탈(脫)한국’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외교부에 해외 이주를 신고한 사람은 2200명으로 2017년(825명)의 2.7배로 늘었다. 2008년(2293명) 후 10년 만의 최대치다. 해외에서 살다 현지 영사관에 신고한 건수는 제외한 수치다. 외교부 관계자는 “2017년 말 해외이주법이 강화되면서 자진신고 건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민컨설팅업체인 예스이민법인의 최여경 대표도 “2~3년 전과 비교하면 이민 상담 건수가 세 배 가까이 늘었다”며 “과거에는 취업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 떠나려는 30~40대가 많았는데 지금은 상속을 위해 이민을 고려하는 50~70대가 많다”고 했다.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빅3’ 국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다. 공통점은 △영어를 쓰고 △사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며 △한국에 비해 상속·증여세가 낮거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를 높였고 캐나다와 호주는 아예 없앴다. 상속·증여·배당세가 없는 싱가포르행(行)도 늘고 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라며 “가업 승계를 막고 이민을 부추기는 ‘징벌적인’ 세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 절반 이상 세금 내느니"…증여세 '0' 싱가포르行 택하는 사람들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호텔 로터스룸. 오후 1시가 되자 큼지막한 방은 잘 차려입은 50~60대 부부로 꽉 찼다. 머리가 희끗한 70~80대 노부부도 눈에 띄었다. 모두 이민컨설팅업체인 온누리국제법인이 마련한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주말을 반납한 사람들이다. 같은 시간 역삼동 르메르디앙호텔(예스이민법인 주최)과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모스컨설팅 주최)에서도 똑같은 주제의 설명회가 열렸다. 온누리국제법인 관계자는 “미국이 지난해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를 549만달러에서 1120만달러로 2배 이상 끌어올리자 이민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설명회에서 나온 질문도 대부분 상속·증여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상증세 다 내면 바보”
이민컨설팅업체들이 설명하는 이민 트렌드는 대체로 이렇다.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이 늘고 △이민 사유가 다양해지고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업계에서는 1955~1963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태어난 신생아 기준으로 900만 명이 넘는 이들 베이비부머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답게 이전 세대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부(富)를 쌓았다. 반면 이들의 자녀인 밀레니얼(1981~1996년생) 세대는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돈 있는 부모가 ‘백수 자녀’를 위해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려면 해외 이민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자 회사를 판 돈으로 자녀와 함께 해외에서 새출발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로 상속·증여세가 떠오른 이유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미국 투자이민 비자(EB-5) 발급 건수는 2015년 116건에서 지난해 531건으로 늘었다. 여기에 미세먼지가 더해졌다. 쾌적한 자연환경과 건강을 따지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이민국인 미국의 취업문이 막히면서 취업이나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이민을 가려는 30~40대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설명회에서 만난 한 60대 은퇴자는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돈 많은 사람이 한국에 머물면서 상속·증여세를 다 내면 바보’라는 얘기를 듣고 이민설명회를 찾았다”며 “주변에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로 가는 중견기업 오너들
미국이 100억~200억원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의 ‘상속·증여세 피난처’라면 싱가포르는 중견기업 오너들이 회사 상속 또는 증여를 위해 눈여겨보는 나라다. 싱가포르엔 상속세와 증여세, 배당세 등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세는 최대 22%로 한국의 절반(42%)에 불과하다.
싱가포르 투자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업체에 따르면 상당수 중견기업 오너가 싱가포르로 국적을 옮겼거나 이주를 문의하고 있다. 방식은 이렇다. 일단 오너 A씨가 싱가포르로 이민 신청을 한 뒤 현지에 투자회사 B사를 차린다. 이 투자회사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한국회사 C사의 지분 전량을 사들인다. 지분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와 싱가포르 투자회사의 인수자금은 현지 금융회사나 사모투자회사(PEF) 등을 통해 마련한다.
이 과정만 마무리되면 개인 재산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이 불릴 수 있다. B사는 ‘외국인 투자자’기 때문에 C사가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10~15% 안팎의 배당세만 낸다. 싱가포르에는 별도의 배당세가 없기 때문에 수익의 90%는 고스란히 A씨의 몫이 된다. A씨가 한국에 있었다면 배당수익의 최대 46.4%를 배당세로 내야 한다. 싱가포르에는 상속·증여세도 없어 A씨는 세금 한푼 안 내고 언제라도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 있다.
싱가포르 전문 이민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법대로 상속·증여세를 내면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 보니 이런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세율을 낮추지 않는 한 세금을 피해 해외로 떠나는 트렌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상헌/임락근/배태웅/이주현 기자 ohyeah@hankyung.com
한국을 떠나는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최고 65%에 달하는 한국의 상속·증여세를 피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다. 과도하게 높은 세금이 기업에 이어 부자들의 ‘탈(脫)한국’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외교부에 해외 이주를 신고한 사람은 2200명으로 2017년(825명)의 2.7배로 늘었다. 2008년(2293명) 후 10년 만의 최대치다. 해외에서 살다 현지 영사관에 신고한 건수는 제외한 수치다. 외교부 관계자는 “2017년 말 해외이주법이 강화되면서 자진신고 건수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민컨설팅업체인 예스이민법인의 최여경 대표도 “2~3년 전과 비교하면 이민 상담 건수가 세 배 가까이 늘었다”며 “과거에는 취업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 떠나려는 30~40대가 많았는데 지금은 상속을 위해 이민을 고려하는 50~70대가 많다”고 했다.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빅3’ 국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다. 공통점은 △영어를 쓰고 △사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며 △한국에 비해 상속·증여세가 낮거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를 높였고 캐나다와 호주는 아예 없앴다. 상속·증여·배당세가 없는 싱가포르행(行)도 늘고 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라며 “가업 승계를 막고 이민을 부추기는 ‘징벌적인’ 세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 절반 이상 세금 내느니"…증여세 '0' 싱가포르行 택하는 사람들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호텔 로터스룸. 오후 1시가 되자 큼지막한 방은 잘 차려입은 50~60대 부부로 꽉 찼다. 머리가 희끗한 70~80대 노부부도 눈에 띄었다. 모두 이민컨설팅업체인 온누리국제법인이 마련한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주말을 반납한 사람들이다. 같은 시간 역삼동 르메르디앙호텔(예스이민법인 주최)과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모스컨설팅 주최)에서도 똑같은 주제의 설명회가 열렸다. 온누리국제법인 관계자는 “미국이 지난해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를 549만달러에서 1120만달러로 2배 이상 끌어올리자 이민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설명회에서 나온 질문도 대부분 상속·증여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상증세 다 내면 바보”
이민컨설팅업체들이 설명하는 이민 트렌드는 대체로 이렇다.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이 늘고 △이민 사유가 다양해지고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업계에서는 1955~1963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태어난 신생아 기준으로 900만 명이 넘는 이들 베이비부머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답게 이전 세대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부(富)를 쌓았다. 반면 이들의 자녀인 밀레니얼(1981~1996년생) 세대는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돈 있는 부모가 ‘백수 자녀’를 위해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려면 해외 이민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자 회사를 판 돈으로 자녀와 함께 해외에서 새출발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로 상속·증여세가 떠오른 이유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미국 투자이민 비자(EB-5) 발급 건수는 2015년 116건에서 지난해 531건으로 늘었다. 여기에 미세먼지가 더해졌다. 쾌적한 자연환경과 건강을 따지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이민국인 미국의 취업문이 막히면서 취업이나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이민을 가려는 30~40대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설명회에서 만난 한 60대 은퇴자는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돈 많은 사람이 한국에 머물면서 상속·증여세를 다 내면 바보’라는 얘기를 듣고 이민설명회를 찾았다”며 “주변에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로 가는 중견기업 오너들
미국이 100억~200억원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의 ‘상속·증여세 피난처’라면 싱가포르는 중견기업 오너들이 회사 상속 또는 증여를 위해 눈여겨보는 나라다. 싱가포르엔 상속세와 증여세, 배당세 등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세는 최대 22%로 한국의 절반(42%)에 불과하다.
싱가포르 투자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업체에 따르면 상당수 중견기업 오너가 싱가포르로 국적을 옮겼거나 이주를 문의하고 있다. 방식은 이렇다. 일단 오너 A씨가 싱가포르로 이민 신청을 한 뒤 현지에 투자회사 B사를 차린다. 이 투자회사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한국회사 C사의 지분 전량을 사들인다. 지분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와 싱가포르 투자회사의 인수자금은 현지 금융회사나 사모투자회사(PEF) 등을 통해 마련한다.
이 과정만 마무리되면 개인 재산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이 불릴 수 있다. B사는 ‘외국인 투자자’기 때문에 C사가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10~15% 안팎의 배당세만 낸다. 싱가포르에는 별도의 배당세가 없기 때문에 수익의 90%는 고스란히 A씨의 몫이 된다. A씨가 한국에 있었다면 배당수익의 최대 46.4%를 배당세로 내야 한다. 싱가포르에는 상속·증여세도 없어 A씨는 세금 한푼 안 내고 언제라도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 있다.
싱가포르 전문 이민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법대로 상속·증여세를 내면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 보니 이런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세율을 낮추지 않는 한 세금을 피해 해외로 떠나는 트렌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상헌/임락근/배태웅/이주현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