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의 역설…SKY 입사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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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융공기업 합격자 보니
금감원·産銀 등 시행 2년새
3개大 출신 합격자 되레 증가
금감원·産銀 등 시행 2년새
3개大 출신 합격자 되레 증가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된 지 2년이 됐지만 산업은행과 예금보험공사 등 서울에 있는 금융공기업의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17년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입사지원서에 출신 학교(학력), 학점, 영어점수 기입을 없애고 직무능력만 보고 뽑도록 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했다.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금융공기업 여덟 곳이 최근 4년간 채용한 신입사원 중 SKY 출신은 25.4%에 달했다. 여덟 개 금융공기업은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전후를 비교하면 이들 아홉 곳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28.1%에서 22.1%로 6%포인트 감소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서울지역 금융공기업은 대부분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SKY 출신 신입사원이 늘었다. 금감원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보 등 다섯 곳 중 기업은행을 제외한 네 곳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이 블라인드 채용 시행 이전보다 높아지거나 같았다.
지난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금감원은 작년과 올해 최종 합격한 118명의 신입사원 중 63명(53.4%)이 SKY 출신이었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기 직전 2년간 비중(51.4%)보다 높다. 같은 기간 산업은행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47.8%에서 48.3%로, 예보는 46.7%에서 50.7%로 뛰었다. 금융공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서류전형과 짧은 면접만으로는 적격자를 가려내기 힘들어졌다”며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필기시험을 어렵게 출제하다 보니 명문대 출신이 유리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깜깜이 채용' 하다보니 필기시험에만 의존…명문대 출신 유리해져
금융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이 전면 도입된 건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채용과정을 위해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일부 시중은행과 공공기관의 채용비리가 잇따라 터져나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블라인드 채용이 만연한 채용비리를 막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이 ‘깜깜이 채용’으로 변질돼 갈수록 지원자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지원자에 대한 ‘정보 부재’로 서류심사와 면접의 변별력이 떨어지자 공공기관들이 필기시험 난도를 높이면서 명문대 출신 편중현상이 오히려 심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깜깜이 채용’으로 전락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 전국 321개 공공기관이 2017년 하반기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이전 박근혜 정부 때도 일부 공공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에 나서긴 했지만 모든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도입된 건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부터다. 블라인드 채용은 ‘가려졌다’는 뜻의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이 합쳐진 단어다. 지원 이력서에 얼굴사진은 물론 나이와 출신학교(학력), 학점, 영어점수 등의 기입란이 없다. 블라인드 채용의 장점은 분명하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공공기관들은 적지 않은 고충을 토로한다. 인사 담당자들은 지원자의 이름, 생년월일, 병역사항, 취업보호대상자(보훈여부), 경력 등으로만 서류를 검토한다.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 깜깜이 채용이란 말이 나도는 이유다. A공기업 인사담당자는 “지원자가 적절한 역량을 지녔는지에 대해 지원서류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지원자의 정보가 사실상 전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잇단 블라인드 채용 도입 권고에도 민간 기업들이 꺼리는 것은 이런 부작용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주요 민간 기업 중에는 롯데와 CJ그룹이 일부 계열사와 직군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정도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서류전형으로 지원자를 평가하기 힘들어지자 필기시험을 어렵게 출제해 변별력을 높이고 있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시험 난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명문대 출신에게 유리해진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명문대 출신 쏠림현상을 줄이고 연령과 출신학교 등을 다양화하려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공기업에 몰린 ‘SKY’ 출신
공공기관 중에서도 취업준비생에게 인기가 높은 금융공기업의 명문대 출신 편중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및 8개 금융공기업이 최근 4년간 채용한 신입사원은 2943명. 이 중 SKY 출신은 742명으로 25.4%에 달한다. 금감원 및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8곳은 공공기관 가운데 연봉이 높고 복지혜택이 많아 취업준비생이 선호하는 곳으로 꼽힌다. 최근 4년간 이들 공기업의 평균 입사 경쟁률은 82 대 1에 달했다.
금융공기업들의 블라인드 채용 도입 직전 2개년(2015~2016년)간 SKY 출신 합격자는 391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28.1%였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엔 지방 금융공기업의 SKY 비중이 줄면서 22.1%(297명)로 낮아졌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SKY 편중 현상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인사 담당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서울에 본사를 둔 금융공기업 5곳 중 4곳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오히려 높아지거나 이전과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감원과 산은, 수은, 예보의 SKY 출신 합격자는 전체 신입사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 금융공기업 인사 담당자는 “서울 지역 금융공기업들은 입사 경쟁률이 높아 필기시험을 갈수록 어렵게 출제하는 추세”라며 “SKY 출신 합격자가 많은 배경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채용기업으로선 지원자가 작성한 정보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B공기업 채용담당자는 “최종합격자에 한해 출신학교 졸업장, 성적증명서 등을 요구할 수 있어 채용 과정에선 지원자의 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입사지원서에 사진이 없다 보니 필기시험 때 본인 확인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강경민/공태윤/하헌형 기자 kkm1026@hankyung.com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금융공기업 여덟 곳이 최근 4년간 채용한 신입사원 중 SKY 출신은 25.4%에 달했다. 여덟 개 금융공기업은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전후를 비교하면 이들 아홉 곳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28.1%에서 22.1%로 6%포인트 감소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서울지역 금융공기업은 대부분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SKY 출신 신입사원이 늘었다. 금감원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보 등 다섯 곳 중 기업은행을 제외한 네 곳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이 블라인드 채용 시행 이전보다 높아지거나 같았다.
지난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금감원은 작년과 올해 최종 합격한 118명의 신입사원 중 63명(53.4%)이 SKY 출신이었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기 직전 2년간 비중(51.4%)보다 높다. 같은 기간 산업은행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47.8%에서 48.3%로, 예보는 46.7%에서 50.7%로 뛰었다. 금융공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서류전형과 짧은 면접만으로는 적격자를 가려내기 힘들어졌다”며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필기시험을 어렵게 출제하다 보니 명문대 출신이 유리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깜깜이 채용' 하다보니 필기시험에만 의존…명문대 출신 유리해져
금융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이 전면 도입된 건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채용과정을 위해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일부 시중은행과 공공기관의 채용비리가 잇따라 터져나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블라인드 채용이 만연한 채용비리를 막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이 ‘깜깜이 채용’으로 변질돼 갈수록 지원자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지원자에 대한 ‘정보 부재’로 서류심사와 면접의 변별력이 떨어지자 공공기관들이 필기시험 난도를 높이면서 명문대 출신 편중현상이 오히려 심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깜깜이 채용’으로 전락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 전국 321개 공공기관이 2017년 하반기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이전 박근혜 정부 때도 일부 공공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에 나서긴 했지만 모든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도입된 건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부터다. 블라인드 채용은 ‘가려졌다’는 뜻의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이 합쳐진 단어다. 지원 이력서에 얼굴사진은 물론 나이와 출신학교(학력), 학점, 영어점수 등의 기입란이 없다. 블라인드 채용의 장점은 분명하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공공기관들은 적지 않은 고충을 토로한다. 인사 담당자들은 지원자의 이름, 생년월일, 병역사항, 취업보호대상자(보훈여부), 경력 등으로만 서류를 검토한다.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 깜깜이 채용이란 말이 나도는 이유다. A공기업 인사담당자는 “지원자가 적절한 역량을 지녔는지에 대해 지원서류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지원자의 정보가 사실상 전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잇단 블라인드 채용 도입 권고에도 민간 기업들이 꺼리는 것은 이런 부작용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주요 민간 기업 중에는 롯데와 CJ그룹이 일부 계열사와 직군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정도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서류전형으로 지원자를 평가하기 힘들어지자 필기시험을 어렵게 출제해 변별력을 높이고 있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시험 난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명문대 출신에게 유리해진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명문대 출신 쏠림현상을 줄이고 연령과 출신학교 등을 다양화하려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공기업에 몰린 ‘SKY’ 출신
공공기관 중에서도 취업준비생에게 인기가 높은 금융공기업의 명문대 출신 편중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및 8개 금융공기업이 최근 4년간 채용한 신입사원은 2943명. 이 중 SKY 출신은 742명으로 25.4%에 달한다. 금감원 및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8곳은 공공기관 가운데 연봉이 높고 복지혜택이 많아 취업준비생이 선호하는 곳으로 꼽힌다. 최근 4년간 이들 공기업의 평균 입사 경쟁률은 82 대 1에 달했다.
금융공기업들의 블라인드 채용 도입 직전 2개년(2015~2016년)간 SKY 출신 합격자는 391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28.1%였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엔 지방 금융공기업의 SKY 비중이 줄면서 22.1%(297명)로 낮아졌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SKY 편중 현상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인사 담당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서울에 본사를 둔 금융공기업 5곳 중 4곳의 SKY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오히려 높아지거나 이전과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감원과 산은, 수은, 예보의 SKY 출신 합격자는 전체 신입사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 금융공기업 인사 담당자는 “서울 지역 금융공기업들은 입사 경쟁률이 높아 필기시험을 갈수록 어렵게 출제하는 추세”라며 “SKY 출신 합격자가 많은 배경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채용기업으로선 지원자가 작성한 정보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B공기업 채용담당자는 “최종합격자에 한해 출신학교 졸업장, 성적증명서 등을 요구할 수 있어 채용 과정에선 지원자의 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입사지원서에 사진이 없다 보니 필기시험 때 본인 확인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강경민/공태윤/하헌형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