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재기보다 차라리 포기"…파산이 회생신청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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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최저임금 급등
'영세업체 직격탄'
"기업할 의지 잃었다"
12년 만에 파산 회생 '역전현상'
수원·인천·창원 파산 급증
'영세업체 직격탄'
"기업할 의지 잃었다"
12년 만에 파산 회생 '역전현상'
수원·인천·창원 파산 급증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올들어 법인 파산 신청이 회생 신청 건수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늘고 있다. 재기를 모색하기보다는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파산 신청 건수가 회생 신청 건수를 앞지르는 사상 첫 ‘데드크로스’ 현상도 임박했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파산부 판사는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하반기에는 파산 신청 건수가 회생 신청보다 많아지게 된다”며 “통합도산법 시행으로 법인 회생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회생이 많았는데…
16일 대법원이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전국 14개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건수는 484건으로 같은 기간 접수된 법인 회생 건수(497건)에 거의 근접했다. 증가 속도는 파산 신청이 훨씬 빠르다. 올 상반기 법인 파산 신청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23.1%로 회생 신청(전년 동기 대비 12.1%)의 두 배 수준이다. 법인 회생 신청은 최근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지만 법인 파산은 상반기 기준 증가율이 2017년 2.6%, 2018년 13.9%, 2019년 23.1%로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보통 법원에 먼저 회생(법정관리)을 신청한다. 법적으로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받아 사업을 재기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법정관리로도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파산을 신청한다. 법인 회생 제도 도입 초기인 2007년엔 파산 신청이 회생보다 많았지만 그 이후 줄곧 법인의 회생 신청 건수가 파산보다 훨씬 많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법인 회생 신청은 669건으로 파산(226건)보다 세 배가량 많았다. 이후에도 대체로 두 배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말기와 문재인 정부 들어 점차 간격이 좁혀지더니 올해 처음으로 ‘역전 현상’을 앞두게 됐다. 법원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판매관리비 증가, 대기업 매출 부진으로 인한 협력업체들의 어려움 증가, 은행들의 대출만기 연장요건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판사 출신인 김정만 법무법인 정행 대표는 “과거엔 회생을 시도해보고 안 되면 파산으로 갔는데, 최근엔 최저임금 인상 등 불투명한 경영 여건으로 곧바로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접고 부동산 투자로 몰려
올 상반기에는 서울 인천 수원 등 수도권 법원과 창원지법에서 파산 신청이 급증했다. 인천지법과 창원지법에선 2년 전에 비해 각각 2배(인천 18건→33건, 창원 9건→20건)로 늘었고, 수원지법도 60% 증가했다. 인천은 남동공단을 중심으로 영세 제조업체들의 파산 신청이 많았다. 수원은 화성·평택지역 전자·자동차부품업체, 창원은 기계 조선 중공업 등 전통 굴뚝산업 제조업체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의류 및 패션업, 철강업,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들의 파산 신청이 두드러졌지만 올해는 업종을 불문하고 영세 중소기업들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영세 제조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연매출 20억~30억원 수준의 영세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아 사업을 접으려고 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한 세무법인 대표는 “많은 중소기업 오너들이 사업을 접고 회수한 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두거나 서울 강남 부동산이나 베트남 등 해외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역세권 부동산 시세는 지방과 달리 꾸준히 오르고 있고, 고금리의 저축은행 예금 잔액은 올초 처음 60조원을 돌파했다.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 부동자금은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경기 전망도 얼어붙으면서 회생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나 투자 유치도 실패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성동조선해양과 한국실리콘은 여러 차례 공개 매각에 실패하며 파산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곳은 웅진에너지, 화승, 바이오빌, 제일병원 등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생도 경기가 좋아야 가능하다"며 "국내 경제가 하강기로 접어들면서 회생 기업 M&A매물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지고 '청산형 회생절차'를 선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황정환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16일 대법원이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전국 14개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건수는 484건으로 같은 기간 접수된 법인 회생 건수(497건)에 거의 근접했다. 증가 속도는 파산 신청이 훨씬 빠르다. 올 상반기 법인 파산 신청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23.1%로 회생 신청(전년 동기 대비 12.1%)의 두 배 수준이다. 법인 회생 신청은 최근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지만 법인 파산은 상반기 기준 증가율이 2017년 2.6%, 2018년 13.9%, 2019년 23.1%로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보통 법원에 먼저 회생(법정관리)을 신청한다. 법적으로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받아 사업을 재기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법정관리로도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파산을 신청한다. 법인 회생 제도 도입 초기인 2007년엔 파산 신청이 회생보다 많았지만 그 이후 줄곧 법인의 회생 신청 건수가 파산보다 훨씬 많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법인 회생 신청은 669건으로 파산(226건)보다 세 배가량 많았다. 이후에도 대체로 두 배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말기와 문재인 정부 들어 점차 간격이 좁혀지더니 올해 처음으로 ‘역전 현상’을 앞두게 됐다. 법원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판매관리비 증가, 대기업 매출 부진으로 인한 협력업체들의 어려움 증가, 은행들의 대출만기 연장요건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판사 출신인 김정만 법무법인 정행 대표는 “과거엔 회생을 시도해보고 안 되면 파산으로 갔는데, 최근엔 최저임금 인상 등 불투명한 경영 여건으로 곧바로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접고 부동산 투자로 몰려
올 상반기에는 서울 인천 수원 등 수도권 법원과 창원지법에서 파산 신청이 급증했다. 인천지법과 창원지법에선 2년 전에 비해 각각 2배(인천 18건→33건, 창원 9건→20건)로 늘었고, 수원지법도 60% 증가했다. 인천은 남동공단을 중심으로 영세 제조업체들의 파산 신청이 많았다. 수원은 화성·평택지역 전자·자동차부품업체, 창원은 기계 조선 중공업 등 전통 굴뚝산업 제조업체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의류 및 패션업, 철강업,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들의 파산 신청이 두드러졌지만 올해는 업종을 불문하고 영세 중소기업들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영세 제조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연매출 20억~30억원 수준의 영세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아 사업을 접으려고 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한 세무법인 대표는 “많은 중소기업 오너들이 사업을 접고 회수한 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두거나 서울 강남 부동산이나 베트남 등 해외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역세권 부동산 시세는 지방과 달리 꾸준히 오르고 있고, 고금리의 저축은행 예금 잔액은 올초 처음 60조원을 돌파했다.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 부동자금은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경기 전망도 얼어붙으면서 회생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나 투자 유치도 실패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성동조선해양과 한국실리콘은 여러 차례 공개 매각에 실패하며 파산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곳은 웅진에너지, 화승, 바이오빌, 제일병원 등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생도 경기가 좋아야 가능하다"며 "국내 경제가 하강기로 접어들면서 회생 기업 M&A매물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지고 '청산형 회생절차'를 선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황정환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