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에서 은퇴한 A씨는 최근 가까운 친구들과 동남아시아로 35일짜리 골프 여행을 다녀왔다. 멤버는 A씨처럼 매달 100만원 이상 건보료를 내고 시간 여유가 많은 자산가들. 이들이 붙인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건강보험료로 여행하기’였다.

자산가들의 해외 골프 여행에 뜬금없이 건보료가 끼어든 건 ‘국외 출입국자 건강보험 급여정지 및 해제 제도’ 때문이다. 지역 건보가입자가 해외에 1개월 이상 체류하면 건보료 납입일인 1일이 낀 달의 건보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예컨대 5월 30일 출국해 7월 3일 입국했다면 6월분과 7월분 두 달치 건보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다만 이 기간 건강보험 혜택은 정지된다.

A씨가 35일 동안 동남아에서 쓴 비용은 숙식과 항공료, 여행자보험 등을 포함해 400만원 안팎. 비용의 절반 이상을 두 달치 건보료로 충당했다. A씨는 “35일 동안 한국에 있었더라도 식비와 골프비 등으로 200만원 이상 썼을 것”이라며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야 할 필요가 없는 은퇴자 사이에서 ‘건보료 골프 여행’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편법 여행이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로 지역 건보료가 자산가들에게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점을 꼽는다. 일본 등 선진국은 건보료 최저 금액과 최고 금액 차이가 50~100배 수준인 데 반해 한국은 지역가입자 보험료 최저액(1만3000원)과 최고액(318만원) 차이가 30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자 건보료를 많이 깎아 주는 대신 고소득자에게 그만큼 과중한 건보료 부담을 지운다는 의미다. 이는 소득이 없고 자산이 많은 은퇴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역가입자 가운데 보험료를 많이 내는 상위 20%의 상당수는 건보료로 내는 돈이 받는 혜택을 훨씬 초과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1~2017년 지역가입자 보험료 상위 20%는 월평균 31만2019원을 내고 30만8146원의 혜택을 봤다. 반면 직장가입자 보험료 상위 20%는 월 34만9701원을 내고 40만6504원의 혜택을 받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