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정일문 "해외 투자자 10명 중 1명만 韓증시 관심…경제 아닌 정치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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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뉴욕서 투자자들 만난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한국에 왜 투자? 오히려 반문
자본시장 이슈·투자기업 아닌
韓·日 관계, 주 52시간제 물어봐
親기업 정서 중요성 깨달아
한국에 왜 투자? 오히려 반문
자본시장 이슈·투자기업 아닌
韓·日 관계, 주 52시간제 물어봐
親기업 정서 중요성 깨달아
지난 5일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세계 증시가 폭락하던 날,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영국 런던에서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아침부터 해외 투자자들과 만난 그는 밤에도 잠을 못 자고 한국 증시 상황을 챙겼다. 런던을 거쳐 미국 뉴욕에 온 정 대표를 8일 맨해튼 롯데팰리스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출장에서 만난 해외 투자자 열 명 중 한국에 관심을 보인 경우는 한 명꼴에 그쳤다”며 “한국 경제와 증시가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을 살리려면 우리 사회에 친기업 정서가 가장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번 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지난 31년간의 증권맨 생활 중 27년을 투자은행(IB) 일을 하면서 해외 투자자를 많이 봤는데, 이번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악플’ ‘선플’보다 가장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런던 뉴욕에서 수십 명을 만났는데 한국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열 명에 한 명꼴뿐인 것 같았습니다. 해외 투자자들은 ‘왜 굳이 한국물에 투자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자본시장 이슈와 투자할 기업, 산업에 대해 묻기보다 한·일 관계와 주 52시간 근로제, 소득주도성장 등을 질문하더군요. 결국은 친기업 정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해외의 관심을 끌어내려면 뭘 해야 할까요.
“다 같이 뛰어야 할 겁니다. 제가 한국거래소 사외이사인데 이런 얘기를 하면 또 해외 투자설명회(IR)를 하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IR로 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외 투자자가 왜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는지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지요. 우리 같은 IB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우리 기업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할 것입니다.”
▷뉴욕에 나와 있는 한국계 증권회사들도 사정이 어렵다고 합니다.
“제가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1964년생)입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베이비붐 세대인 1970년대생들이 이어받을 텐데 그들 이후엔 정말 저성장을 체감할 겁니다. 지금처럼 수출 중심, 고성장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옛날 생각을 하면서 우왕좌왕하게 될 겁니다. 한국 경제를 보면 인구 감소는 기정사실입니다. 이제 스웨덴처럼 ‘강소국’ 개념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때입니다. 그러려면 아래부터 위까지 성장 위주의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고성장이 아니라 2~3%대 성장이 자연스러운 나라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 증시도 어렵습니다.
“국내 투자자들의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이 식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식(투자) 한다는 사람치고 ‘먹었다’는 투자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모두 ‘다 깨져서 투자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부동산은 장기 보유하면 세제 혜택을 주지만, 주식은 그런 혜택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부를 키우는 수단으로 주식을 선택할 수 있게끔 하는 정부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고 있는데요.
“해외에 좋은 투자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국내에 투자할 만한 데가 없습니다. 성장률은 연 2%가 안 되고, 금리는 연 1% 초반에 불과합니다. 투자자들은 수익이 좋은 곳을 찾는데 국내에는 없습니다. 한국 증시의 세계 비중이 2%밖에 안 되는데 한국인 대부분이 한국에만 투자하고 있는 건 문제지요. 지금은 기본적으로 해외에 투자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해외, 특히 대체투자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저도 맨해튼에서 오피스 빌딩을 둘러봤습니다. 대체투자는 재무적 투자자(LP)를 모집해 투자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 좋은 물건이 있으면 반은 기관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소매고객에게 공모 형태로 공급하는 방안도 생각 중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의 해외 공략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올해 홍콩현지법인에 4억달러를 증자했습니다. 홍콩을 아시아 전초기지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 베트남에서 커버드본드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해외 증권사로는 유일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려고 합니다.”
▷너무 조심스러운 접근법 아닌가요.
“한투는 조금 긴 안목, 차근차근 나아가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실적을 내야 하는 그런 문화가 아닙니다. 속도가 중요하다면 내면 됩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의사결정이 가장 빠른 회사 중 하나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해외 시장에 자신감이 붙고 나면 그럴 겁니다. 그러기 전까진 탐색도 하고 계산기 두드리면서 나아가겠습니다.”
▷미래에셋의 공격적 해외 진출을 어떻게 봅니까.
“미래에셋이 해외 쪽에 빨리 눈을 돌렸습니다. 부러운 면이 있습니다. 2분기 실적을 보니 국내에서 번 것도 있지만 해외에 투자해놓은 게 조금씩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한투는 접근법이 다릅니다. 우리는 변동성이 있는 것보다 꾸준히 한 발씩 나아가는 스타일입니다.”
▷코웨이 인수합병(M&A)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쇼트리스트가 발표됐습니다. 칼라일, 베인캐피털, 하이얼, SK네트웍스 등 네 군데가 뽑혔습니다. 이들이 한 달간 실사하고 나면 의사결정을 내릴 겁니다. 한투는 경영을 가장 잘하는 곳을 골라 회사를 넘기면 되겠지요.”
▷한투는 카카오뱅크의 2대 주주입니다. 카카오뱅크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카카오뱅크는 창립 3년 만에 계좌 1000만 개를 확보했습니다. 대부분 본인이 원해서 개설한 활동성 계좌입니다. 비대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허가받다 보니 주택담보대출 등이 어려운데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압니다. 비대면으로 담보대출 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면 성장성과 수익성을 다 잡을 수 있는 은행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은행이 될 가능성이 있는 회사가 IPO를 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겠지요.”
▷한투의 카카오뱅크에 대한 전략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지주회사 업무입니다. 다만 우리가 카카오뱅크와 제휴해 지난 3월 25일부터 넉 달간 계좌 100만 개를 확보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12년간 온라인, 모바일 계좌인 뱅키스를 홍보해 77만 개 계좌를 유치한 것에 비하면 대단하지요. 이런 상황인데 우리가 지분을 처분할 이유가 있습니까. 게다가 이번에 확보한 계좌는 82%가 20~30대의 계좌입니다. 젊은 고객을 대거 끌어들인 겁니다. 이들만을 위한 서비스 등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게 되면 한투도 젊어질 겁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그는 “이번 출장에서 만난 해외 투자자 열 명 중 한국에 관심을 보인 경우는 한 명꼴에 그쳤다”며 “한국 경제와 증시가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을 살리려면 우리 사회에 친기업 정서가 가장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번 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지난 31년간의 증권맨 생활 중 27년을 투자은행(IB) 일을 하면서 해외 투자자를 많이 봤는데, 이번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악플’ ‘선플’보다 가장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런던 뉴욕에서 수십 명을 만났는데 한국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열 명에 한 명꼴뿐인 것 같았습니다. 해외 투자자들은 ‘왜 굳이 한국물에 투자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자본시장 이슈와 투자할 기업, 산업에 대해 묻기보다 한·일 관계와 주 52시간 근로제, 소득주도성장 등을 질문하더군요. 결국은 친기업 정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해외의 관심을 끌어내려면 뭘 해야 할까요.
“다 같이 뛰어야 할 겁니다. 제가 한국거래소 사외이사인데 이런 얘기를 하면 또 해외 투자설명회(IR)를 하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IR로 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외 투자자가 왜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는지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지요. 우리 같은 IB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우리 기업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할 것입니다.”
▷뉴욕에 나와 있는 한국계 증권회사들도 사정이 어렵다고 합니다.
“제가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1964년생)입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베이비붐 세대인 1970년대생들이 이어받을 텐데 그들 이후엔 정말 저성장을 체감할 겁니다. 지금처럼 수출 중심, 고성장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옛날 생각을 하면서 우왕좌왕하게 될 겁니다. 한국 경제를 보면 인구 감소는 기정사실입니다. 이제 스웨덴처럼 ‘강소국’ 개념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때입니다. 그러려면 아래부터 위까지 성장 위주의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고성장이 아니라 2~3%대 성장이 자연스러운 나라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 증시도 어렵습니다.
“국내 투자자들의 자본시장에 대한 관심이 식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식(투자) 한다는 사람치고 ‘먹었다’는 투자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모두 ‘다 깨져서 투자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부동산은 장기 보유하면 세제 혜택을 주지만, 주식은 그런 혜택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부를 키우는 수단으로 주식을 선택할 수 있게끔 하는 정부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고 있는데요.
“해외에 좋은 투자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국내에 투자할 만한 데가 없습니다. 성장률은 연 2%가 안 되고, 금리는 연 1% 초반에 불과합니다. 투자자들은 수익이 좋은 곳을 찾는데 국내에는 없습니다. 한국 증시의 세계 비중이 2%밖에 안 되는데 한국인 대부분이 한국에만 투자하고 있는 건 문제지요. 지금은 기본적으로 해외에 투자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해외, 특히 대체투자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저도 맨해튼에서 오피스 빌딩을 둘러봤습니다. 대체투자는 재무적 투자자(LP)를 모집해 투자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 좋은 물건이 있으면 반은 기관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소매고객에게 공모 형태로 공급하는 방안도 생각 중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의 해외 공략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올해 홍콩현지법인에 4억달러를 증자했습니다. 홍콩을 아시아 전초기지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 베트남에서 커버드본드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해외 증권사로는 유일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려고 합니다.”
▷너무 조심스러운 접근법 아닌가요.
“한투는 조금 긴 안목, 차근차근 나아가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실적을 내야 하는 그런 문화가 아닙니다. 속도가 중요하다면 내면 됩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의사결정이 가장 빠른 회사 중 하나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해외 시장에 자신감이 붙고 나면 그럴 겁니다. 그러기 전까진 탐색도 하고 계산기 두드리면서 나아가겠습니다.”
▷미래에셋의 공격적 해외 진출을 어떻게 봅니까.
“미래에셋이 해외 쪽에 빨리 눈을 돌렸습니다. 부러운 면이 있습니다. 2분기 실적을 보니 국내에서 번 것도 있지만 해외에 투자해놓은 게 조금씩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한투는 접근법이 다릅니다. 우리는 변동성이 있는 것보다 꾸준히 한 발씩 나아가는 스타일입니다.”
▷코웨이 인수합병(M&A)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쇼트리스트가 발표됐습니다. 칼라일, 베인캐피털, 하이얼, SK네트웍스 등 네 군데가 뽑혔습니다. 이들이 한 달간 실사하고 나면 의사결정을 내릴 겁니다. 한투는 경영을 가장 잘하는 곳을 골라 회사를 넘기면 되겠지요.”
▷한투는 카카오뱅크의 2대 주주입니다. 카카오뱅크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카카오뱅크는 창립 3년 만에 계좌 1000만 개를 확보했습니다. 대부분 본인이 원해서 개설한 활동성 계좌입니다. 비대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허가받다 보니 주택담보대출 등이 어려운데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압니다. 비대면으로 담보대출 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면 성장성과 수익성을 다 잡을 수 있는 은행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은행이 될 가능성이 있는 회사가 IPO를 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겠지요.”
▷한투의 카카오뱅크에 대한 전략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지주회사 업무입니다. 다만 우리가 카카오뱅크와 제휴해 지난 3월 25일부터 넉 달간 계좌 100만 개를 확보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12년간 온라인, 모바일 계좌인 뱅키스를 홍보해 77만 개 계좌를 유치한 것에 비하면 대단하지요. 이런 상황인데 우리가 지분을 처분할 이유가 있습니까. 게다가 이번에 확보한 계좌는 82%가 20~30대의 계좌입니다. 젊은 고객을 대거 끌어들인 겁니다. 이들만을 위한 서비스 등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게 되면 한투도 젊어질 겁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