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정거래위원회가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아고다 등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들여다본다. 호텔 예약시장을 장악한 이들 업체가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 국내 숙박업체에 ‘최저가 보장’을 요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글로벌 OTA들이 한국 숙박업체들과 맺은 최저가 보장 계약의 적정성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시장점유율이 낮은 OTA A사가 객실을 싸게 팔고 싶어도 이 호텔이 시장점유율이 높은 B사와 맺은 최저가 보장 조항 탓에 싸게 팔 수 없다”며 “결국 어디에서나 객실 판매가격이 똑같아진다는 점에서 경쟁 제한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숙박업체들이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예약한 고객에게 OTA에 건네는 수수료(15~20%)만큼 싸게 판매하는 것도 최저가 보장 계약에 걸린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저렴한 호텔을 놓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다음달 OTA의 불공정행위 여부 등을 다룰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또 해외 OTA에 대한 소비자 불만 등의 해법을 찾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호텔 방값 왜 똑같나 했더니…부킹닷컴·아고다 '가격통제' 탓
'OTA 갑질'에 칼 빼든 공정위


16만8300원. 다음달 7일(토요일) 서울 명동에 있는 I호텔에서 하룻밤(스탠더드 더블룸·부가세 포함한 환불 불가 가격)을 자는 데 드는 비용이다. 어딘가에서 이 가격을 찾았다면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

부킹닷컴 아고다 익스피디아 트립닷컴 등 어떤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 online travel agency) 사이트를 방문해도 가격은 똑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I호텔 홈페이지에 실린 가격도 마찬가지다. 이 호텔 관계자는 “각 OTA와 맺은 최저가 보장 조약 때문에 특정 사이트 가격만 낮추는 건 꿈도 못 꾼다”며 “명동 I호텔의 9월 7일 1박 가격은 어디에서든 똑같다”고 말했다.
[단독] 공정위 '글로벌 여행사 갑질'에 칼 뺐다
‘결과적 담합’ 만드는 최저가 보장

공정거래위원회가 글로벌 OTA를 들여다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저가 보장 계약으로 가격 경쟁이 사라지면서 ‘OTA는 살찌고 소비자는 홀쭉해졌는지’ 살펴보겠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온라인 숙박예약시장과 달리 배달 앱(응용프로그램)시장은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출혈경쟁에 나서면서 배달비가 대폭 떨어지는 등 소비자 효용이 크게 늘었다”며 “어느 시장에서든 경쟁제한 요소가 있느냐에 따라 소비자 효용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유럽 국가는 이런 점을 감안해 3~4년 전부터 글로벌 OTA의 최저가 보장 요구를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아예 관련 법까지 마련했다.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등 다른 국가들은 행정명령 또는 법원 판결 등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반면 익스피디아의 ‘고향’인 미국에선 이와 관련한 별다른 규제가 없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호텔로선 어차피 객실 판매가격이 똑같은 만큼 당연히 OTA 수수료(15~20%)를 내지 않아도 되는 ‘직접 예약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싶지만 OTA와 맺은 계약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민관협의체 통해 수수료 인하 유도

공정위는 최저가 보장 계약에 대한 조사와 별개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다음달 국내외 OTA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발족하기로 했다. OTA에 대한 소비자와 호텔업계의 불만을 자율협약 형식을 빌려 해결하기 위해서다.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등 해외 OTA의 참여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글로벌 OTA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었지만 본사가 해외에 있는 탓에 소비자 불만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며 “국내 OTA와의 규제 형평성도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OTA 불만 건수는 2017년 394건에서 작년 1324건으로 세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주로 입실 기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환불을 안 해주고, 세금과 수수료를 뺀 금액을 고시해 혼란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중 환불 문제는 문체부와 공정위가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지난해 “환불 불가 상품이라도 입실 시점이 많이 남았으면 재판매할 수 있는 만큼 환불해줘야 한다”며 시정명령을 내린 데 대해 아고다와 부킹닷컴이 올 3월 “한국만 예외로 해줄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내 OTA는 국내법을 제대로 준수하지만 본사가 해외에 있는 글로벌 OTA는 ‘본사 기준과 다르다’며 반발하는 사례가 많다”며 “정부가 사사건건 시정명령을 내리는 대신 민관협의체를 통해 해외 OTA들이 자발적으로 국내법을 지키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이태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