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달부터 고용보험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현행 1.3%에서 1.6%로 23.1%(0.3%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각각 급여의 0.65%에서 0.8%로 늘어난다. 실업급여 보험료율 인상은 2013년 7월 이후 6년3개월 만이다.

고용노동부는 10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 징수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시행령 개정은 지난달 국회에서 실업급여 지급 수준과 기간을 늘리는 고용보험법이 통과된 데 따른 후속조치”라며 “이번 인상으로 연간 실업급여 보험료 수입은 1조5000억~2조원 정도 늘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국회는 오는 10월부터 실업급여 지급액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올리고, 지급기간도 현행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리기로 했다.
실업급여 고갈 위험…정부, 고용보험료율 1.3%→1.6% 올린다
실업급여 지급 눈덩이 증가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와 육아휴직급여 등을 지원하는 실업급여계정과 취업 촉진, 고용 복지 등에 주로 쓰이는 고용안정·직업능력계발계정(고용안정계정)으로 나뉜다. 실업급여계정은 노사가 절반씩 내고 고용안정계정은 기업이 전액 부담한다. 이번에 인상한 것은 이 중 실업급여계정 보험료율이다. 전문가들은 고용시장 악화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실업급여 지급액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자 정부가 보험료를 올려 이를 메우려는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실업급여는 매월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8월 실업급여 지급액은 7256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8% 늘어났다. 연간 지급액도 매년 늘어나 올해는 8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내년에는 9조5158억원에 달할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2017년(5조2255억원)과 비교하면 82% 늘어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업급여계정 수지는 급속도록 악화되고 있다. 애초 정부는 올해 실업급여 적자 규모를 294억원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추세를 고려하면 적자가 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실업급여계정에 쌓인 적립금은 지난해 5조2000억원에서 올해는 4조2000억원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대로 가면 적립금이 2024년 고갈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인상한 배경이다.
실업급여 고갈 위험…정부, 고용보험료율 1.3%→1.6% 올린다
떠돌이 알바 급증에…

실업급여 지급액이 급증하는 것은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29% 급등하고 이에 연동되는 실업급여 지급액(최저임금의 90%가 하한선)이 자동적으로 불어난 영향이 크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8월 말 기준 1375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4만5000명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고용의 질이 악화된 영향도 있다고 분석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영향으로 도소매·숙박·음식점업종의 저임금 일자리가 빠르게 단기화되면서 6개월~1년가량 일한 뒤 구직급여를 받고 지내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는 ‘떠돌이 알바’가 크게 늘어났다는 지적이다.

실업급여 지급 세부 항목을 보면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업종에서 실업급여 지급액도 많았다. 통상 취업자가 많으면 실업자가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최근엔 취업자와 실업자가 동시에 늘어난다는 얘기다. 대표적 취약업종으로 꼽히는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숙박·음식점업 등에서 이 같은 추세가 강하다.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실업급여를 받아가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취약업종에서 수지 악화

지난달 12일 발표된 통계청의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에선 1년 전 대비 14만1000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2년간 일자리 증가폭은 20만 개로 전체 업종을 통틀어 가장 많다. 하지만 고용보험 수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장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고용부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이 업종의 실업급여 지급액은 5839억원으로 납부액(4596억원)보다 1243억원 많았다. 2년 전만 해도 납부액이 지급액보다 많았는데 지난해 뒤집히더니 적자 폭이 더 커진 것이다.

또 다른 취약업종인 숙박·음식점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전년 대비 4만2000개 줄어들었던 일자리가 지난달엔 10만1000개 증가로 반전했다. 하지만 고용보험 수지는 악화됐다. 2018년 7월 -337억원에서 올해 7월 -797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적자폭이 뛰었다. 당분간 실업급여 지급액과 일자리의 동반 증가는 계속될 전망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쪼개기 등이 겹치면서 일자리 단기화 현상이 더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고용보험 수지 악화는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결과”라며 “고용보험료율 인상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근본 원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목/백승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