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대부업…'서민 돈줄' 더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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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4社 중 3곳 사업 접기로
대출 최고금리 규제에 '직격탄'
대출 최고금리 규제에 '직격탄'
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산와대부(산와머니)는 지난 3월부터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전국 지점을 30개 이상 폐쇄했고, 기존 대출 회수만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철수설이 무성하다. 업계 2위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와 4위 웰컴크레디라인대부(웰컴론)는 2024년까지 폐업할 예정이다.
금융시장의 ‘마이너리그’인 대부업이 쪼그라들고 있다. 대형 업체들은 영업을 축소하거나 업종 전환에 나섰고, 중소형 업체들도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서민금융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는 2015년 267만 명에서 2018년 221만 명으로 줄었다. 얼어붙은 경기 탓에 연체율은 같은 기간 4.7%에서 7.3%로 뛰었다.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상위 4개 업체 중 3개가 사업을 접는다는 건 업종 자체가 몰락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올 들어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10% 안팎에 그치고 있다. 대출을 신청한 10명 중 9명은 거절당한다는 얘기다. 대부업의 급격한 위축은 저신용자를 불법사채시장으로 내몰 위험을 키운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 새 대부업 대출을 거부당한 사람의 14.1%가 불법사금융을 이용했다. 불법사채 평균 이자율은 연 353%에 달한다.
대부업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최고 금리 규제’다. 정부는 연 66%이던 법정 최고 금리를 24%로 끌어내리고,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대출을 늘리는 등 대부업계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대부업체들 수익성 나빠지자 심사 강화…10명 중 9명 '대출 거절'
대부업체 대출승인율 12%선
불법 사금융 대출 7조 육박
금융도 수요와 공급으로 작동한다. 1금융권인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하면 저축은행, 캐피털사, 카드사 등 2금융권에서 더 많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도 밀려난 저신용자들은 합법과 불법이 혼재된 또 다른 금융권을 기웃거리게 된다. 공식용어는 아니지만 3금융, 4금융으로 불린다. 금융권을 의미하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대출자의 삶이 위험에 노출될 확률은 높아진다. “어쩔 수 없이 문턱 높인다”
서민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돈을 빌릴 수 있는 최후 보루인 대부업체들이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대출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주요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2018년 기준 12.6%다. 대출 신청 10건 중 8~9건을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다. 2015년(21.2%)과 비교하면 거의 반 토막 수준이다.
대부업체의 정상 상환율도 85.4%로 낮아졌다. 14.6%의 차주가 일정대로 돈을 갚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실 대출 대부분은 대부업체의 부실로 전이된다. ‘어쩔 수 없이 문턱을 높인다’는 게 대부업체의 항변이다.
대부업체에서 외면당한 소비자 가운데 일부는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서민금융연구원의 지난 1월 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이후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다는 대답은 14.1%였다. 법 밖에 존재하는 사금융 규모는 짐작만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5000명을 설문해 추정한 불법 사금융 총대출 규모는 6조8000억원(2017년 기준)이다. 대부업계와 학계에선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한다. 금감원 조사에선 친척, 지인에게 빌린 사인(私人) 간 대출이나 기업인이 돈을 주고받고 장부에는 매출로 표시한 사업대출 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초에 불법인 사금융 규모는 표본 규모와 조사 주체에 따라 추정 규모가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금융 이용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최고 금리가 낮아지면서 합법 대부업 이용자가 사금융으로 이탈하는 ‘풍선효과’가 반복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따르면 오토바이로 명함 크기의 전단을 뿌리는 ‘전단지 대출’과 대부업자가 거점을 두고 ‘일수 대출’을 하는 기업형 불법 사금융은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 도심 유흥가와 먹자골목 등에선 10~30대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소액대출도 빈번하다. 한 번에 50만원, 100만원 수준의 소액을 빌려주는 대신 최소 보름, 늦어도 석 달 안에 갚아야 한다. 연 환산 이자율이 1000%를 넘기도 한다.
일수꾼들은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특정 업종 종사자에게 ‘관계형 영업’을 한다. 이자율은 보통 연 150~200%대다. 한 번에 1000만원 이상의 고액을 빌려주는 게 특징이다.
사금융의 끝은 어둠뿐
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려줄 때 직장 동료나 가족의 전화번호를 요구한다. 상환이 늦어지면 지인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하려는 의도다. 현금과 대포통장, 대출자 명의의 체크카드 등으로 상환받는 사례도 많다. 최의수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대부업수사팀장은 “어쩔 수 없이 사금융을 이용했다면 이자 납입 내역 등 근거를 남기거나 녹취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선이자를 떼고 대출받은 뒤 재대출을 받는 소위 ‘꺾기’는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가장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임기 중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이수진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대부시장 저신용자 배제 규모 추정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고금리가 연 20%로 낮아지면 최대 86만 명의 저신용자가 합법 대부업에서 배제될 것”으로 추산했다.
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법정 이자율 이상의 이자를 물게 될 줄 알면서도 생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 사채가 아니면 돈을 빌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단체예약 손님을 받아둔 식당의 주인은 재료비가 없어 사채를 쓰고, 가난한 부모는 자녀의 치과 치료비를 대기 위해 소액을 빌린다. 이렇게 쓴 사채는 십중팔구 이들의 삶을 악화시킨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불법고용이 늘어나고, 분양가 상한제를 하면 일부 집값이 오르는 것처럼 합법 대부업체에 대한 가격통제는 저신용자가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현우/김대훈 기자 tardis@hankyung.com
금융시장의 ‘마이너리그’인 대부업이 쪼그라들고 있다. 대형 업체들은 영업을 축소하거나 업종 전환에 나섰고, 중소형 업체들도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서민금융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는 2015년 267만 명에서 2018년 221만 명으로 줄었다. 얼어붙은 경기 탓에 연체율은 같은 기간 4.7%에서 7.3%로 뛰었다.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상위 4개 업체 중 3개가 사업을 접는다는 건 업종 자체가 몰락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올 들어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10% 안팎에 그치고 있다. 대출을 신청한 10명 중 9명은 거절당한다는 얘기다. 대부업의 급격한 위축은 저신용자를 불법사채시장으로 내몰 위험을 키운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 새 대부업 대출을 거부당한 사람의 14.1%가 불법사금융을 이용했다. 불법사채 평균 이자율은 연 353%에 달한다.
대부업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최고 금리 규제’다. 정부는 연 66%이던 법정 최고 금리를 24%로 끌어내리고,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대출을 늘리는 등 대부업계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대부업체들 수익성 나빠지자 심사 강화…10명 중 9명 '대출 거절'
대부업체 대출승인율 12%선
불법 사금융 대출 7조 육박
금융도 수요와 공급으로 작동한다. 1금융권인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하면 저축은행, 캐피털사, 카드사 등 2금융권에서 더 많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도 밀려난 저신용자들은 합법과 불법이 혼재된 또 다른 금융권을 기웃거리게 된다. 공식용어는 아니지만 3금융, 4금융으로 불린다. 금융권을 의미하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대출자의 삶이 위험에 노출될 확률은 높아진다. “어쩔 수 없이 문턱 높인다”
서민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돈을 빌릴 수 있는 최후 보루인 대부업체들이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대출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주요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2018년 기준 12.6%다. 대출 신청 10건 중 8~9건을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다. 2015년(21.2%)과 비교하면 거의 반 토막 수준이다.
대부업체의 정상 상환율도 85.4%로 낮아졌다. 14.6%의 차주가 일정대로 돈을 갚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실 대출 대부분은 대부업체의 부실로 전이된다. ‘어쩔 수 없이 문턱을 높인다’는 게 대부업체의 항변이다.
대부업체에서 외면당한 소비자 가운데 일부는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서민금융연구원의 지난 1월 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이후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다는 대답은 14.1%였다. 법 밖에 존재하는 사금융 규모는 짐작만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5000명을 설문해 추정한 불법 사금융 총대출 규모는 6조8000억원(2017년 기준)이다. 대부업계와 학계에선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한다. 금감원 조사에선 친척, 지인에게 빌린 사인(私人) 간 대출이나 기업인이 돈을 주고받고 장부에는 매출로 표시한 사업대출 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초에 불법인 사금융 규모는 표본 규모와 조사 주체에 따라 추정 규모가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금융 이용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최고 금리가 낮아지면서 합법 대부업 이용자가 사금융으로 이탈하는 ‘풍선효과’가 반복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따르면 오토바이로 명함 크기의 전단을 뿌리는 ‘전단지 대출’과 대부업자가 거점을 두고 ‘일수 대출’을 하는 기업형 불법 사금융은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 도심 유흥가와 먹자골목 등에선 10~30대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소액대출도 빈번하다. 한 번에 50만원, 100만원 수준의 소액을 빌려주는 대신 최소 보름, 늦어도 석 달 안에 갚아야 한다. 연 환산 이자율이 1000%를 넘기도 한다.
일수꾼들은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특정 업종 종사자에게 ‘관계형 영업’을 한다. 이자율은 보통 연 150~200%대다. 한 번에 1000만원 이상의 고액을 빌려주는 게 특징이다.
사금융의 끝은 어둠뿐
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려줄 때 직장 동료나 가족의 전화번호를 요구한다. 상환이 늦어지면 지인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하려는 의도다. 현금과 대포통장, 대출자 명의의 체크카드 등으로 상환받는 사례도 많다. 최의수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대부업수사팀장은 “어쩔 수 없이 사금융을 이용했다면 이자 납입 내역 등 근거를 남기거나 녹취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선이자를 떼고 대출받은 뒤 재대출을 받는 소위 ‘꺾기’는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가장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임기 중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이수진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대부시장 저신용자 배제 규모 추정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고금리가 연 20%로 낮아지면 최대 86만 명의 저신용자가 합법 대부업에서 배제될 것”으로 추산했다.
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법정 이자율 이상의 이자를 물게 될 줄 알면서도 생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 사채가 아니면 돈을 빌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단체예약 손님을 받아둔 식당의 주인은 재료비가 없어 사채를 쓰고, 가난한 부모는 자녀의 치과 치료비를 대기 위해 소액을 빌린다. 이렇게 쓴 사채는 십중팔구 이들의 삶을 악화시킨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불법고용이 늘어나고, 분양가 상한제를 하면 일부 집값이 오르는 것처럼 합법 대부업체에 대한 가격통제는 저신용자가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현우/김대훈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