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경제학상을 받은 석학들이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비슷했다. 향후 한국이 ‘L자형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82%),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에 진입했거나 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91%)는 등의 경제상황 진단만 같이한 게 아니었다. 이들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비롯한 규제 완화(82%)가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릴 가장 좋은 정책 수단이라는 데도 대체로 동의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경제가 좋아지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유병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는 규제 완화

경제 석학들은 문재인 정부가 핵심 경제정책으로 밀고 있는 소득주도성장과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한 점수는 짜게 줬다.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는 데 필요한 대책으로 소주성과 확장 재정을 꼽은 이는 없었다. 오히려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고용보장 강화 등 취지는 좋지만 경제에 무리를 주는 ‘시민단체 구호 수준의 정책’은 버려야 한다”(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의견을 내놨다.

이들이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로 규제 개혁을 꼽은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울타리를 걷어내야 투자가 이뤄지고, 고용이 창출되며, 소비가 활성화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는데 경제 구조는 과거 고성장 시절 그대로인 게 문제”라며 “고성장 시절에는 기대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기업이 각종 규제에도 한국에 투자했지만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지금 기업투자를 이끌어내려면 규제를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공유경제 원격의료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산업은 규제에 묶여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은 ‘수도권공장 총량제’에 더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공정거래법 등 까다로운 노동·환경·공정거래 규제에 질려 국내에 공장을 짓는 걸 포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강행한 법인세율 인상,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는 안 그래도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투자매력을 아예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 결과가 ‘탈(脫)한국’이다. 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작년 2분기 이후 다섯 분기 연속 감소했지만 해외직접투자액은 올 1~2분기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기업들이 미래산업에 적극 뛰어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보다 노동개혁이 시급”

석학들은 여러 규제 완화 분야 중에서 노동 관련 규제를 가장 먼저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보다 노동 규제를 완화하는 게 훨씬 더 투자유인 효과가 있을 것”(최인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이란 얘기도 나왔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특임교수는 “최저임금을 지역별·산업별로 차등화하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더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학자는 노동개혁 중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안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꼽았다.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인력 구조조정을 유연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신사업 투자에 나서고 고용도 늘어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반드시 가져가야 할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친노동’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노동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낮게 봤다. 이승훈 교수는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특권부터 없애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노동개혁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았을 때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최인 교수도 “여러 학자가 문재인 정부에 노동개혁을 수차례 조언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