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에 수조원대 부실을 안긴 ‘해양 플랜트’ 충격이 끝나지 않고 있다. 대표적 해양 플랜트인 드릴십(선박 형태의 원유·가스 시추 설비)을 주문했던 선주사들이 저유가 여파로 계약을 잇따라 취소하고 있어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드릴십은 10척, 금액으로는 52억8000만달러(약 6조23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57%가량인 30억4350만달러(약 3조5600억원)를 아직 받지 못한 잔금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끝나지 않은 '드릴십 악몽'…선주사들 잇단 계약 취소
드릴십 재매각도 실패한 대우조선

27일 업계에 따르면 노르웨이 시추회사 노던드릴링은 지난 7일 자회사인 웨스트코발트를 통해 발주한 대우조선해양 드릴십 구매를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노던드릴링은 “웨스트코발트가 미리 지급한 선수금(4920만달러)과 손해 배상금 등을 대우조선해양에 청구할 것”이라며 소송전까지 예고했다.

이 드릴십은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미국 시추사 밴티지드릴링(밴티지)으로부터 6억6000만달러에 수주한 ‘코발트 익스플로러’다. 밴티지가 2015년 유가 급락 여파로 건조금을 납부하지 못하면서 계약이 취소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4월 최초 계약액의 절반 수준인 3억5000만달러에 드릴십을 웨스트코발트로 넘기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웨스트코발트가 돌연 매입을 거부하면서 재고 드릴십 처리는 물론 대우조선해양 경영 정상화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중인 영국 엔스코(2척)와 노던드릴링(2척) 등 19억4000만달러 규모의 나머지 드릴십도 제대로 인도될지 미지수다. 저유가로 인해 다른 시추 업체들도 자금난을 겪고 있어 추가 계약 취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받지 못한 드릴십 잔금(5척)은 총 10억7350만달러로 추산된다.

삼성은 못 받은 잔금만 2조원대

삼성중공업도 지난달 24일 스위스 선사인 트랜스오션으로부터 건조 중인 드릴십 2척에 대한 계약 포기 의사를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2013년과 2014년 그리스 시추사 오션리그로부터 2척의 드릴십을 14억3000만달러에 수주했다. 이후 트랜스오션이 오션리그를 인수하며 해당 계약은 자동 양도됐다. 트랜스오션이 최종 인도를 포기하면 삼성중공업은 이미 받은 선수금(5억2000만달러) 반환 여부와 건조 중인 드릴십의 보상 범위를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증권업계에선 이번 취소로 올 3분기 삼성중공업의 영업손실(충당금)이 30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앞서 미국 시추사 퍼시픽드릴링(PDC) 1척과 노르웨이 시추사 시드릴 2척에 대해 취소 통보를 받았다. 총 15억6000만달러 규모다. 이들 3척 드릴십에서 확보한 선수금은 계약액의 32%인 5억달러다. PDC는 “1억8000만달러의 선수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해 국제 중재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실제 삼성중공업이 손에 쥐는 선수금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삼성중공업이 받지 못한 드릴십 잔금(5척)은 총 19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미국산 셰일오일 개발 붐을 타고 국제 유가 약세가 장기화하면서 ‘드릴십 취소 쇼크’가 한국 조선산업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조를 마치고 인도가 지연된 드릴십은 유지 보수에만 연간 1000억원 넘게 들어간다”며 “유가 회복 전망이 없으면 재매각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