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조 퍼붓고 '質 낮은 일자리'만…親노조정책이 부른 '고용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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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748만명
1년새 13% 늘어 15년 만에 최대
1년새 13% 늘어 15년 만에 최대
네덜란드, 폴란드, 콜롬비아, 그리고 한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20%가 넘는 나라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노동경직성이 높다는 것.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해 조사(140개 국가)에 따르면 한국은 고용·해고 관행과 임금 결정 유연성 부문에서 각각 87위와 63위를 차지했다.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콜롬비아는 이 순위가 109위, 85위였다. 네덜란드는 고용·해고 관행(15위)은 양호하나 임금 결정 유연성(122위)이 최하위권이고, 폴란드는 고용·해고 관행(113위) 순위가 낮았다.
노동경직성이 높을수록 비정규직이 많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고용 보호 수준이 높은 건 대부분 정규직”이라며 “정규직을 한 번 채용하면 성과가 낮아도 내보내기 힘들고 임금도 조정하기 힘드니 유연성이 높은 비정규직을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고용경직성과 임금경직성은 올해 WEF 평가에서 각각 102위와 84위로 악화됐다. 현 정부 들어 노동경직성을 높이는 정책을 한층 강화한 탓이다. 올해 비정규직이 역대 최대폭 늘어난 결정적 이유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변경 감안해도 비정규직 35만 명↑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1000명으로 작년보다 86만7000명(13.1%) 늘었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대폭 증가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6.4%로, 역시 사상 최대였다.
정부는 통계 조사방식 변경으로 비정규직 증가폭이 실제보다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근로계약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근로자에게 ‘특정 시점에 고용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느냐’고 물은 뒤 ‘그렇다’고 답변하면 비정규직으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기존엔 정규직으로 분류되던 인원 37만~52만 명이 비정규직으로 잡혔다.
하지만 조사방식 변경 효과를 감안해도 올해 비정규직은 최소 35만 명 늘었다. 작년 증가폭(3만6000명)의 열 배 수준이다. 조사방식 변경 효과를 제외한 비정규직 비중은 33.9%로 2011년(34.2%) 후 8년 만에 가장 높았다. “노동경직성이 정규직 확대 어렵게 해”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과속인상과 함께 친(親)노조 정책이 비정규직 급증이란 참사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정규직 고용 비용이 크게 높아졌다”며 “경기 침체로 수익이 쪼그라든 기업들로선 비용 부담이 낮은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게 생존 전략이었다”고 토로했다.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사무총장도 지난 21일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은 기업이 고용(정규직)을 주저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는 ‘양대지침’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폐기했다.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정책도 시행이 예고돼 있다. 이런 혜택은 근무 기간이 길어야 2년 정도고 노조도 없는 비정규직에겐 남의 이야기다. 그렇지 않아도 처우가 좋은 정규직만 더 윤택해졌다. 300명 이상 대기업에는 올 4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까지 시행됐다.
일자리 예산 23조원 투입했지만…
정부의 올해 일자리 예산은 23조원에 이른다. 세금으로 인건비를 지원하는 재정 일자리 확충이 핵심 사업이다. 일례로 올해 노인일자리는 8월 기준 작년보다 13만7000명 늘었다. 지난해(6만2000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그런데 재정일자리는 대부분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고 주당 근로시간도 짧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감축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론 비정규직을 늘리는 정책을 쓴 셈이다.
유경준 교수는 “비정규직을 줄이려면 정규직 과보호를 완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세계적으로도 비정규직 비중이 낮은 나라들은 대부분 고용유연성이 확보돼 있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비중이 5.5%인 영국은 고용·해고 관행과 임금 결정 유연성 순위가 각각 6위와 12위로 높다. 미국(4.0%)도 3위, 13위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20%가 넘는 나라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노동경직성이 높다는 것.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해 조사(140개 국가)에 따르면 한국은 고용·해고 관행과 임금 결정 유연성 부문에서 각각 87위와 63위를 차지했다.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콜롬비아는 이 순위가 109위, 85위였다. 네덜란드는 고용·해고 관행(15위)은 양호하나 임금 결정 유연성(122위)이 최하위권이고, 폴란드는 고용·해고 관행(113위) 순위가 낮았다.
노동경직성이 높을수록 비정규직이 많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고용 보호 수준이 높은 건 대부분 정규직”이라며 “정규직을 한 번 채용하면 성과가 낮아도 내보내기 힘들고 임금도 조정하기 힘드니 유연성이 높은 비정규직을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고용경직성과 임금경직성은 올해 WEF 평가에서 각각 102위와 84위로 악화됐다. 현 정부 들어 노동경직성을 높이는 정책을 한층 강화한 탓이다. 올해 비정규직이 역대 최대폭 늘어난 결정적 이유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변경 감안해도 비정규직 35만 명↑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1000명으로 작년보다 86만7000명(13.1%) 늘었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대폭 증가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6.4%로, 역시 사상 최대였다.
정부는 통계 조사방식 변경으로 비정규직 증가폭이 실제보다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근로계약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근로자에게 ‘특정 시점에 고용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느냐’고 물은 뒤 ‘그렇다’고 답변하면 비정규직으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기존엔 정규직으로 분류되던 인원 37만~52만 명이 비정규직으로 잡혔다.
하지만 조사방식 변경 효과를 감안해도 올해 비정규직은 최소 35만 명 늘었다. 작년 증가폭(3만6000명)의 열 배 수준이다. 조사방식 변경 효과를 제외한 비정규직 비중은 33.9%로 2011년(34.2%) 후 8년 만에 가장 높았다. “노동경직성이 정규직 확대 어렵게 해”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과속인상과 함께 친(親)노조 정책이 비정규직 급증이란 참사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정규직 고용 비용이 크게 높아졌다”며 “경기 침체로 수익이 쪼그라든 기업들로선 비용 부담이 낮은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게 생존 전략이었다”고 토로했다.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사무총장도 지난 21일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은 기업이 고용(정규직)을 주저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는 ‘양대지침’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폐기했다.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정책도 시행이 예고돼 있다. 이런 혜택은 근무 기간이 길어야 2년 정도고 노조도 없는 비정규직에겐 남의 이야기다. 그렇지 않아도 처우가 좋은 정규직만 더 윤택해졌다. 300명 이상 대기업에는 올 4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까지 시행됐다.
일자리 예산 23조원 투입했지만…
정부의 올해 일자리 예산은 23조원에 이른다. 세금으로 인건비를 지원하는 재정 일자리 확충이 핵심 사업이다. 일례로 올해 노인일자리는 8월 기준 작년보다 13만7000명 늘었다. 지난해(6만2000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그런데 재정일자리는 대부분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고 주당 근로시간도 짧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감축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론 비정규직을 늘리는 정책을 쓴 셈이다.
유경준 교수는 “비정규직을 줄이려면 정규직 과보호를 완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세계적으로도 비정규직 비중이 낮은 나라들은 대부분 고용유연성이 확보돼 있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비중이 5.5%인 영국은 고용·해고 관행과 임금 결정 유연성 순위가 각각 6위와 12위로 높다. 미국(4.0%)도 3위, 13위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