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외여행자 건보료 면제…폐지하거나 대폭 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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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 "면제 안 된다" 제동
연 20만명 혜택 사라질 듯
연 20만명 혜택 사라질 듯
법제처가 “해외여행 중인 사람은 건강보험료를 면제받을 수 없다”는 법령 해석을 내렸다. 연간 20만 명에 이르는 한 달 이상 해외 여행자에게 건보료 면제 혜택을 주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31일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법제처는 최근 ‘국외여행 시 건보료를 면제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한 민원인의 법령 해석 요청에 “면제해선 안 된다”고 회신했다. 이 민원인은 앞서 소관 부처인 복지부에 같은 내용을 질의했으나 “면제해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법제처에 다시 해석을 요청했다.
법제처는 “국민건강보험법은 국외에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보험료를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해외여행은 면제 사유에 없다”고 지적했다. 입법 취지가 소득활동을 위해 외국에 터전을 잡은 사람과 단순 여행자는 차이를 둬야 한다는 데 있고, 이런 법 문구를 넘어 달리 해석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부터 자체 유권해석을 통해 한 달 이상 해외 여행자는 보험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지난해 1~6개월 해외 체류로 보험료를 면제받은 사람은 19만601명이다. 면제 금액은 426억1300만원에 이른다. 보통 업무를 위한 해외 파견 등은 1년이 넘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1~6개월 체류자는 대부분 해외 여행자로 추정된다. 지난 15년간 수천억원의 건보료를 덜 거둔 셈이다. 복지부는 “법제처 해석을 반영해 제도를 고치겠다”고 밝혔다.
"건보재정 악화되자 '해외여행 건보료 면제' 없애나"…지역가입자들 '불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A씨는 올여름 가족과 함께 한 달간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 저렴한 ‘한 달 살기’ 여행 상품이 많아 세 명이 300만원도 안 썼다. 여기에 한 달 63만원 정도인 건강보험료도 면제받으니 일석이조였다. A씨는 귀국 직후 장염에 걸려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았다. 혹시 건보료를 내야 하나 싶어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는데 “귀국한 달엔 건보 혜택과 상관없이 보험료가 면제된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앞으로 A씨 사례와 같은 건보료 면제는 힘들어질 전망이다. 법제처가 “해외여행 중인 사람은 건보료를 면제해선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면제해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주요 근거다. 정부는 뒤늦게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10년 넘게 편법으로 건보료를 깎아줘 재정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입자들은 그간 문제 없이 누려온 혜택을 일순간 잃어버릴 처지에 놓여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해외여행은 건보료 면제 사유 안 돼”
국민건강보험법은 해외에서 업무에 종사하거나 입대 또는 수감될 때 건보료를 면제한다고 규정한다. 해외 여행은 면제 사유에 없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2004년 ‘한 달 이상 해외 여행 중일 때는 건보료를 면제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려 가입자에게 혜택을 줘왔다. 법제처는 이는 월권이라는 법령 해석을 내놨다. ‘법 문구를 넘어 임의로 면제 사유를 넓혀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간엔 보험료도 내지 않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해외여행자에게도 혜택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제처는 이런 주장도 반박했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의료 보장을 위한 재정을 충당할 목적으로 보험료를 징수하는 것이고, 직접 혜택을 보지 않는 기업도 보험료를 낸다는 점에서 보험료 부과 의무와 혜택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법제처 판단에 힘을 실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년간 병원에 안 간 사람도 건보료는 꼬박꼬박 내지 않느냐”며 “여행 정도로 보험료를 면제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도 “여행을 하다 아프면 귀국해서 진료받고 건보 혜택을 받는 사례가 많다”며 “해외여행자는 국내 거주자와 달리 대우해야 할 이유가 적다”고 지적했다. 지금 제도로는 매달 1일 이후에만 귀국하면 그달에 보험 혜택을 받아도 건보료는 면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달 국회에서 보험료 면제와 관련된 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법제처 해석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재정 누수부터 잡아야”
가입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만을 나타냈다. 지역 건강보험 가입자인 이모씨는 “지난 15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던 게 위법이었다니 황당하다”며 “면제 혜택을 줄이려면 지역가입자에게 가혹한 보험료 제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가입자는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 대해서도 건보료를 내야 한다. 전 세계에 유례없는 제도다.
10년 넘게 편법적인 제도 운영으로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초래한 부분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1~6개월 해외 체류로 보험료를 면제해준 금액은 작년에만 426억원에 이른다.
건보 재정 누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비의료인이 설립한 의료기관, ‘불법 사무장병원’을 통해 새 나간 건보 재정은 2015년부터 올 6월까지 2조1000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5797억원으로 작년 연간 기록(3986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31일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법제처는 최근 ‘국외여행 시 건보료를 면제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한 민원인의 법령 해석 요청에 “면제해선 안 된다”고 회신했다. 이 민원인은 앞서 소관 부처인 복지부에 같은 내용을 질의했으나 “면제해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법제처에 다시 해석을 요청했다.
법제처는 “국민건강보험법은 국외에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보험료를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해외여행은 면제 사유에 없다”고 지적했다. 입법 취지가 소득활동을 위해 외국에 터전을 잡은 사람과 단순 여행자는 차이를 둬야 한다는 데 있고, 이런 법 문구를 넘어 달리 해석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부터 자체 유권해석을 통해 한 달 이상 해외 여행자는 보험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지난해 1~6개월 해외 체류로 보험료를 면제받은 사람은 19만601명이다. 면제 금액은 426억1300만원에 이른다. 보통 업무를 위한 해외 파견 등은 1년이 넘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1~6개월 체류자는 대부분 해외 여행자로 추정된다. 지난 15년간 수천억원의 건보료를 덜 거둔 셈이다. 복지부는 “법제처 해석을 반영해 제도를 고치겠다”고 밝혔다.
"건보재정 악화되자 '해외여행 건보료 면제' 없애나"…지역가입자들 '불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A씨는 올여름 가족과 함께 한 달간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 저렴한 ‘한 달 살기’ 여행 상품이 많아 세 명이 300만원도 안 썼다. 여기에 한 달 63만원 정도인 건강보험료도 면제받으니 일석이조였다. A씨는 귀국 직후 장염에 걸려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았다. 혹시 건보료를 내야 하나 싶어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는데 “귀국한 달엔 건보 혜택과 상관없이 보험료가 면제된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앞으로 A씨 사례와 같은 건보료 면제는 힘들어질 전망이다. 법제처가 “해외여행 중인 사람은 건보료를 면제해선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면제해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주요 근거다. 정부는 뒤늦게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10년 넘게 편법으로 건보료를 깎아줘 재정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입자들은 그간 문제 없이 누려온 혜택을 일순간 잃어버릴 처지에 놓여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해외여행은 건보료 면제 사유 안 돼”
국민건강보험법은 해외에서 업무에 종사하거나 입대 또는 수감될 때 건보료를 면제한다고 규정한다. 해외 여행은 면제 사유에 없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2004년 ‘한 달 이상 해외 여행 중일 때는 건보료를 면제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려 가입자에게 혜택을 줘왔다. 법제처는 이는 월권이라는 법령 해석을 내놨다. ‘법 문구를 넘어 임의로 면제 사유를 넓혀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간엔 보험료도 내지 않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해외여행자에게도 혜택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제처는 이런 주장도 반박했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의료 보장을 위한 재정을 충당할 목적으로 보험료를 징수하는 것이고, 직접 혜택을 보지 않는 기업도 보험료를 낸다는 점에서 보험료 부과 의무와 혜택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법제처 판단에 힘을 실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년간 병원에 안 간 사람도 건보료는 꼬박꼬박 내지 않느냐”며 “여행 정도로 보험료를 면제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도 “여행을 하다 아프면 귀국해서 진료받고 건보 혜택을 받는 사례가 많다”며 “해외여행자는 국내 거주자와 달리 대우해야 할 이유가 적다”고 지적했다. 지금 제도로는 매달 1일 이후에만 귀국하면 그달에 보험 혜택을 받아도 건보료는 면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달 국회에서 보험료 면제와 관련된 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법제처 해석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재정 누수부터 잡아야”
가입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만을 나타냈다. 지역 건강보험 가입자인 이모씨는 “지난 15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던 게 위법이었다니 황당하다”며 “면제 혜택을 줄이려면 지역가입자에게 가혹한 보험료 제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가입자는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 대해서도 건보료를 내야 한다. 전 세계에 유례없는 제도다.
10년 넘게 편법적인 제도 운영으로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초래한 부분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1~6개월 해외 체류로 보험료를 면제해준 금액은 작년에만 426억원에 이른다.
건보 재정 누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비의료인이 설립한 의료기관, ‘불법 사무장병원’을 통해 새 나간 건보 재정은 2015년부터 올 6월까지 2조1000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5797억원으로 작년 연간 기록(3986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