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반도체, 이건희 新경영, 이재용 뉴삼성…"다시 기적의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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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들이 되돌아본 50년
윤종용 "직원 10명이 설립 준비
돈·기술 없이 전자산업 뛰어들어"
손욱 "반도체로 변곡점 맞아"
김광호 "D램 개발 가장 기억"
윤종용 "직원 10명이 설립 준비
돈·기술 없이 전자산업 뛰어들어"
손욱 "반도체로 변곡점 맞아"
김광호 "D램 개발 가장 기억"
“다들 죽어라 일해서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다.”
삼성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50년 역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1969년 10명이 준비해 설립한 흑백TV 회사가 직원 20만 명에 육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휴대폰을 비롯해 12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향후 50년간 조직을 혁신해 백년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화수목금금금…절박하게 일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31일 “1969년 입사 3년 차인 나를 포함해 10명이 삼성전자 설립을 준비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윤 전 부회장은 “전자산업을 해보지 않은 회사가 돈과 기술도 없이 TV 생산에 뛰어들었다”며 “이미 진출해 있던 금성사(현 LG전자)와 대한전선이 삼성전자 설립을 반대해 제품을 전량 수출하는 조건으로 회사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살아남기 위해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어떻게 하면 수출할 수 있을까’만 밤낮으로 고민하며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며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버려진 자식처럼 일해 그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자평했다.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1983년을 최고의 때로 꼽았다. 손 전 원장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면서 조직 형태도 바뀌고 경영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해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계 최초로 256M D램을 개발한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개발 사실을 발표한 날이 1994년 8월 29일인데, 이날이 한국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일이었다”며 “기술력으로 일본을 눌렀다는 극일의 의미를 담기 위해 이날을 택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다음날 구한말 당시 태극기를 큼지막하게 그려넣은 형태로 신문광고를 냈다. 김 전 부회장은 “적어도 D램 기술에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평등했던 구한말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를 가장 크게 바꾼 사건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란 데는 이견이 없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삼성전자가 양 중심에서 질 중심으로 바뀌었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사업구조를 혁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TV나 휴대폰 같은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디자인 경영을 펼쳐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양손잡이 조직으로 변신해야”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혁신과 창의의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송 교수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오른손잡이 중심의 군대식 유격대였다면 앞으로는 왼손잡이 별동부대도 만들어 양손잡이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부회장이 ‘관리의 삼성’에서 ‘창조의 삼성’으로 바꾸기 위해 다양성과 개방성 유연성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며 “당장 바뀌지는 않더라도 서서히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술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윤 전 부회장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지속적으로 기술혁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주력 제품을 더욱 키우고 미래 성장 산업을 찾아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인설/고재연 기자 surisuri@hankyung.com
삼성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50년 역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1969년 10명이 준비해 설립한 흑백TV 회사가 직원 20만 명에 육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휴대폰을 비롯해 12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향후 50년간 조직을 혁신해 백년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화수목금금금…절박하게 일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31일 “1969년 입사 3년 차인 나를 포함해 10명이 삼성전자 설립을 준비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윤 전 부회장은 “전자산업을 해보지 않은 회사가 돈과 기술도 없이 TV 생산에 뛰어들었다”며 “이미 진출해 있던 금성사(현 LG전자)와 대한전선이 삼성전자 설립을 반대해 제품을 전량 수출하는 조건으로 회사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살아남기 위해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어떻게 하면 수출할 수 있을까’만 밤낮으로 고민하며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며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버려진 자식처럼 일해 그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자평했다.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1983년을 최고의 때로 꼽았다. 손 전 원장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면서 조직 형태도 바뀌고 경영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해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계 최초로 256M D램을 개발한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개발 사실을 발표한 날이 1994년 8월 29일인데, 이날이 한국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일이었다”며 “기술력으로 일본을 눌렀다는 극일의 의미를 담기 위해 이날을 택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다음날 구한말 당시 태극기를 큼지막하게 그려넣은 형태로 신문광고를 냈다. 김 전 부회장은 “적어도 D램 기술에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평등했던 구한말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를 가장 크게 바꾼 사건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란 데는 이견이 없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삼성전자가 양 중심에서 질 중심으로 바뀌었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사업구조를 혁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TV나 휴대폰 같은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디자인 경영을 펼쳐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양손잡이 조직으로 변신해야”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혁신과 창의의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송 교수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오른손잡이 중심의 군대식 유격대였다면 앞으로는 왼손잡이 별동부대도 만들어 양손잡이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부회장이 ‘관리의 삼성’에서 ‘창조의 삼성’으로 바꾸기 위해 다양성과 개방성 유연성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며 “당장 바뀌지는 않더라도 서서히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술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윤 전 부회장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지속적으로 기술혁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주력 제품을 더욱 키우고 미래 성장 산업을 찾아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인설/고재연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