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내년 8월부터 프랑스 르노그룹과 삼성 브랜드 이용 계약을 해지하기로 함에 따라 르노삼성차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쓸 수 없게 된다. 사진은 르노삼성 부산공장 전경.  /한경DB
삼성그룹이 내년 8월부터 프랑스 르노그룹과 삼성 브랜드 이용 계약을 해지하기로 함에 따라 르노삼성차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쓸 수 없게 된다. 사진은 르노삼성 부산공장 전경. /한경DB
삼성그룹이 르노삼성자동차와 맺은 브랜드 이용 계약을 해지한다. 내년 8월부터다. 르노삼성은 사명에서 삼성을 떼고 삼성 로고도 쓸 수 없게 된다. 2000년 프랑스 르노그룹이 옛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시작된 삼성과 르노의 합작관계가 20년 만에 청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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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내년 8월 4일까지로 돼 있는 르노삼성의 삼성 브랜드 이용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르노삼성 2대 주주인 삼성카드도 르노와 합작관계를 맺으며 보유해온 르노삼성 지분(19.9%)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2000년 르노그룹에 삼성차를 매각하면서 10년 주기로 르노가 삼성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계약을 맺었다. 삼성 브랜드 이용권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이 르노삼성 국내 매출액의 0.8%를 받아왔다.

르노삼성은 브랜드 사용 계약 해지에 대비해 올 상반기 부산공장에서 생산하는 SM5를 단종한 데 이어 지난 9월 SM3와 SM7 생산도 중단했다. 대신 르노그룹의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클리오와 마스터 차량 판매를 늘리고 있다. 7월 직원 이메일 주소도 르노삼성닷컴에서 르노닷컴으로 바꿨다.

삼성 "르노와 제휴 실익 없어…완성차 재진출說 오해도 해소"

삼성그룹이 르노삼성자동차와 브랜드 계약을 해지하려는 것은 제휴로 인한 실익이 크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삼성 브랜드를 쓰게 하는 대가로 르노삼성으로부터 받는 로열티보다 더 많은 유무형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이 2000년 옛 삼성자동차를 프랑스 르노그룹에 매각한 뒤에도 끊임없이 제기돼온 완성차사업 재진출설을 불식할 수 있다는 점도 르노와 결별하려는 요인 중 하나다. 르노삼성에 강성 노조가 들어서면서 ‘노조 리스크’가 부각된 점도 삼성에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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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사업 강화하는 데 걸림돌

삼성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이 축적해온 전자 분야의 기술력과 수출망, 관련 분야에서 확보한 내부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면 자동차사업을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완성차사업 진출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삼성차가 1998년 일본 닛산과 제휴해 출시한 SM5는 인기를 끌었지만, 그해 외환위기의 충격을 비켜가진 못했다. 대출금리가 폭등하면서 자금 압박을 받은 삼성차는 199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때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하면서 삼성과 르노의 합작이 시작됐다. 당시 삼성은 르노와 두 가지 조건에 합의했다. 르노삼성이라는 사명을 쓸 수 있게 하고, 삼성카드가 르노삼성의 2대주주로 남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자동차사업을 하려면 삼성의 기술력과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르노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초기엔 삼성도 적잖은 이익을 봤다. 삼성전기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가 르노삼성에 안정적으로 납품할 수 있었다. 르노그룹으로부터 매년 삼성 브랜드 이용료와 수백억원의 배당금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제휴관계가 오히려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르노삼성이 출범한 지 20년이 되면서 삼성이 여전히 완성차사업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삼성이 배터리와 자동차 반도체 같은 전장사업을 강화하면서 ‘삼성의 완성차사업 재진출설’은 더 확산됐다. 삼성전자는 2016년 9조2000억원을 들여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전장용 반도체를 미래 성장사업으로 선정했다.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완성차업체가 삼성 부품을 잘 써주지 않는다는 게 삼성의 판단이다. 삼성은 르노와의 합작 관계를 청산하면 이런 의구심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르노삼성의 노사 갈등도 부담

삼성은 르노삼성의 노사관계도 불안 요소로 봤다. 삼성카드가 르노삼성의 2대주주로 있을 뿐 삼성은 르노삼성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르노삼성이 노사 갈등을 겪을 때마다 삼성이 잘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게 삼성그룹의 판단이다.

한동안 르노삼성은 ‘노사관계 모범생’으로 불렸지만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노조는 기본급을 대폭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회사 측은 신차 배정을 앞둔 상태라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맞섰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4년 만에 파업에 나섰다. 두 달 뒤 박종규 새 노조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노조는 더욱 강경해졌다. 박 위원장은 2011년 기존 노조(상급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기업 노조)와 별개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르노삼성 지회를 설립한 인물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생산을 위탁한 일본 닛산이 노조 파업을 이유로 위탁 물량을 연 10만 대에서 6만 대로 줄이는 일도 벌어졌다. 사상 첫 전면파업까지 강행한 끝에 르노삼성 노사는 올해 6월 2018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2019년도 임단협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노조는 올해도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회사는 거부하고 있다.

내년 이후 노사 갈등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생산할 물량이 줄어들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서다. 삼성 관계자는 “르노삼성 노사관계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 브랜드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정인설/황정수/고재연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