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에도 대규모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추진한다. 최근 수년 새 발행이 잦아지면서 외평채 발행 잔액은 13년 만에 최대로 불어날 전망이다. 매년 지급하는 외평채 이자만 3000억원에 달해 추가 발행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매년 이자만 3000억 달하는데…외평채 또 찍겠다는 정부
3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회로부터 15억달러(약 1조7400억원) 한도로 외평채 발행계획을 승인받았다. 외평채는 정부가 환율 안정을 목적으로 운용하는 외국환평형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외화채권이다.

정부의 외평채 발행 잔액은 약 9조4000억원이다. 2015년 말(약 7조원) 이후 4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내년에 계획한 대로 15억달러어치를 조달하면 발행 잔액은 11조10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외평채 발행 잔액이 10조원을 넘기는 것은 2006년(14조7000억원) 이후 13년 만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그동안 만기에 맞춰 차환한 물량이 적지 않은 데다 글로벌시장에서 한국 채권 가격의 벤치마크(기준 지표) 역할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0억달러어치를 발행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해외에서 총 12차례 외평채를 발행했다. 이 중 절반인 여섯 차례(발행액 총 7조7800억원)가 최근 7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외평채 발행이 없었던 해는 2016년뿐이다.

외평채 발행 잔액이 급격히 늘면서 이자 부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해 지급하는 외평채 이자만 약 3000억원에 달한다. 내년 외평채를 추가 발행하면 350억원가량의 이자를 새로 부담해야 한다. 외평채를 발행해 조성하는 외국환평형기금의 운용 수익률마저 하락 추세다.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 대부분을 미국 국채 등 확정금리형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금리 하락 여파로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 1.87%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자본시장 일각에선 정부의 외평채 추가 발행이 실리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말 한국 외환보유액은 4075억6000만달러(약 474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화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다. 내년엔 만기를 맞는 외평채가 없어 차환할 필요도 없다.

한국 기업의 해외 채권 발행 여건을 개선한다는 이유를 대기도 어렵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글로벌시장에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한국 채권 가격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처럼 한국 경제의 변곡점이 아니라면 외평채 발행효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한국 기업들의 외화 조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발행 시기에 밀려 기업들이 해외 채권 발행 적기를 놓칠 수 있어서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