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태양광산업의 고용·설비·투자는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의 한 야산에 대규모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한경DB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태양광산업의 고용·설비·투자는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의 한 야산에 대규모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한경DB
태양광 풍력 등 국내 신재생에너지 제조업체의 고용·매출·투자가 일제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원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재생에너지의 산업 경쟁력은 되레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에너지공단이 발표한 ‘2018년 신재생에너지 산업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신재생에너지 제조업체의 고용 인원은 1만3885명으로 전년보다 3.9% 줄었다. 2015년부터 3년 연속 감소세다. 매출은 9조9671억원으로 2.3% 감소했다. 투자액은 82.5% 급감한 1421억원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산업의 위축은 전체 고용·매출·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태양광산업이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탓이다. 2018년 국내 태양광 제조업체의 고용 인원은 전년 대비 2.2% 줄었다. 매출과 투자는 각각 9.8%, 85.7% 뒷걸음질 쳤다. 정부는 2017년 말 7%인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0%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후 각종 보조금을 지원하며 태양광 보급을 밀어붙였다. 태양광 패널이 전국 야산과 농지 등을 빠르게 뒤덮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 태양광업체의 실적 악화는 이례적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산업 생태계 육성보다 태양광 보급 확대에 치중한 나머지 저가 중국산 태양광 설비가 국내 시장을 잠식한 결과”라며 “국내 태양광산업 생태계는 그만큼 쪼그라들었다”고 설명했다.
싼 중국산에 밀려…태양광 늘릴수록 국내기업은 파산·감원 속출

“신재생 등 청정에너지산업을 적극 육성해 새 성장동력이 되도록 만들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脫)원전 정책을 공식화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후 정부는 7%에 불과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3020 이행계획’을 내놨다.

정부의 집중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설비 제조업체 등은 고사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재생에너지업계의 매출·고용·투자가 일제히 추락하고 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무분별하게 유입됐는데도 이를 차단하는 장치가 없다시피 해서다. “정부가 중국 태양광 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년 연속 ‘신재생 고용’ 급감

한국에너지공단의 ‘2018년 신재생에너지 산업통계’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설비·연료를 취급하는 국내 업체는 총 385개로, 전년(437개) 대비 11.9% 감소했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의 저가 공세 등으로 업황이 워낙 좋지 않다”며 “재생에너지업계에서 매각, 인수합병, 업종전환 등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국내업체 수가 줄면서 일자리와 매출도 급감했다. 2014년 1만5518명이던 신재생에너지 제조업체 인력은 2015년 1만5964명으로 소폭 늘었으나 이후 3년 연속 줄었다. 2018년엔 1만388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신재생에너지업계의 전체 매출 역시 2017년 10조2033억원에서 1년 만에 9조9671억원으로 2.3% 감소했다.

투자는 더 처참한 수준이다. 2018년 기준 1421억원으로, 전년(8130억원) 대비 6분의 1 토막이 됐다. 줄곧 8000억원대 안팎을 유지하던 신재생에너지 투자 규모가 1000억원대로 주저앉은 것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신재생에너지업계의 위기는 주로 태양광산업의 위축 때문이란 지적이다. 태양광 비중이 신재생에너지 고용의 55.7%, 매출의 64.8%에 달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태양광 보급에만 급급한 정부

에너지공단 산업통계는 “태양광을 미래 먹거리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당초 목표는 물론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난 태양광설비 현황과도 상반된 결과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누적 설비용량은 1만9027㎿로, 전년 대비 21.17% 증가했다. 당해 설치됐던 신규 설비 용량만 3533㎿ 규모에 달했다. 태양광 설비가 급증했는데도 국내 제조업체들은 줄줄이 부도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재생에너지산업의 생태계 육성보다 태양광 보급에만 치중하면서 국내 제조업체들이 전례없는 위기에 몰려 있다”며 “가격 경쟁력은 중국에, 기술력은 선진국에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태양광뿐만 아니라 풍력산업 역시 덴마크 독일 등 해외 업체들의 놀이터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대형 태양광 제조업체 대표는 “품질이 낮고 인증도 받지 않은 저가 중국산 제품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며 “정책 혜택을 중국 업체들이 보고 있는데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재생에너지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원전업계 역시 ‘죽을 맛’이다. 신한울 3·4호기 백지화 등 탈원전 정책에 따른 ‘수주절벽’ 탓이다. 원전 주기기 제조업체인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우리 협력업체 460여 곳의 작년 매출이 2016년과 비교할 때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원전 분야에선 우리도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은서/이수빈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