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부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 중인 가운데 산업현장에서는 처벌 위주의 지나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 관계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개정 산안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 16일부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 중인 가운데 산업현장에서는 처벌 위주의 지나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 관계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개정 산안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해 하루에 3개꼴로 규제가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겉으로는 규제 혁신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경제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쏟아내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입법·행정예고한 신설·강화 규제 법령안은 505개였다. 2016년 317개에서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422개로 확 뛰었다. 2018년에도 440개로 증가세를 지속했고 작년 500개를 넘어섰다. 산업안전, 금융, 식품, 자동차, 의약품 등 대·중소기업 규제는 물론 반려동물 판매업자, 정원관리사, 유흥업소 운영자 등 소상공인의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까지 광범위했다.

하나의 법안에 규제가 여러 개 포함된 경우를 고려해 지난해 규제 법안을 전수 조사한 결과 세부 규제는 1003건에 이르렀다. 하루평균 2.7건의 규제가 만들어진 셈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최근 입법예고한 것을 빼고는 대부분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을 앞둔 것들”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95% 이상은 국회 동의 없이 정부 의결만으로 시행할 수 있는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과 행정규칙이다.
기업 손실 年 1000억 넘어도 '나몰라라'
국토부·환경부는 '규제王'


2018년 12월 17일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은 많은 기업의 주목을 받았다. 현 정부 들어 처음 ‘핵심규제 개혁’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취임 후 처음 주재한 확대경제장관 회의에서 “정부는 먼저 찾아 나서서 기업 투자의 걸림돌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경영계에서도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사흘 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화장품 원료목록을 사후보고에서 사전보고로 바꾸는 조치를 내놨다. 2주 뒤엔 건설 현장에서 부실 공사 우려만 있어도 공사를 중단하게 하는 규제법안을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했다. 각각 업계가 반대해온 사안이다. 이를 시작으로 지난해 1년간 의료, 금융, 노동, 방송, 식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매달 굵직한 규제들이 쏟아졌다.

기업들의 체감은 통계 수치로도 입증됐다. 28일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입법·행정예고한 신설·강화 규제 법령안은 2018년 440개에서 작년 505개로 늘었다. 2016년(317개)과 비교하면 59.3% 증가한 수치다. 법안에 포함된 ‘세부 규제 건수’를 보면 작년 1003건에 이르렀다.
작년 '하루 3개꼴' 규제 쏟아낸 정부
미국에서도 “심하다” 지적받아

단순히 규제 양만 늘어난 게 아니다. 지난해 신설·강화 규제 법령안의 ‘규제영향분석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규제로 인한 기업들의 손실(비용)이 연간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 것은 10건에 이르렀다. 1000억원 초과도 3개였다. 신설·강화 규제는 이를 추진하는 정부 부처가 규제로 인한 비용, 편익 등을 분석하는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해야 한다. 기업에 이 정도로 부담을 주는 규제라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텐데 정부는 대부분 강행했다.

건설업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을 120억원 이상 공사에서 50억원으로 확대한 규제(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는 기업들의 인건비 등 부담을 한 해 1710억원 늘릴 것으로 계산됐다. 건설업계의 반발에도 지난 16일부터 시행됐다.

주류업계와 화장품업계는 작년 12월 시행된 ‘포장재 규제’에 신음하고 있다. 재활용이 어려운 유색 페트·유리병 등의 제조를 금지하거나 재활용 분담금을 많이 물리는 규제다. 규제 비용이 969억원에 이르고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문제 제기가 나왔다. 미국증류주협회는 작년 11월 환경부에 서한을 보내 “(기업 활동에) 불필요한 장애물을 만들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규제 비용이 미미할 것으로 분석된 규제영향평가서도 상당수가 과소 추계됐다는 게 산업계의 판단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정부 부처의 규제 비용 편익 분석 역량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고 이를 높여 나가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장 많은 규제를 쏟아낸 부처는 국토부(241건)였다. 부동산 건설 자동차 항공 등 규제 범위가 넓은데 김현미 장관 취임 이후 규제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작년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 등 부동산 분야와 타워크레인 연식 제한 등 건설 분야를 중심으로 규제를 크게 늘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120건)와 환경부(105건)도 신규 규제가 100건을 넘었다. 국토부 포함, 세 부처에서 전체 규제의 46.5%를 만든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신규 규제가 59건이지만 파급력이 큰 규제가 많았다. 주 52시간제, 원청 사업주의 안전 책임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규제는 경제주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새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었다. 규제 증가로 민간 부문의 투자·고용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간의 경제 성장 기여도는 2018년 1.8%포인트에서 작년 0.5%포인트로 뚝 떨어졌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기업은 통제, 감시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데다 소비자 보호와 환경 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다 보니 규제가 늘 수밖에 없다”며 “기업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민간 경제 활력을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