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바른리빙이라는 중소기업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다모칫솔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다. 기존 칫솔보다 얇은 모를 빽빽하게 심어 자극이 적은 칫솔을 개발했다는 걸 장점으로 부각했다. 하지만 같은 상품이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10분의 1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투자자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와디즈는 펀딩을 조기 종료했다. 업체는 “중국 제품과 비슷하지만 기능을 추가해 업그레이드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소비자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 뛰어난 제품 아이디어를 갖춘 중소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창구로 주목받으면서 매년 빠르게 덩치를 불렸지만 품질이나 교환·환불과 관련한 불만도 동시에 늘고 있다. 취지와 달리 기성품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각에서는 크라우드펀딩에 기존 유통업체처럼 엄격한 품질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초기 기업 아이디어에 대한 투자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덩치 불리는 크라우드펀딩

15일 크라우드펀딩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모인 투자금액은 31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전년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가 1300억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두 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초기 기업이 다수 개인투자자로부터 투자받는 방식이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선주문받고 투자금에 상응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리워드형과 개인투자자가 기업 지분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증권형으로 나뉜다. 소비자들이 자금을 모아 기존 시장에 없던 제품 생산으로 연결시키는 리워드형이 주목받으면서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영역도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이다. 투자금을 모집하면서 설명했던 내용과는 다른 상품이 배송되거나 투자금을 유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텀블벅에선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OST 앨범’ 투자금 모집이 논란이 됐다. 15년 전 인기리에 반영된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성우 이용신 씨가 녹음해 발매한다는 취지의 펀딩이었다. 목표금액의 80배가 넘는 26억원이 몰리며 성공적으로 자금 모집을 마쳤지만 정작 투자자들이 받아본 앨범은 예상과 달랐다. 표지 디자인과 구성이 크게 바뀌었고 일부 후원금은 앨범 제작이 아니라 이용신 씨 콘서트 준비에 사용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커머스에 흡수합병된 카카오메이커스는 기성품을 판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주문 상품이라는 이유로 환불과 교환을 거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과태료를 부과받기도 했다.

“크라우드펀딩, 유통 아닌 투자 중개”

비판이 거세지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와디즈는 제품에 심각한 하자가 있으면 환불을 보장하는 펀딩금 반환 방안을 발표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환불을 가능하게 한 건 세계 최초다.

와디즈 관계자는 “오는 3월부터 펀딩금 반환을 시행할 것”이라며 “투자자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크라우드펀딩에 기존 유통업체와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성제품의 품질과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얘기다. 해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이 환불 불가 기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은 경험이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의 본질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라며 “투자가 성공할 수도 있지만 리스크도 있는 것처럼 제품의 기능을 신중하게 따져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