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제2 전성기 맞은 '패션 메카'
도매상만 2만2000개
동대문 새벽시장 가보니
지난 14일 사입삼촌 K씨(32)를 따라 나섰다. 새벽 1시 상가 디오트에 내리자마자 그는 도매 점포를 돌기 시작했다. 손에 들린 장부에 적힌 대로 물건을 큰 비닐봉지에 담았다. 한 시간 만에 60개 점포를 돌았다. 올해 5년째인 그는 “예전에는 사입삼촌들이 물건을 골라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빠서 물건을 받아다 부치는 일만 해도 정신이 없다”고 했다. 층마다 20명 정도의 ‘삼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대문에는 사입삼촌만 2000명이 넘는다. 이들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증가 덕에 동대문의 혈맥 역할을 하는 사입삼촌들은 더 바빠지고 있다. 동대문 살린 ‘온라인 쇼핑몰’
한때 동대문시장이 빛을 잃은 적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저가 의류가 밀려들자 동대문시장은 기울기 시작했다. 상가 건물은 텅텅 비고, 상인들은 망해 나갔다.
3~4년 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온라인 쇼핑몰이 크게 늘면서 동대문 패션 시장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2017년 10조원이었던 온라인 의류시장은 1년 만에 12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동대문에서 하루 거래되는 물량만 약 500억원어치가 넘는다고 한다.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파는 한 도매상은 “매일 신상품 수만 개가 쏟아져 나오는 동대문은 개성있는 상품을 판매하려는 옷가게 주인들에게는 성지와도 같다”고 말했다. 동대문시장이 갖추고 있는 ‘빠른 생산 시스템’, 즉 속도라는 무기가 취향이 급변하는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어떤 디자인이라도 소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도 동대문의 강점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쇼핑몰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한 ‘세포 마켓’에서도 낱장 단위로 동대문에 옷 생산을 요청한다. 온라인플랫폼 신상마켓 관계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옷 판매업자가 늘면서 서너 장이라도 금방 만들어주는 동대문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K패션 열풍에 중국인도 ‘북적’
‘apM’은 동대문에 상가 4개 동을 갖고 있다. 이 중 ‘플레이스’와 ‘럭스’ 앞에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주로 20~30대 여성층을 겨냥한 옷을 파는 상가로, 입점한 가게는 300개 정도다. 상가 내부에 들어서자 중국인을 위한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중국인을 위한 상가로 특화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플레이스와 럭스를 잇는 셔틀버스도 생겨났다.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5분마다 한 대씩 출발한다. 주로 중국인이 많이 탄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도매상 ‘픽업’만 하는 업체도 여럿 있다”며 “중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의 도매상을 대신해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어다 해외로 부쳐주는 에이전시도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도매상별로 중국의 인기 SNS 위챗 계정을 운영하며 실시간으로 중국어로 상담도 해준다.
K패션에 빠진 중국인들은 동대문이 활기를 찾는 또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다. 한류 열풍이 다시 불며 K패션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한국 특유의 스타일이 있는 동대문 패션 상가로 몰려들고 있다는 얘기다.
월세 평당 1000만원…젊어지는 ‘사입삼촌’
동대문에 활력이 돌자 임대료와 기준시가 등도 오르고 있다. 국내 도매상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디오트 상가 1층 핵심 점포는 월세가 3.3㎡당 1000만원에 이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같은 규모라도 월세가 200만원 남짓한 다른 상가 점포들과 격차가 크다. 과거 상권이 죽었을 땐 디오트 상가를 창고로만 쓰던 적도 있었다.
세대 교체 역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사입삼촌’은 20~30대 종사자 비율이 절반가량이다. 예전엔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젊은 층도 찾는 일이 됐다. 동대문 일대에서 일하는 사입삼촌의 수는 2000여 명으로 평균 나이는 많아야 30대 초중반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9년차 사입삼촌 이모씨(34)는 “직접 옷가게를 운영하다 사입삼촌으로 일하게 됐다”며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배우자’며 왔다가 사입 일에 직접 뛰어드는 사례도 흔하다”고 말했다.
키위, 딜리셔스, 동팡, 어반하이브리드 등 동대문에서 사업 기회를 찾는 스타트업의 등장도 ‘젊은 동대문’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