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1950년대 컴퓨터 과학자인 로렌스 포겔 박사는 소음이 심한 군용 헬리콥터와 비행기의 조종석 내 소음을 제거하는 데 집중했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NC)’으로 불리는 ‘능동 소음 제거’ 기능이다.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파동에 다른 파동을 보내 소리의 전달 자체를 막는 방법이다. 파동이 곧 사람에게는 소리로 들리는 만큼 파동을 줄이거나 없애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능동 소음 제거 기능이 적용된 제품은 당연히 헤드셋이다. ANC 기능을 전파한 인물은 항공기 조종사였던 딕 루탄과 부기장 제나 리 예거다. 1986년 오디오 기업인 보스가 시제품으로 제조한 능동 소음 제거 헤드셋을 착용하고 지상 착륙과 급유도 없는 항공기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려 9일 3분44초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았던 ‘루탄 모델 76 보이저’는 현재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유리 및 탄소 섬유로 감싼 동체 무게는 1020㎏에 불과했지만 첫 비행 이륙 때는 연료를 가득 실었기 때문에 4397㎏에 달했다. 최고 196㎞의 속도로 4만㎞를 넘게 날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랜 시간 비행하면서도 ANC 기능이 적용된 헤드셋 덕분에 소음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보스와 독일의 젠하이저 등이 소음 감소 헤드셋을 항공기부터 확산시켰다. 지금은 대부분의 헤드셋에 소음 감소 기능이 들어 있다.
능동 소음 감소에 주목한 첫 자동차회사는 일본의 닛산이다. 1992년 블루버드를 내놓으며 엔진에 ANC를 적용했다. 글로벌 시장에 출시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자동차는 소음이 유입되는 경로가 워낙 다양해 엔진 소음 감소만으로 정숙성 체감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소리를 줄이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숙성이 곧 자동차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소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좋은 ‘소리’여도 사용자에 따라 얼마든지 ‘소음’으로 느낄 수 있어 아예 파동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매번 새 차가 등장할 때마다 소음이 불만의 단골 메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결과 엔진 외에 노면 소음까지 줄이는 ‘능동형 노면소음 저감기술’도 개발됐다. 현대자동차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GV80에 탑재된 RANC 기술은 0.002초 만에 소음을 분석해 반대 파동을 발생시킨다. 소음은 발생 후 0.009초 안에 실내로 전달되는데 그 안에 파동을 생성해 상쇄하니 소음 전달이 차단되는 효과를 낸다. 추가로 생각하면 엔진 소음이 전혀 없는 전기차의 노면 소음 제거 또한 가능해 친환경차에선 정숙성 체감 효과가 훨씬 커지게 된다. 그래서 일부에선 소리가 전혀 없는 이동 수단의 시대를 예언하기도 한다. 소리를 막으려는 인간 의지의 한계가 없어서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