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서울 명동 상점가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관광객들이 30일 마스크를 쓴 채 명동 거리를 지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우한 폐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서울 명동 상점가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관광객들이 30일 마스크를 쓴 채 명동 거리를 지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30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에 있는 드래곤힐스파. 한국식 찜질방 문화를 체험하려는 해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이자 국내 연인들의 인기 데이트 장소라는 명성은 온데간데없었다. 6층 건물 내부에서는 마스크를 쓴 직원이 찜질복을 입은 손님보다 더 자주 눈에 띄었다. 평소 150여 명으로 가득 찬다는 1층 불가마 앞에 터를 잡은 사람은 12명이 전부였다. 매점 직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발생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은 물론 한국 손님의 발길도 뚝 끊겼다”고 했다.

‘우한 폐렴 포비아(공포증)’로 국내 내수시장이 빠른 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중국에 이어 국내에서도 우한 폐렴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곳은 서울 명동 등 중국인이 많이 찾는 장소다. 이날 오후 2시 명동은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지나갈 정도로 한산했다. 곰탕 맛집으로 잘 알려진 하동관 명동 본점의 긴 대기 줄도 사라졌다.

잠실 롯데월드 등 주요 테마파크 입장객은 작년 이맘때에 비해 20% 이상 빠졌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묵는 서울 강남과 명동 호텔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려던 내국인의 예약 취소 문의가 잇따랐다. 키즈카페 등 어린이가 주고객인 업종은 설 연휴 이후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 2년여간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로제, 경기 둔화 등 ‘3중고’에 신음해온 자영업자들은 예상치 못한 우한 폐렴이 더해지자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직후인 2015년 6월 중순 외식업체 매출은 메르스 확산 전인 그해 5월 말에 비해 평균 38.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사 좀 될까 싶더니"…우한 악재 덮친 자영업자들 또 '비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가 커지며 내수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제주 면세점의 설 연휴 매출은 연휴 직전보다 60% 급감했고, 중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호텔들의 예약 취소율은 올라갔다.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침체 등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이번 사태로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우한 쇼크'에 소비가 얼어붙었다
자영업자 “엎친 데 덮친 격”

30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발마사지숍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프랜차이즈 업체인 이곳은 평소엔 오전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예약이 꽉 찰 때가 많았다. 업체 관계자는 “마사지사가 대부분 중국 동포여서 그런지 손님이 오지 않는 것 같다”며 “명절 직후에는 면세점 쇼핑을 마친 따이궁(중국인 보따리상)이 대거 방문하는데 오늘은 두 건의 예약을 제외하고 모두 취소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시청 인근의 한 도넛 가게에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점장 배모씨는 “덕수궁 무료개방 이벤트가 있어서 명절 연휴 매출이 평소보다 늘어나야 정상인데 이번 설 연휴 매출은 평일 수준에 그쳤다”며 “외국인 방문객 수보다 내국인 방문객 수가 더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명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한 것도 심각한데 내국인도 밖에 돌아다니려 하질 않는다”며 “설 명절 이후 신년 모임을 하려던 사람들이 이번주에 잇따라 저녁예약을 취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감염병이 돌면 자영업자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지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2015년 자영업자 수는 전년 대비 9만8000명 줄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25만6000명)과 2010년(-10만7000명) 이후 감소폭이 가장 컸다. 201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0.8%) 후 가장 낮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다는 것은 소비가 위축됐다는 의미다.

면세점, 호텔도 비상

대형 유통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롯데면세점 제주점은 지난 26~29일 매출이 설 연휴 시작 전인 20~23일과 비교해 6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 시내 면세점들의 매출도 약 20%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면세점업계는 사드 사태 이후 살아나던 매출이 다시 줄어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전체 면세점 매출은 24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대형 마트도 이번 사태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요즘에는 평일에 손님이 별로 없어 이번 주말이 돼야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 알 수 있다”며 “2015년 메르스 사태 때에는 매출이 10% 이상 줄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들은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롯데호텔 잠실점은 지난 설 연휴 나흘간 50실이 예약 취소됐다. 이 호텔 관계자는 “과거에는 4~5실이 취소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더플라자호텔 등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계열 호텔들은 다음달 8일까지 중국인이 숙박을 취소해도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내수 타격 불가피”

전문가들은 내수시장이 메르스 사태 때와 비슷한 규모의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으로선 국내총생산(GDP)을 0.2%포인트 끌어내린 메르스 사태 때만큼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성장률이 하락하면 무역과 수출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감염병 특성상 방역을 하려면 소비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투자까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상헌/김순신/배태웅/이태훈/성수영/김보라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