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출발한 농민수당…어느새 '전국구 현금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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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수당천국
(1) 확산되는 농민수당
(1) 확산되는 농민수당
농민수당. 도시민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전라남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며 국내 전체 농가의 58%인 59만 가구에 지급된다. 금액은 가구당 연 60만원 안팎이다. 농민수당을 처음 선보인 곳은 지난해 7월 전남 해남군. 77억원의 예산을 들여 1만2857가구에 두 차례에 걸쳐 60만원 상당의 지역 상품권을 지급했다. 해남 전체 가구의 37%가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본다.
농민의 환호와 지자체장의 포퓰리즘이 맞물리면서 해남군을 벤치마킹한 농민수당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라남도는 올해부터 ‘농어민수당’을 신설해 도내 24만3000여 가구에 60만원을 지급한다. 전체 예산은 1459억원에 이른다. 충남 농어민수당(16만5000여 가구·990억원), 전북 농민공익수당(10만2000여 가구·613억원)을 비롯해 경기 충북 강원 경남 등도 비슷한 제도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농민수당은 지속되기 어렵다. 전라남도 관계자는 “지난해엔 정부에서 받은 교부금이 평년보다 많아 1000억여원의 잉여금 중 584억원을 농민수당으로 집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600만원 밭 사면 年80만원 챙겨"…재테크 수단 변질된 농민수당
“농민수당이 지급된 이후 990㎡(300평)~1320㎡(400평) 안팎의 논을 구입하려는 문의가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달 21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에서 만난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1000㎡는 농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경작 면적. 이 정도 농지만 확보하면 한 해 60만원의 농민수당에 20만원의 여성농민 지원 바우처도 받을 수 있다. 위치에 따라 농지 가격은 3.3㎡당 2만~2만5000원. 600만원을 투자하면 연 13% 이상의 수익률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국 최초로 농민수당을 도입한 해남에서는 농민수당과 관련된 여러 가지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농민들은 ‘환호’하는 분위기였지만 비농업인 중에서는 비판도 적지 않게 나왔다.
富農도 받는 농민수당
농민들은 농민수당을 대부분 생활필수품과 농업 관련 기자재 구입에 쓴다고 답했다. 문내면에서 만난 박희배 씨(57)는 “농민수당이 나오면 장터가 있는 우수영에 나가 그때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다”며 “농번기인 7월과 9월에 30만원씩 나오는 만큼 비료 등 농자재 구입이 많다”고 말했다. 농민수당을 도입한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인기도 높았다. “명 군수(명현관 해남군수)가 명(名)군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명현관 군수는 농민수당을 도입하며 임기 동안 월급을 전액 반납하겠다고 밝혀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해남읍으로 오자 상반된 이야기가 나왔다. 식당을 경영하는 박모씨는 “토질이 좋아 농업 생산성이 높은 해남에서는 한 해 수억원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농민이라는 이유로 소득세를 면제받는 부농(富農)이 적지 않다”며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농가평균소득은 4490만원이며 전체 농가의 37.7%인 고수입·흑자 농가의 평균 수입은 1억4025만원(2018년 기준)이었다.
해남읍내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만난 정모씨는 “농민 지원만 계속 늘어 부업으로 농업을 하며 각종 혜택을 받는 이들도 많다”며 “나도 상속받은 농지 중 일부를 직접 경작한다고 하고 농민수당을 받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농민수당은 농업 이외 수입이 연간 5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농업에서 아무리 많은 수익을 거두더라도 받을 수 있다. 해남군청은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지역 사정에 밝은 이장이 수당 신청을 감독하도록 했지만, 지연과 혈연으로 얽혀 있는 농촌에서 제대로 된 감독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아직
해남의 농민수당은 지역 상품권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수당이 지역 상권으로 흘러들어가게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전남 등 농민수당 도입을 확정한 대부분의 지역도 비슷한 방법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해남읍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그냥 커트만 해도 되는데 파마까지 하고 가는 어르신이 늘었다”며 “매출이 1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슈퍼마켓에서도 “대형마트 등에서는 상품권을 못 쓰도록 해 그만큼 우리 같은 작은 가게가 덕을 본다”고 했다. 반면 해남읍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농민들이 생필품만 사다보니 별다른 수혜가 없다”고 말했다. 황산면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류모씨는 “농민들의 소비 성향이 크지 않아 이전과 매출이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지역상품권이 지급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상품권 깡’도 볼 수 있었다. 한 번에 30만원이 지급되는 상품권을 20만~25만원의 현금과 바꾸는 것이다. 노인들이 타지에 있는 자식들이 고향을 방문하면 여비 등으로 줄 현금을 찾다보니 할인율이 일반적인 지역 상품권에 비해 크다는 설명이 나온다.
해남군의 재정자립도는 11.8%(2017년 기준)로 전국 군단위 재정자립도 평균 18.8%에 못 미친다. 지난해에는 해남 자체 세계잉여금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했지만, 올해 전라남도가 농민수당 지자체 예산의 40%를 지원하기로 했다. 해남군청 관계자는 “자체 예산만으로는 장기간 지급이 어려워 걱정했는데 마침 전라남도가 나서줘 다행”이라고 말했다.
해남=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농민의 환호와 지자체장의 포퓰리즘이 맞물리면서 해남군을 벤치마킹한 농민수당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라남도는 올해부터 ‘농어민수당’을 신설해 도내 24만3000여 가구에 60만원을 지급한다. 전체 예산은 1459억원에 이른다. 충남 농어민수당(16만5000여 가구·990억원), 전북 농민공익수당(10만2000여 가구·613억원)을 비롯해 경기 충북 강원 경남 등도 비슷한 제도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농민수당은 지속되기 어렵다. 전라남도 관계자는 “지난해엔 정부에서 받은 교부금이 평년보다 많아 1000억여원의 잉여금 중 584억원을 농민수당으로 집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600만원 밭 사면 年80만원 챙겨"…재테크 수단 변질된 농민수당
“농민수당이 지급된 이후 990㎡(300평)~1320㎡(400평) 안팎의 논을 구입하려는 문의가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달 21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에서 만난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1000㎡는 농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경작 면적. 이 정도 농지만 확보하면 한 해 60만원의 농민수당에 20만원의 여성농민 지원 바우처도 받을 수 있다. 위치에 따라 농지 가격은 3.3㎡당 2만~2만5000원. 600만원을 투자하면 연 13% 이상의 수익률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국 최초로 농민수당을 도입한 해남에서는 농민수당과 관련된 여러 가지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농민들은 ‘환호’하는 분위기였지만 비농업인 중에서는 비판도 적지 않게 나왔다.
富農도 받는 농민수당
농민들은 농민수당을 대부분 생활필수품과 농업 관련 기자재 구입에 쓴다고 답했다. 문내면에서 만난 박희배 씨(57)는 “농민수당이 나오면 장터가 있는 우수영에 나가 그때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다”며 “농번기인 7월과 9월에 30만원씩 나오는 만큼 비료 등 농자재 구입이 많다”고 말했다. 농민수당을 도입한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인기도 높았다. “명 군수(명현관 해남군수)가 명(名)군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명현관 군수는 농민수당을 도입하며 임기 동안 월급을 전액 반납하겠다고 밝혀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해남읍으로 오자 상반된 이야기가 나왔다. 식당을 경영하는 박모씨는 “토질이 좋아 농업 생산성이 높은 해남에서는 한 해 수억원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농민이라는 이유로 소득세를 면제받는 부농(富農)이 적지 않다”며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농가평균소득은 4490만원이며 전체 농가의 37.7%인 고수입·흑자 농가의 평균 수입은 1억4025만원(2018년 기준)이었다.
해남읍내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만난 정모씨는 “농민 지원만 계속 늘어 부업으로 농업을 하며 각종 혜택을 받는 이들도 많다”며 “나도 상속받은 농지 중 일부를 직접 경작한다고 하고 농민수당을 받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농민수당은 농업 이외 수입이 연간 5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농업에서 아무리 많은 수익을 거두더라도 받을 수 있다. 해남군청은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지역 사정에 밝은 이장이 수당 신청을 감독하도록 했지만, 지연과 혈연으로 얽혀 있는 농촌에서 제대로 된 감독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아직
해남의 농민수당은 지역 상품권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수당이 지역 상권으로 흘러들어가게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전남 등 농민수당 도입을 확정한 대부분의 지역도 비슷한 방법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해남읍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그냥 커트만 해도 되는데 파마까지 하고 가는 어르신이 늘었다”며 “매출이 1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슈퍼마켓에서도 “대형마트 등에서는 상품권을 못 쓰도록 해 그만큼 우리 같은 작은 가게가 덕을 본다”고 했다. 반면 해남읍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농민들이 생필품만 사다보니 별다른 수혜가 없다”고 말했다. 황산면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류모씨는 “농민들의 소비 성향이 크지 않아 이전과 매출이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지역상품권이 지급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상품권 깡’도 볼 수 있었다. 한 번에 30만원이 지급되는 상품권을 20만~25만원의 현금과 바꾸는 것이다. 노인들이 타지에 있는 자식들이 고향을 방문하면 여비 등으로 줄 현금을 찾다보니 할인율이 일반적인 지역 상품권에 비해 크다는 설명이 나온다.
해남군의 재정자립도는 11.8%(2017년 기준)로 전국 군단위 재정자립도 평균 18.8%에 못 미친다. 지난해에는 해남 자체 세계잉여금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했지만, 올해 전라남도가 농민수당 지자체 예산의 40%를 지원하기로 했다. 해남군청 관계자는 “자체 예산만으로는 장기간 지급이 어려워 걱정했는데 마침 전라남도가 나서줘 다행”이라고 말했다.
해남=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