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는 이게 똑같은 왕뚜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 ‘기생충’의 아들 기우와 닮은 청년이 고액 과외를 하기 위해 부잣집을 찾아간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영화 속에서처럼 위조된 명문대 재학증명서가 아닌, 팔도의 ‘더왕뚜껑’ 라면. 영화를 패러디한 팔도 제품 광고의 첫 장면이다. 이 광고는 지난 10일 밤 한 케이블TV의 아카데미 시상식 재방송 내내 중간중간에 배치됐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자 팔도가 광고를 집중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활용한 광고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영화 속 장면과 대사를 패러디해 다양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명장면·명대사로 상품 알려

식품기업 팔도의 광고 첫 장면은 영화에서 아들 기우가 “아버지,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따왔다. 영화에서 그가 위조된 학력 서류를 들고 아버지 기택(송강호 분)에게 한 대사를 각색한 것. 그가 박 사장네 집에 들어가 다송의 자화상을 지켜보는 장면에선 자화상 대신 다송이 그린 더왕뚜껑 그림을 벽에 걸어놓았다.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TV 등에서 송출됐던 광고다. 팔도 관계자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이달 초부터 케이블 채널 등에 다시 내보내기 시작했다”며 “신제품이 기존 ‘왕뚜껑’ 제품을 베낀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해당 장면과 대사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도 지난해 한발 앞서 ‘기생충’ 패러디 광고를 내놨다. 반지하방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찾는 기택이네 모습을 패러디해 인터넷 상품을, 인디언 분장을 하고 집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다송의 모습에서는 주택 보안 서비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연출했다. “T월드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광고 문구도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에서 따왔다. 지난해 11월 말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현재 조회 수 290만 건을 넘겼다.

불붙는 패러디 마케팅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기생충’ 패러디 마케팅에 불이 붙었다. 농심은 지난 7일부터 ‘기생충’ 상영을 시작한 영국에서 짜파게티 및 너구리 라면 로고 일부와 캐릭터의 눈을 가린 홍보물을 배포했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는 영화에서 부잣집 사모님으로 나온 조여정이 즐겨먹는 ‘짜파구리’의 주요 재료다. 농심은 제품을 알리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검은 테이프를 붙인 듯 두 눈을 가린 영화 포스터 장면을 가져왔다. CJ헬스케어의 헛개수도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내일 아침까지 술을 마시겠다”는 봉 감독의 수상 소감에 착안했다.

이마트는 ‘기생충’에서 실제 푸드 스타일링 보조원으로 일한 로사를 초빙해 짜파구리 요리 장면을 연출해 공개했다. 아카데미상 수상을 기념해 댓글을 남기면 추첨을 통해 상품권을 주는 마케팅이다. 서울시도 나섰다. 트위터 계정에 영화의 주요 촬영지를 소개했다. 마포구의 ‘돼지쌀슈퍼’, 종로구의 ‘자하문 터널 계단’ 등이다.

희귀템 된 굿즈

봉 감독 및 ‘기생충’과 관련된 독특한 상품들도 쏟아지고 있다. ‘기생충’의 미국 배급사 네온은 방탄소년단(BTS) 공식 로고와 이니셜을 모방한 ‘BJH(봉준호)’ 티셔츠를 굿즈로 내놨다. 열리는 문을 상징하는 BTS의 공식 로고는 영화 필름으로, BTS는 BJH로 바꿔 인쇄했다.

수석, 인디언 탈 등 영화 속 아이템으로 디자인한 배지, ‘기생충’ 로고가 찍힌 소주잔 등 영화사가 발매한 굿즈는 사기 힘든 ‘희귀템’이 됐다. e커머스에선 봉 감독이 거머쥔 오스카 트로피를 돌잡이 상품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