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현지 영화관에서 나온 레쓰비 광고 영상. (사진 = 롯데칠성음료)
러시아 현지 영화관에서 나온 레쓰비 광고 영상. (사진 = 롯데칠성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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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성이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남성이 "너무 춥지?"라고 묻자, 여성은 "물론 몸이 다 얼었어"라고 답한다. 남성은 그녀에게 레쓰비 캔 두 개를 건넨다. 여성은 추위로 빨개진 볼에 레쓰비 캔을 가져다대며 "너무 뜨겁다"라고 말한다. 남성은 "카푸치노 커피야"라고 말한다. 둘을 뒤로 하고 '커피 레쓰비는 항상 함께 간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러시아 영화관에 나왔던 레쓰비 광고의 한 장면이다. '항상 가는 길엔 레쓰비와 함께'라는 슬로건은 2009년부터 롯데칠성음료가 내 걸고 있는 문구다. 올해로 러시아 진출 15년째인 레쓰비는 현지 RTD(ready to drink) 시장 점유율 90%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 진출 이후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난해 러시아에선 108만 상자를 판매했는데, 캔 수량으로 따지면 3240만 캔에 달한다. 레쓰비는 해외 30여개국으로 나가고 있지만, 전체 해외 매출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지난 5일 롯데칠성음료의 음료글로벌영업팀 글로벌영업2담당에 있는 송현창 매니저·오기병 책임·김재복 사원과 만나 러시아 수출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 때 러시아에서 판매 중인 레쓰비도 보여줬다. 러시아에서 판매 중인 레쓰비는 어쩐지 조금 낯설었다. 일단 용량부터 달랐다. 240ml로 우리나라(175ml)보다 많다. 또 레쓰비도 카푸치노 초코라떼 등으로 총 14가지 종류가 있다.

송현창 매니저는 "러시아 수출 초기엔 175ml를 선보였는데 현지에선 '몇 모금 안 되네'라며 너무 적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240ml를 내놓았고, 2016년엔 175ml 용량을 완전히 없앴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음료 글로벌영업팀이 러시아에서 판매하는 레쓰비를 선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복 사원 송현창 매니저  오기병 책임.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롯데칠성음료 글로벌영업팀이 러시아에서 판매하는 레쓰비를 선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복 사원 송현창 매니저 오기병 책임.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 인스턴트 마시던 러시아에 뜨거운 캔커피

레쓰비가 러시아에서 캔커피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레쓰비가 러시아에 수출을 전개할 당시만 하더라도 러시아는 동결 건조한 커피를 설탕 프림과 함께 타 먹는 인스턴트 커피를 즐겼다.

김재복 사원은 "처음 러시아에선 마일드 제품으로 선보였지만, 마일드 자체가 커피라는 인식이 부족해서 초기 정착에 힘들었다"며 "레쓰비 마일드를 라떼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커피인데 왜 파란색 캔에 담겼냐는 반응도 나와 디자인도 커피와 유사한 라떼 색상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용량도 현지인을 고려해 맞게 키웠다. 차가운 캔커피가 낯설던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엔 온장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러시아에선 얼음을 넣은 아이스커피나 커피를 차게 마신다는 개념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롯데칠성음료는 2007년부터 온장고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롯데칠성음료가 제공한 온장고 3만대가 러시아 전역에 설치돼 있다.

송현창 매니저는 "2008~2009년 러시아에서 다른 RTD커피 업체들은 철수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온장고를 지원했다"며 "온장고 비용을 10만원으로 따지면 총 30억원 가량 사용했다"며 "지금은 러시아 버스 정류장 마다 있는 키오스크 가판점에 우리가 제공한 온장고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온장고를 지원하면서 현지 판매량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9년 러시아에서 레쓰비를 19만상자를 판매하면서 2007년(8만상자)판매량보다 2배 이상 뛰었다. 롯데칠성음료는 200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현지 사무소를 열면서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러시아 현지에서 한 소비자가 레쓰비를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레쓰비의 주요 소비층은 20~40대다. (사진 = 롯데칠성음료)
러시아 현지에서 한 소비자가 레쓰비를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레쓰비의 주요 소비층은 20~40대다. (사진 = 롯데칠성음료)
◆ 단 맛 즐기는 러시아…아침식사 필수품

또 러시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커피를 선보였다는 점도 시장 확대에 주효했다. 송 매니저는 "러시아 현지 사무실은 고객과 상담할 때 초콜렛과 캔디를 항상 둘 정도로, 단 맛을 좋아하는 편"이라며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 때도 설탕은 두 스푼 넣을 정도로 단 맛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카푸치노다. 마일드 아라비카, 아메리카노 순으로 판매량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에선 초기 마일드 제품 1개 뿐이었지만 초코라떼 카푸치노 등 14개까지 확대했다. 2014년부터는 연말 패키지도 선보이고 있다.

김재복 사원은 "카푸치노는 마일드 레쓰비를 기반으로 카카오분말, 유제품 등을 넣어 부드럽게 개발한 제품으로, 전체 레쓰비에서 판매 비중은 30%에 달한다"며 "한국의 카페타임도 그대로 러시아에 선보이고 있고, 지난해엔 쏠트커피도 새롭게 출시했다"고 밝혔다.

레쓰비는 이제 러시아 사람들의 아침 식사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빵과 따뜻한 온장고에서 꺼낸 레쓰비로 아침을 대신하는게 일상화하고 있다고 했다. 택시기사나 화물차 운송기사들은 레쓰비를 박스째 사놓고, 차에 상온으로 두고 마시기도 한다. 김재복 사원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선 직접 차를 운전해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며 "빵이랑 레쓰비를 같이 먹으면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거리를 걷다보면 레쓰비 캔이 많이 꽂혀있는 차를 많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레쓰비는 옥외 광고를 비롯해 2015년부터 현지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 = 롯데칠성음료)
러시아에서 레쓰비는 옥외 광고를 비롯해 2015년부터 현지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 = 롯데칠성음료)
◆ 레쓰비 인기에 짝퉁도…우크라이나 사태로 판매량 '뚝'

이처럼 러시아의 캔커피 시장을 잡고 있던 레쓰비에게도 시련은 닥쳤다. 레쓰비의 인기로 러시아 현지에선 짝퉁 제품도 나오기도 했다.

김 사원은 "레쓰비의 카푸치노 제품이 인기가 높다보니 디자인까지 똑같이 해서 베낀 제품도 나왔다"며 "하지만 러시아 소비자들은 캔 패키지가 조금만 바뀌어도 짝퉁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잘 구분해서 저희 제품을 많이 찾았다"고 설명했다.

또 현지 사정으로 판매량이 위축됐을 때도 있었다. 2010년 롯데칠성음료는 모스크바 골목에 있는 키오스크마다 온장고를 두고 레쓰비를 다 깔았다. 러시아는 편의점보다 가판점이나 구멍 가게가 주요 소매시장을 이루고 있다.

송 매니저는 "당시 모스크바 시장이 바뀌면서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노상 가판대를 다 철거하는 일도 있었고, 당시 판매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송 매니저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러시아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경제 위기도 레쓰비 판매량을 휘청이게 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현지 경기가 악화하자 레쓰비의 판매량도 줄기 시작했다. 2013년 102만 상자로 판매 최고치를 찍었지만, 2015년(89만 상자)에 이어 2016년(79만 상자), 2017년(70만 상자)까지 판매량이 감소했다.
러시아 현지 소매점에서 레쓰비가 판매되고 있는 모습. 과거 1대였던 온장고는 3대까지 늘어났다. (사진 = 롯데칠성음료)
러시아 현지 소매점에서 레쓰비가 판매되고 있는 모습. 과거 1대였던 온장고는 3대까지 늘어났다. (사진 = 롯데칠성음료)
◆ 러시아 현지 시장 점유율 90%…온장고 장벽

하지만 대내외적인 환경이 개선되자 레쓰비의 판매량은 다시 회복하고 있다. 2018년 93만상자로 판매량을 회복한 데 이어 지난해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시장 초기 높은 가격대로 설정해 대외 환경 악화에도 시장을 방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지 레쓰비의 가격은 50~55루블(1000원)정도로 코카콜라 330ml 기준(800원)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레쓰비는 현지 캔커피 시장 점유율 90%(지난해 유로모니터 기준)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파란 커피 주세요"라고 할 정도로 러시아에선 '캔 커피는 레쓰비'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90% 이상 레쓰비 커피를 찾을 수 있다. 오기병 책임은 "레쓰비가 러시아에서 판매된 지 15년이 되다 보니 현재 40~50대 분들은 초기 레쓰비를 많이 구매했던 분들"이라며 "시장 초기와 달리 현지에 다른 캔커피도 많아졌지만, 특히 극동지방에선 캔 커피는 레쓰비라는 게 확고해졌다"고 강조했다.

송 매니저는 "일본산 커피인 BOSS(보스) 아사히음료 다이도도링코와 같은 제품들이 러시아로 넘어 오긴 하지만, 레쓰비의 경쟁상대가 되진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러시아엔 한 칸에 18개씩 진열할 수 있는 온장고(3칸) 1대 정도였지만, 9칸까지 넣을 수 있는 온장고가 3대까지 늘어났다. 송 매니저는 "새벽에 레쓰비를 진열해놔도 출근길에 사람들이 가져가는 바람에 금방 사라져 현지 소매점들은 온장고를 계속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롯데칠성음료 글로벌영업팀이 러시아에서 레쓰비 판매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복 사원 송현창 매니저  오기병 책임.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롯데칠성음료 글로벌영업팀이 러시아에서 레쓰비 판매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복 사원 송현창 매니저 오기병 책임.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 시그니처 레쓰비로 원두 '대항'…동유럽 확대

최근 변화하는 러시아 커피 시장에 레쓰비도 대응하고 있다. 극동 지방에서도 카페 문화가 확산되고, 점차 원두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롯데칠성음료는 2017년 러시아에 레쓰비 시그니처를 내놓았다. 알미늄 용기에 담아 휴대성을 높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레쓰비 믹스커피도 선보였다. 오기병 책임은 "2014년 믹스커피 제품을 선보인 뒤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와 달리 소매점에서 1개씩 플라스틱 컵과 함께 팔며, 가격은 25~30루블(500~600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레쓰비를 통해 롯데라는 브랜드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송 매니저는 "러시아 현지를 통해 롯데를 모르면 말 그대로 '간첩'일 정도로 잘 알려졌다"며 "레쓰비를 비롯해 밀키스도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롯데칠성음료는 레쓰비 수출처를 동유럽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송현창 매니저는 "러시아에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년부터 슬로베니아 라트비아와 같은 동유럽 지역을 개척해 실적을 높이고 있다"며 "러시아보다 RTD 음료가 많은 만큼,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