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비밀…정부·삼성 '마스크 007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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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품귀시대
해외서 5300만장 생산 가능한 원료 확보 성공
정부가 기획·삼성이 실행
해외서 5300만장 생산 가능한 원료 확보 성공
정부가 기획·삼성이 실행
“아무도 모르게 진행해야 합니다.”
지난달 중순 삼성전자의 한 해외법인장은 이런 요청을 받았다. 비밀리에 마스크 생산 원료를 구해달라는 얘기였다. 이런 연락을 해온 곳은 다름 아닌 산업통상자원부. 처음엔 정부 대신 삼성이 마스크 원료를 사달라는 요청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해당 국가에서 소문이 나면 마스크 원료를 선뜻 내주지 않을 것 같아 삼성전자에 협조를 요청하게 됐다”는 설명도 전해 들었다.
삼성전자가 나서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물산도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MB: melt-blown)를 해외에서 구입해 원가 그대로 정부에 넘겼다. 지난 23일 1차 물량인 2.5t이 국내에 들어왔다. 이 물량을 포함해 오는 6월까지 총 53t이 수입된다. 최대 5300만 장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원료가 정부와 삼성의 협업을 통해 조달된 셈이다.
반년 걸릴 원료 수입 한 달 만에 해결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KOTRA였다. 전 세계 해외사무소를 통해 부직포 생산업체를 샅샅이 뒤졌다. 1차 조사를 통해 33개국의 113개 업체를 찾았다. 비밀리에 업체들을 방문해 9개국 28종의 부직포를 확보했다. 이 가운데 한국 마스크 규격(KF)에 맞는 3개 업체와 최종적인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공적 마스크용 원료인 만큼 정부가 구입 계약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문제였다. 정부가 직접 해외 업체와 계약하면 구매와 통관 등의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고심 끝에 삼성에 ‘SOS’를 보내기로 했다. 삼성의 넓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빨리 계약을 끝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은 정부가 기대한 대로 은밀하고 재빠르게 계약을 마쳤다. 원료 수출국 정부는 눈치채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계약한 물량을 바로 수입해 조달청에 모두 넘겼다. 조달청 역시 평균 40일 정도 걸리던 계약 기간을 5일로 단축했다. 모든 과정은 산업부가 조율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워낙 시급한 문제라 삼성의 힘을 빌렸다”며 “통상 마스크 원료 계약부터 수입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데 이번엔 한 달 이내로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마스크뿐만 아니라 마스크 원료도 수출을 금지하는 나라가 적지 않아 원료 수출국을 공개하지 않는 등 보안을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이미 구매한 53t 외에 추가로 마스크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삼성과의 협업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삼성, 마스크 제조기업 생산량 증대 지원
삼성은 부족한 마스크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뿐 아니라 중소기업과도 손잡았다. 중소기업의 생산성 강화 방안을 컨설팅해주는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마스크 제조사들을 돕고 있다.
삼성은 지난 3일 마스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제조 전문가를 파견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 추천받은 E&W와 에버그린, 레스텍 등 세 곳이 대상이었다. 이들 중소기업이 기존 생산 설비로 생산량을 최대한 늘릴 수 있도록 제조공정을 개선하고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신규 설비를 들여왔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던 곳엔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장비를 설치해줬다.
삼성은 마스크 생산에 필요한 금형을 직접 제작해 중소기업에 제공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삼성전자 정밀금형개발센터에서 7일 만에 금형 작업을 끝냈다. 해외에 금형을 발주하면 공급까지 최소 한 달가량 걸린다.
삼성은 지난달 마스크 생산업체인 화진산업도 지원했다. 삼성의 컨설팅을 받은 뒤 화진산업의 마스크 생산량은 하루 4만 장에서 10만 장으로 늘어났다.
삼성은 마스크 기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해외법인을 통해 확보한 마스크 28만 장과 거래처에서 기증받은 5만 장을 대구·경북 지역에 기부했다. 삼성 관계자는 “마스크는 그동안 한 번도 거래해본 적이 없는 품목이지만 계열사 해외법인들이 현지 유통업체를 찾아다니며 28만 장을 구입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조재길 기자 surisuri@hankyung.com
지난달 중순 삼성전자의 한 해외법인장은 이런 요청을 받았다. 비밀리에 마스크 생산 원료를 구해달라는 얘기였다. 이런 연락을 해온 곳은 다름 아닌 산업통상자원부. 처음엔 정부 대신 삼성이 마스크 원료를 사달라는 요청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해당 국가에서 소문이 나면 마스크 원료를 선뜻 내주지 않을 것 같아 삼성전자에 협조를 요청하게 됐다”는 설명도 전해 들었다.
삼성전자가 나서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물산도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MB: melt-blown)를 해외에서 구입해 원가 그대로 정부에 넘겼다. 지난 23일 1차 물량인 2.5t이 국내에 들어왔다. 이 물량을 포함해 오는 6월까지 총 53t이 수입된다. 최대 5300만 장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원료가 정부와 삼성의 협업을 통해 조달된 셈이다.
반년 걸릴 원료 수입 한 달 만에 해결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KOTRA였다. 전 세계 해외사무소를 통해 부직포 생산업체를 샅샅이 뒤졌다. 1차 조사를 통해 33개국의 113개 업체를 찾았다. 비밀리에 업체들을 방문해 9개국 28종의 부직포를 확보했다. 이 가운데 한국 마스크 규격(KF)에 맞는 3개 업체와 최종적인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공적 마스크용 원료인 만큼 정부가 구입 계약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문제였다. 정부가 직접 해외 업체와 계약하면 구매와 통관 등의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고심 끝에 삼성에 ‘SOS’를 보내기로 했다. 삼성의 넓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빨리 계약을 끝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은 정부가 기대한 대로 은밀하고 재빠르게 계약을 마쳤다. 원료 수출국 정부는 눈치채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계약한 물량을 바로 수입해 조달청에 모두 넘겼다. 조달청 역시 평균 40일 정도 걸리던 계약 기간을 5일로 단축했다. 모든 과정은 산업부가 조율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워낙 시급한 문제라 삼성의 힘을 빌렸다”며 “통상 마스크 원료 계약부터 수입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데 이번엔 한 달 이내로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마스크뿐만 아니라 마스크 원료도 수출을 금지하는 나라가 적지 않아 원료 수출국을 공개하지 않는 등 보안을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이미 구매한 53t 외에 추가로 마스크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삼성과의 협업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삼성, 마스크 제조기업 생산량 증대 지원
삼성은 부족한 마스크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뿐 아니라 중소기업과도 손잡았다. 중소기업의 생산성 강화 방안을 컨설팅해주는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마스크 제조사들을 돕고 있다.
삼성은 지난 3일 마스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제조 전문가를 파견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 추천받은 E&W와 에버그린, 레스텍 등 세 곳이 대상이었다. 이들 중소기업이 기존 생산 설비로 생산량을 최대한 늘릴 수 있도록 제조공정을 개선하고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신규 설비를 들여왔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던 곳엔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장비를 설치해줬다.
삼성은 마스크 생산에 필요한 금형을 직접 제작해 중소기업에 제공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삼성전자 정밀금형개발센터에서 7일 만에 금형 작업을 끝냈다. 해외에 금형을 발주하면 공급까지 최소 한 달가량 걸린다.
삼성은 지난달 마스크 생산업체인 화진산업도 지원했다. 삼성의 컨설팅을 받은 뒤 화진산업의 마스크 생산량은 하루 4만 장에서 10만 장으로 늘어났다.
삼성은 마스크 기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해외법인을 통해 확보한 마스크 28만 장과 거래처에서 기증받은 5만 장을 대구·경북 지역에 기부했다. 삼성 관계자는 “마스크는 그동안 한 번도 거래해본 적이 없는 품목이지만 계열사 해외법인들이 현지 유통업체를 찾아다니며 28만 장을 구입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조재길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