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기업마저 돈가뭄…은행 대출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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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은행 3월 대출규모 71兆
한달새 8兆 늘어 '역대 최대'
한달새 8兆 늘어 '역대 최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상경영자금을 미리 확보해 놓으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4월 위기설’이 나올 정도로 경제계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는 분석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3월 대기업 대출 규모는 전월 대비 7조9780억원 증가한 71조3388억원을 기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전월 대비 증가폭으로도 역대 최대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기업 대출은 늘어봐야 기껏 1조원 수준이었다”며 “한 달 만에 8조원가량 증가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2~3년간 은행의 대기업 대출 증가세는 주춤했다. 작년엔 대기업 대출이 전월 대비 감소한 경우가 더 많았다.
대기업 대출이 늘어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일단 현금을 확보해놓자’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은행권도 자금운용 비상…"우리도 풀 수 있는 돈 간당간당"
은행 LCR 규제 비율 100%에 거의 근접…대출 여력 크지않아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기업은 통상 회사채를 발행해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은행 대출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상당수 대기업이 은행에 손을 벌릴 정도로 유동성 위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대기업 곳곳에서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대기업 대출이 급증하면서 은행의 자금 운용에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잦아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리스크만 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이 많아질수록 부실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빌려줄 재원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주요 은행들이 “이대로 가면 대출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은행연합회를 통해 원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완화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한 이유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의 원화 LCR은 3월 말 102~105%를 기록했다. 금융당국이 각 은행에 제시한 원화 LCR 규제 비율(100%)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대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은행의 건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규제 비율보다 떨어지는 은행은 금융감독원에 위반사항을 공시하고 개선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금융위도 LCR 규제 완화에 긍정적이다. 비상상황인 만큼 은행이 경제위기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도록 규제 비율에 여유를 두려는 분위기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은행에 대한 원화 LCR 규제를 완화했다.
대기업이 은행 대출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만큼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지난 30일엔 신용등급 ‘AA’인 호텔롯데의 1300억원 규모 회사채가 평균 연 2.1% 금리에 거래됐다. 전날 민간 채권 평가회사가 산정한 적정 시장금리보다 0.058%포인트 높다. 돈 떼일 위험이 없는 우량 채권마저 가격을 낮춰야 겨우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신용등급 ‘AAA’인 신한금융지주도 3월 24일 9개월짜리 CP를 연 3.01%에 발행했다. 기업의 직접 자금조달 창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대기업 대다수는 은행 대출로 확보한 현금을 증권사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들어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기업들이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회사채 6조5000억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1991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4월 기준으로 가장 많은 물량이다.
은행 대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장 대출은 해주지만 제대로 회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경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지면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 원화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현금, 국공채 등 현금성 자산 보유액을 순현금유출액으로 나눈 값. 원화 LCR의 최저 규제 비율은 100%다. LCR이 높으면 현금화할 자산이 많아 위기 시 은행의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3월 대기업 대출 규모는 전월 대비 7조9780억원 증가한 71조3388억원을 기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전월 대비 증가폭으로도 역대 최대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기업 대출은 늘어봐야 기껏 1조원 수준이었다”며 “한 달 만에 8조원가량 증가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2~3년간 은행의 대기업 대출 증가세는 주춤했다. 작년엔 대기업 대출이 전월 대비 감소한 경우가 더 많았다.
대기업 대출이 늘어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일단 현금을 확보해놓자’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은행권도 자금운용 비상…"우리도 풀 수 있는 돈 간당간당"
은행 LCR 규제 비율 100%에 거의 근접…대출 여력 크지않아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기업은 통상 회사채를 발행해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은행 대출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상당수 대기업이 은행에 손을 벌릴 정도로 유동성 위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대기업 곳곳에서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대기업 대출이 급증하면서 은행의 자금 운용에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잦아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리스크만 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이 많아질수록 부실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빌려줄 재원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주요 은행들이 “이대로 가면 대출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은행연합회를 통해 원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완화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한 이유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의 원화 LCR은 3월 말 102~105%를 기록했다. 금융당국이 각 은행에 제시한 원화 LCR 규제 비율(100%)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대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은행의 건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규제 비율보다 떨어지는 은행은 금융감독원에 위반사항을 공시하고 개선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금융위도 LCR 규제 완화에 긍정적이다. 비상상황인 만큼 은행이 경제위기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도록 규제 비율에 여유를 두려는 분위기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은행에 대한 원화 LCR 규제를 완화했다.
대기업이 은행 대출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만큼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지난 30일엔 신용등급 ‘AA’인 호텔롯데의 1300억원 규모 회사채가 평균 연 2.1% 금리에 거래됐다. 전날 민간 채권 평가회사가 산정한 적정 시장금리보다 0.058%포인트 높다. 돈 떼일 위험이 없는 우량 채권마저 가격을 낮춰야 겨우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신용등급 ‘AAA’인 신한금융지주도 3월 24일 9개월짜리 CP를 연 3.01%에 발행했다. 기업의 직접 자금조달 창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대기업 대다수는 은행 대출로 확보한 현금을 증권사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들어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기업들이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회사채 6조5000억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1991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4월 기준으로 가장 많은 물량이다.
은행 대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장 대출은 해주지만 제대로 회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경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지면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 원화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현금, 국공채 등 현금성 자산 보유액을 순현금유출액으로 나눈 값. 원화 LCR의 최저 규제 비율은 100%다. LCR이 높으면 현금화할 자산이 많아 위기 시 은행의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