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숙제' 잔뜩 떠안은 産銀…재무건전성 우려에 '증자론'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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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기업 지원 집중" 한다던 産銀
코로나 사태 터지며 '물거품'
두산重·LCC·쌍용차·아시아나 …
산은에 SOS 치는 기업 느는데
지원여력은 갈수록 줄어들어
코로나 사태 터지며 '물거품'
두산重·LCC·쌍용차·아시아나 …
산은에 SOS 치는 기업 느는데
지원여력은 갈수록 줄어들어
“산업은행이 혁신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하는데 구조조정이라는 설거지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설거지에 비유하곤 했다. ‘얼른 털고 그만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는 “숙제가 거의 마무리돼 간다”고도 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아시아나항공 등 골치 아픈 현안이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산은의 벤처투자 조직을 키우고, 구조조정 업무를 넘길 자회사(KDB인베스트먼트)도 세웠다.
그랬던 산은에 달갑지 않은 설거지거리가 다시 밀려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은에 ‘SOS’를 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산은 안팎에선 부실기업 지원 폭증에 대비해 조(兆) 단위의 증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시 ‘구조조정 선봉장’ 된 산은
국책은행인 산은은 경제위기 때마다 자금난에 빠진 기업에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정부의 ‘100조원 코로나 대책’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신규 대출, 회사채 매입 등에 총 16조6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산은 측은 “당장의 재무 건전성엔 지장이 없는 규모”라고 했다. 문제는 산은의 부담이 16조6000억원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에 계열사 자금 상황 등을 추려 ‘현황 보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기간산업 지원대책을 짜고 있다. 지원 조건이 어떻든 결국 자금의 상당액을 산은이 공급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산은·수출입은행에서 1조원을 수혈(한도 대출)받은 두산중공업은 자구 계획을 내밀며 추가 지원을 간청하고 있다. 대주주(인도 마힌드라)가 투자 계획을 철회한 쌍용자동차 역시 산은에 도움을 청했다. 3000억원 지원을 약속받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돈이 더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끝난 줄 알았던 설거지도 끝난 게 아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 예정이던 HDC현대산업개발은 항공업 불황을 이유로 매각 조건 조정을 타진하고 나섰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은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미뤄지고 있다.
“부실기업 돕다 산은도 부실해질라”
산은은 정부가 지분 100%를 갖고 있어 ‘망할 걱정 없는 은행’이긴 하다. 그래도 은행으로서 재무 건전성 지표는 관리해야 한다.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05%로 2년 전(15.26%)부터 하락세다. 국내 은행 평균(15.25%)도 밑돈다. 산은의 부실채권(고정 이하 여신) 비율은 2.67%로 국내 은행 중 가장 높다. 다른 은행들은 평균 0.77%다. 산은의 회계장부에 효자 노릇을 했던 한국전력 등의 실적도 흔들리고 있다. 한전이 1000억원 적자를 내면 한전 지분 32.9%를 보유한 산은의 BIS 비율도 덩달아 0.01%포인트 떨어지는 구조다.
BIS 비율을 높이려면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위험자산)을 줄이거나 주주들이 자본금(자기자본)을 늘려주면 된다. 현재 산은의 자본금은 18조6631억원이며 산은법상 최대 30조원까지 늘릴 수 있다. 1조원을 증자하면 기업대출을 7조~8조원 늘릴 여력이 생긴다.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산은에 1조4000억원을 증자한 적이 있다. 산은 관계자는 “‘통 큰’ 증자가 이뤄져야 기업 유동성 위기를 막고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공식적으론 말을 아끼고 있다. 대규모 혈세를 추가 투입하는 데 대해 야당과 여론의 반응이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장 증자가 절실한 상태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은행이 앞장서는 방법도 있지만 2016년 ‘한국형 양적완화(은행자본확충펀드 조성) 논란’ 등의 전례를 볼 때 가능성이 희박하다. 윤창호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산은이 기업 여신을 적극적으로 공급해 BIS 비율이 하락한다면 정부는 관련 법에 따라 보전할 것”이라는 원론적 방침만 밝혔다.
축소했던 구조조정 조직 ‘원상복구’
산은은 다른 가용 수단을 먼저 동원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사회에서 올해 후순위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발행 한도를 4조원으로 정했다. 연평균 발행액(약 5000억원)의 여덟 배 규모다. 비상시 후순위채(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를 왕창 찍어내 BIS 비율을 방어할 수 있게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둔 것이다.
‘혁신기업 육성기관’으로 변신하겠다던 산은의 청사진은 미뤄지게 됐다. 산은은 ‘부문’에서 ‘본부’로 축소했던 구조조정 조직을 최근 다시 확대했다. 기업경쟁력제고지원단을 신설하고 두산그룹 전담인력 등을 대거 합류시켰다.
내부에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에 총대를 메지 않고 국책은행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불만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쌍용자동차다. 산은은 “우리는 채권자일 뿐 주주가 아니어서 지원할 명분이 없다”는 시각이다. 마힌드라와 노조가 ‘고통 분담’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가 ‘채권단 역할론’을 거론하고 나오면서 산은이 난감한 상황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쌍용차 사례와 비슷한 요구가 줄을 이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현우/박종서/이상은 기자 tardis@hankyung.com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설거지에 비유하곤 했다. ‘얼른 털고 그만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는 “숙제가 거의 마무리돼 간다”고도 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아시아나항공 등 골치 아픈 현안이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산은의 벤처투자 조직을 키우고, 구조조정 업무를 넘길 자회사(KDB인베스트먼트)도 세웠다.
그랬던 산은에 달갑지 않은 설거지거리가 다시 밀려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은에 ‘SOS’를 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산은 안팎에선 부실기업 지원 폭증에 대비해 조(兆) 단위의 증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시 ‘구조조정 선봉장’ 된 산은
국책은행인 산은은 경제위기 때마다 자금난에 빠진 기업에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정부의 ‘100조원 코로나 대책’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신규 대출, 회사채 매입 등에 총 16조6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산은 측은 “당장의 재무 건전성엔 지장이 없는 규모”라고 했다. 문제는 산은의 부담이 16조6000억원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에 계열사 자금 상황 등을 추려 ‘현황 보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기간산업 지원대책을 짜고 있다. 지원 조건이 어떻든 결국 자금의 상당액을 산은이 공급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산은·수출입은행에서 1조원을 수혈(한도 대출)받은 두산중공업은 자구 계획을 내밀며 추가 지원을 간청하고 있다. 대주주(인도 마힌드라)가 투자 계획을 철회한 쌍용자동차 역시 산은에 도움을 청했다. 3000억원 지원을 약속받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돈이 더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끝난 줄 알았던 설거지도 끝난 게 아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 예정이던 HDC현대산업개발은 항공업 불황을 이유로 매각 조건 조정을 타진하고 나섰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은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미뤄지고 있다.
“부실기업 돕다 산은도 부실해질라”
산은은 정부가 지분 100%를 갖고 있어 ‘망할 걱정 없는 은행’이긴 하다. 그래도 은행으로서 재무 건전성 지표는 관리해야 한다.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05%로 2년 전(15.26%)부터 하락세다. 국내 은행 평균(15.25%)도 밑돈다. 산은의 부실채권(고정 이하 여신) 비율은 2.67%로 국내 은행 중 가장 높다. 다른 은행들은 평균 0.77%다. 산은의 회계장부에 효자 노릇을 했던 한국전력 등의 실적도 흔들리고 있다. 한전이 1000억원 적자를 내면 한전 지분 32.9%를 보유한 산은의 BIS 비율도 덩달아 0.01%포인트 떨어지는 구조다.
BIS 비율을 높이려면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위험자산)을 줄이거나 주주들이 자본금(자기자본)을 늘려주면 된다. 현재 산은의 자본금은 18조6631억원이며 산은법상 최대 30조원까지 늘릴 수 있다. 1조원을 증자하면 기업대출을 7조~8조원 늘릴 여력이 생긴다.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산은에 1조4000억원을 증자한 적이 있다. 산은 관계자는 “‘통 큰’ 증자가 이뤄져야 기업 유동성 위기를 막고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공식적으론 말을 아끼고 있다. 대규모 혈세를 추가 투입하는 데 대해 야당과 여론의 반응이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장 증자가 절실한 상태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은행이 앞장서는 방법도 있지만 2016년 ‘한국형 양적완화(은행자본확충펀드 조성) 논란’ 등의 전례를 볼 때 가능성이 희박하다. 윤창호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산은이 기업 여신을 적극적으로 공급해 BIS 비율이 하락한다면 정부는 관련 법에 따라 보전할 것”이라는 원론적 방침만 밝혔다.
축소했던 구조조정 조직 ‘원상복구’
산은은 다른 가용 수단을 먼저 동원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사회에서 올해 후순위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발행 한도를 4조원으로 정했다. 연평균 발행액(약 5000억원)의 여덟 배 규모다. 비상시 후순위채(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를 왕창 찍어내 BIS 비율을 방어할 수 있게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둔 것이다.
‘혁신기업 육성기관’으로 변신하겠다던 산은의 청사진은 미뤄지게 됐다. 산은은 ‘부문’에서 ‘본부’로 축소했던 구조조정 조직을 최근 다시 확대했다. 기업경쟁력제고지원단을 신설하고 두산그룹 전담인력 등을 대거 합류시켰다.
내부에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에 총대를 메지 않고 국책은행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불만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쌍용자동차다. 산은은 “우리는 채권자일 뿐 주주가 아니어서 지원할 명분이 없다”는 시각이다. 마힌드라와 노조가 ‘고통 분담’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가 ‘채권단 역할론’을 거론하고 나오면서 산은이 난감한 상황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쌍용차 사례와 비슷한 요구가 줄을 이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현우/박종서/이상은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