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시에, 충분한 양, 차별없이 유동성 지원 3S원칙 지켜야"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여시재 이사장)은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충격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봤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만한 인적·물적·사회적 기반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이 같은 저력이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규제와 혁신을 가로막는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전 부총리는 이날 한국경제신문사가 연 ‘코로나 사태 이후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웹세미나(webinar)에 발표자로 나서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에서 경제가 ‘V자’로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른 시일 내 경제가 정상화되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또 서민 계층이나 비정규직 근로자 등 경제적 약자의 고통도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예상했다. 이 전 부총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고, 2004~2005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으로 카드사태 극복 및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정부가 기업에 과감하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이 전 부총리는 “위기를 극복할 때까지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금융시장 리더십”이라며 “최대한 빠르게(swift), 충분할 정도로(sufficient), 기업을 가리지 말고(symmetrical)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위기 탈출을 위한 ‘3S 대응’이다.

그는 금융 지원을 받은 기업이 아예 해고를 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자는 노동계 요구에 대해서는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금융이 사회적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하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대외적 평가가 악화되면서 위기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전 부총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큰 정부로의 이행’이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했다. 한국 정부는 디지털 기술과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덕분에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지만, 이를 계기로 몸집을 급격히 불렸다가는 시장의 효율이 급격히 저해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정부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정부의 요구도 점점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신문사 직원들이 13일 ‘코로나 사태 이후 세상’을 주제로 열린 웹세미나(webinar)가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비대면 화상 회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사 직원들이 13일 ‘코로나 사태 이후 세상’을 주제로 열린 웹세미나(webinar)가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비대면 화상 회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가 강조하는 재정 투입이 아니라 규제 혁파가 급선무라고 이 전 부총리는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한국이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이번 기회에 풀어야 한다”며 “그간 각종 규제로 우리 기업들의 대외 경쟁력이 저하되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한 혁신이 부족했다”고 했다. 그는 경제 회복 과정에서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기업 환경과 법률을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부총리는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질서 재편을 맞아 외교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중심의 ‘G2’시대에 지역별로 서플라이 체인들이 경쟁하는 ‘G0’시대가 올 수 있다”며 “여기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 경제 질서에 편입될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중 하나는 중국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것”이라며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이 다가오는 가운데 대중 관계를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할 시점이 왔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