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식 디플레이션 직면…한국은행 더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낸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사진)는 22일 “한국 경제가 1990년대의 일본식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의 상황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며 한국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완화로 대표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까지 고려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조 교수는 이날 서울 삼일대로 라이온스빌딩에서 열린 안민정책포럼 세미나에서 기조 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일본은 국민 경제의 종합적인 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가 1990~2000년 연평균 -1%대를 기록했다. 조 교수는 “한국은 GDP 디플레이터가 지난해 4분기까지 다섯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 일본의 디플레이션 경로를 답습하고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한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경제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물론 재정건전성도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교수는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지면 저물가·저성장 여파로 명목 GDP가 쪼그라들고 정부가 거둬들이는 국세 수입도 감소한다”며 “국가채무비율(국가채무를 명목 GDP로 나눈 값) 등 국가재정 지표도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재정 씀씀이는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쉽지 않은 반면 완화적 통화정책은 긴축적 기조로 바꿀 여지가 적지 않다”며 “통화당국이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은이 자본 유출 등 부작용 우려를 접고 기준금리를 제로(0) 또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실효 하한 금리(유동성 함정이나 자본 유출 등 부작용을 고려한 기준금리의 하한선)라는 개념이 불분명하다”며 “외국인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지는 트리거(방아쇠)가 되는 수준의 금리는 없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