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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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안정적인 메모리 반도체 납품’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이 향후 ‘국가안보’를 내세워 메모리 반도체 조달길마저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 업체를 대상으로 미국 요구에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분석된다. 미·중 간 ‘반도체 신냉전’이 격화할수록 한국 기업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법인 관계자들을 불러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지난해 두 회사의 5대 매출처에 포함된 ‘큰손’이다. 화웨이가 구매하는 한국 업체의 D램·낸드플래시 반도체 규모는 연 1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이 오는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대(對)화웨이 반도체 수출 규제’의 대상은 아니다. 미 상무부는 ‘미국의 장비나 기술을 이용,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 화웨이에 공급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수출면허를 받도록 했다. 1차적으로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TSMC를 겨냥한 것이다.

그럼에도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부른 것은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동시에 미국의 규제 확대 가능성에 대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두 회사는 세계 D램 시장의 73.4%(2019년 기준)를 장악하고 있다. 이미 화웨이에 대한 공급을 끊은 미국 마이크론(점유율 20.8%)에 이어 한국 업체까지 제재에 동참하면 화웨이는 사실상 폐업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미국 제재 이후 메모리 재고를 빠른 속도로 늘리며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업체에 메모리 반도체의 차질 없는 공급을 요청한 것도 이 같은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화웨이가 삼성전자에 통신 반도체 엑시노스 공급을 요청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의 규제로 9월부터 통신칩 자체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자 삼성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화웨이 관련 사항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