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생태계 이젠 끝장"…폐업 준비하는 부품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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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책 3년…중소업체 매출·인력 반토막
날벼락 같았던 '탈원전 선언'
대기업 두산중공업 흔들리자
부품업체 신규계약 60% 급감
설비에 거액투자, 회수도 못해
날벼락 같았던 '탈원전 선언'
대기업 두산중공업 흔들리자
부품업체 신규계약 60% 급감
설비에 거액투자, 회수도 못해
“희망이 안 보입니다. 올해 생산 물량을 마지막으로 사업을 접으려 합니다.”
경남의 한 산업단지에서 원자력 발전 부품 임가공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올해 폐업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말 국내 마지막 원전 개발 프로젝트인 신고리 5·6호기 납품을 끝으로 일감이 완전히 끊길 것으로 예상돼서다. 이 회사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원전 부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설비투자자금 100억원을 마련해 최신식 대형 금속 가공설비를 도입한 뒤 신고리, 신한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등 국내외 원전 20기에 부품을 납품했다. 김 대표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 자리까지 오른 한국의 원전산업 경쟁력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사업을 해왔다”며 “투자도 많이 해놨는데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날려버리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원전 부품사들은 폐업 준비 중
국내 원전 생태계가 붕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원전 부품사들이 대거 문을 닫거나 업종 전환을 추진하면서다. 원전산업이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60년간 쌓아올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이 회복 불능 상태로 추락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20년째 원전 플랜트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L사장은 4년 전 150명이었던 직원 수를 올 들어 60명까지 줄였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놨다”며 “파산 전에 문을 닫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지”라고 말했다.
창원의 금속 가공업체 S사도 정부의 탈원전 기조로 직격탄을 맞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 업체는 2015년 원전 부품 생산설비에 50억원을 투자했다. 정부가 2017년 탈원전 정책을 골자로 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업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016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70대인 이 회사 사장은 “나이가 들어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으나 빚더미만 떠안게 해 미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한홍 미래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두산중공업에 원전 부품을 납품한 중소 협력업체 수는 219개로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 발표 직전인 2016년(325개)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두산중공업이 중소 협력업체와 체결한 신규 계약 건수 역시 지난해 1105건으로 전년(2051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2016년(2836건)에 비해선 60%가량 줄었다.
원전 플랜트 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도 “현 정부에서는 원전 사업을 계속할 희망이 없다”며 “이제 바라는 것은 내년 3월 신고리 5·6호기 납품을 끝으로 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준공 시기는 각각 2023년 3월, 2024년 6월이지만 주요 설비와 부품 납품은 내년 3월이면 다 끝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소 원전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원자력 연구개발(R&D) 예산을 작년보다 33% 늘리기로 했다. 원전 해체 및 방사능 폐기물 관리, 핵융합 등 분야에서 예산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전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광주의 한 원전 부품 가공업체 사장은 “생사기로에 놓인 대부분 중소업체들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지원책”이라고 지적했다.
업종 변경도 어려워
정부는 2017년 10월 국무회의를 통해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내 원전 수를 2017년 24기에서 2031년 18기, 2038년 14기로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사업은 폐기했다. 2024년 준공을 앞둔 신고리 6호기를 마지막으로 국내 신규 원전 사업은 영구히 멈춰 선다.
채권단은 두산중공업을 친환경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하지만 업종 전환이 어려운 원전 관련 중소업체들은 거래처를 잃고 사업을 접어야 할 처지다.
일부 업체는 조선업 기자재나 자동차 부품 금형 등으로 사업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경남 김해의 한 원전 보조기기 생산업체 대표는 “원전 분야에서 사업을 이어갈 방법이 없다”며 “자동차 부품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려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십수 년간 원전 일을 해온 중소 업체들이 단기간에 업을 바꾸기는 여의치 않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제품군이 다양한 일부 업체는 정부 지원을 받아 업종 전환이 가능하겠지만, 원전에 특화한 전문업체들은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모성 청주대 레이저광정보공학과 교수는 “신한울 3·4호기 등 폐지된 원전 사업을 재개하지 않는 한 2~3년 후면 원전 관련 기술인력과 업체 등이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래에 다시 필요할 수도 있는 원전산업의 싹을 완전히 잘라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경남의 한 산업단지에서 원자력 발전 부품 임가공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올해 폐업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말 국내 마지막 원전 개발 프로젝트인 신고리 5·6호기 납품을 끝으로 일감이 완전히 끊길 것으로 예상돼서다. 이 회사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원전 부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설비투자자금 100억원을 마련해 최신식 대형 금속 가공설비를 도입한 뒤 신고리, 신한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등 국내외 원전 20기에 부품을 납품했다. 김 대표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 자리까지 오른 한국의 원전산업 경쟁력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사업을 해왔다”며 “투자도 많이 해놨는데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날려버리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원전 부품사들은 폐업 준비 중
국내 원전 생태계가 붕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원전 부품사들이 대거 문을 닫거나 업종 전환을 추진하면서다. 원전산업이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60년간 쌓아올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이 회복 불능 상태로 추락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20년째 원전 플랜트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L사장은 4년 전 150명이었던 직원 수를 올 들어 60명까지 줄였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놨다”며 “파산 전에 문을 닫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지”라고 말했다.
창원의 금속 가공업체 S사도 정부의 탈원전 기조로 직격탄을 맞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 업체는 2015년 원전 부품 생산설비에 50억원을 투자했다. 정부가 2017년 탈원전 정책을 골자로 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업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016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70대인 이 회사 사장은 “나이가 들어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으나 빚더미만 떠안게 해 미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한홍 미래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두산중공업에 원전 부품을 납품한 중소 협력업체 수는 219개로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 발표 직전인 2016년(325개)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두산중공업이 중소 협력업체와 체결한 신규 계약 건수 역시 지난해 1105건으로 전년(2051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2016년(2836건)에 비해선 60%가량 줄었다.
원전 플랜트 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도 “현 정부에서는 원전 사업을 계속할 희망이 없다”며 “이제 바라는 것은 내년 3월 신고리 5·6호기 납품을 끝으로 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준공 시기는 각각 2023년 3월, 2024년 6월이지만 주요 설비와 부품 납품은 내년 3월이면 다 끝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소 원전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원자력 연구개발(R&D) 예산을 작년보다 33% 늘리기로 했다. 원전 해체 및 방사능 폐기물 관리, 핵융합 등 분야에서 예산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전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광주의 한 원전 부품 가공업체 사장은 “생사기로에 놓인 대부분 중소업체들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지원책”이라고 지적했다.
업종 변경도 어려워
정부는 2017년 10월 국무회의를 통해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내 원전 수를 2017년 24기에서 2031년 18기, 2038년 14기로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사업은 폐기했다. 2024년 준공을 앞둔 신고리 6호기를 마지막으로 국내 신규 원전 사업은 영구히 멈춰 선다.
채권단은 두산중공업을 친환경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하지만 업종 전환이 어려운 원전 관련 중소업체들은 거래처를 잃고 사업을 접어야 할 처지다.
일부 업체는 조선업 기자재나 자동차 부품 금형 등으로 사업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경남 김해의 한 원전 보조기기 생산업체 대표는 “원전 분야에서 사업을 이어갈 방법이 없다”며 “자동차 부품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려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십수 년간 원전 일을 해온 중소 업체들이 단기간에 업을 바꾸기는 여의치 않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제품군이 다양한 일부 업체는 정부 지원을 받아 업종 전환이 가능하겠지만, 원전에 특화한 전문업체들은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모성 청주대 레이저광정보공학과 교수는 “신한울 3·4호기 등 폐지된 원전 사업을 재개하지 않는 한 2~3년 후면 원전 관련 기술인력과 업체 등이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래에 다시 필요할 수도 있는 원전산업의 싹을 완전히 잘라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